우리나라의 역사는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 두 권이 정통사서로 여겨진다.
 <삼국사기>는 1145년경 김부식(1075~1151) 등이 고려 인종의 명을 받아 편찬하였다. 왕의 명령으로 공직 기관에 의해 지어진 책이므로 정사(正史)로 치부된다. <삼국유사>는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 보각국사(普覺國師) 일연(一然, 1206∼89)이 신라·고구려·백제 3국의 유사(遺事)를 모아서 지은 역사서다. 공직자가 아닌 승려의 저술로 <삼국유사>는 야사(野史)로 분류된다. 우리의 역사서를 저술한 이들의 노고는 평가 받아야 하지만 그들의 시각은 유교와 불교로 덧칠되어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태생적인 ‘한국학(韓國學)’의 오류를 뛰어넘어 바르게 해석해야 한다. 외국의 학문과 문화가 우리에게 수입되어 원래의 한민족의 기층문화와 습합된 것이 한국학의 정의이다. 한국학이 배태, 생산되기 이전의 우리 고유의 철학, 역사, 문화의 집대성인 것이 ‘국학(國學)’이다. 이제부터는 우리의 모든 역사를 원형인 ‘국학의 잣대’로 엄정하게 보아야 한다.

 김부식(金富軾)과 동생 김부철(金富轍)이라는 이름은 아버지 김근(金覲)이 송나라에 갔다 온 뒤 지은 이름이다. 송나라의 유명한 유학자 겸 문장가인 소식(蘇軾)·소철(蘇轍)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들은 이름에서부터 아버지에 의하여 중원 대국과 유교에 대한 한없는 존경인 사대(事大)의 행태를 타고 난 것이다.

 승려 일연의 시각은 어떠했는가. 일연은 ‘일웅일호(一熊一虎)’의 뜻을 부족이름 아닌 사람이 되기를 간절하게 비는 두 마리의 동물인 호랑이(tiger)와 곰(bear)으로 해석하여 한민족의 조상은 사람이 아닌 동물이라는 오해를 야기 하였다. 우리의 살아있는 싱싱한 역사를 ‘기이(紀異)’편으로 규정하여 신화와 전설의 안개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므로 환국, 배달, 옛 조선의 7천 년의 역사를 환인, 환웅, 단군 3대의 역사로 줄여버렸다.

 ‘옛날에 환국이 있었다.(昔有桓國)’를 ’(환국이란)제석의 나라를 말한다(謂帝釋也)‘라고 쓸데없는 해석을 붙임으로서 우리 역사가 마치 불교의 나라로 출발한 듯 한 시비 거리를 남겼다. 실존하는 한민족 원형의 문명국을 신화적인 불교의 나라로 변형시킨 것이다. 그 결과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찬란하게 빛나는 우리의 역사는 일제의 간교한 식민사관의 덫에 걸려 난도질을 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영국의 명문 옥스퍼드 대학에서 발간한 산스크리스트어 사전에서 그 실상을 찾을 수 있다. 옥스포드 산스크리트어 사전 509쪽을 보면 '다누라자(dhanu raja)'라고 나온다. 이는 '다누(단군)'과 '라자(임금)'이 붙은 단어이다. 설명을 보면 ’단군은 석가모니 선조 대 할아버지 중 한 사람의 이름'으로 '석가모니 부처는 단군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외국의 권위 있는 사전에 기술되어 있다.

 흔히 우리 정체성을 마멸시키는 역사 기술의 사독(四毒)폐해를 말한다. 중국의 역사침략에 의한 중독(中毒), 일본에 의한 왜독(倭毒), 서양에 의한 양독(洋毒), 스스로 자해하는 역사관을 자독(自毒)이라 한다. 이 모든 독소의 중심에는 스스로에 의하여 정체성이 파괴되는 자독이 늘 먼저 자리 잡고 있다. 지금도 전국에 세워진 단군상의 목이 위태로우니 어찌 옛날만의 일인가.

 1938년 2월 21일은 단재 신채호 선생이 일제에 의하여 뤼순 감옥에서 순국하신 날이다. 그는 이렇게 사독을 물리칠 것을 우리에게 경고하셨다.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려거든 역사를 읽을 것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나라를 사랑하게 하려거든 역사를 읽게 할 것이다."
 그러나 바른 정신으로 바르게 읽어야 할 것이니, 우선 국민에게 자신들의 바른 역사를 제공하는 것은 정부로서의 가장 큰 임무일 것이다. 그러니 정치권은 부디 싸움질은 이제 그만하고 국기를 바로 세워야 할 일이 우선이다. 

 

사단법인 국학원 원장(代), 전국 민족단체 협의회 대표회장 원암 장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