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존심 싸움 아닌 한류 콘텐츠의 막강한 영향력과 산업적 수익의 문제
- 中 언론이 부추기고 中 학자가 논리 제공, 中 청년 누리꾼이 분노‧투쟁

'한류'와 함께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우리옷 한복. 사진 Pixabay 이미지.
'한류'와 함께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우리옷 한복. 사진 Pixabay 이미지.

세계인이 열광하는 한복은 2021년 10월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OED)에 ‘HANBOK’으로 영문 등재되고, 지난해 7월에는 ‘한복 생활’이 우리 국가무형문화재로 등재되었다. 또한, 올해 초까지 미국 조지아주를 포함 3개 주와 4개 도시에서 ‘한복의 날’을 지정‧선포했다.

그런데 한민족이 향유‧계승해 온 한복은 물론 김치, 한지, 한옥, 삼계탕, 삼겹살 등 전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 문화콘텐츠 전반에 걸쳐 주장하는 중국의 원조 논란은 정당한가? 명쾌한 해법은 없을까?

동북공정에 이은 ‘문화공정’이라 우리 국민이 분노하는 현상과 관련해 학계 일부는 중국 정부가 주도하는 게 아니라 온라인상 누리꾼 차원이라 ‘문화공정’이라 부르는 것은 섣부르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 관영매체를 비롯한 주요 언론이 부추기고, 유수 대학의 교수를 포함한 학자층이 논리를 뒷받침하며, 1990년대 이후 애국주의 교육을 받은 젊은 중국 누리꾼이 전 세계를 향해 포화를 뿜는 행태를 띄고 진행되고 있다.

동북아역사재단 이영호 이사장은 지난해 음식문화에 이어 올해 7월 22일 한복과 관련한 한중 문화충돌 학술회의에서 “우리 스스로 우리 옷이 중국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 알아야 일희일비하지 않고 합리적이고 분명하게 대응할 수 있다. 그리고 한중 문화갈등의 해법을 찾을 수 있다”라며 지피지기의 자리를 마련한 바 있다.

지난 7월 22일 열렸던 동북아역사재단과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공동 학술회의 '한국의 옷과 멋'. 사진 동북아역사재단.
지난 7월 22일 열렸던 동북아역사재단과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공동 학술회의 '한국의 옷과 멋'. 사진 동북아역사재단.

이 자리에서 발표자들은 소위 ‘문화공정’ 현상의 본질과 모순을 규명하고, 삼국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우리 옷의 교류역사와 원‧명대 중국 황실을 강타한 K-드레스(한복) 열풍 등과 함께 한중 문화 갈등의 해법을 모색했다.

그중 학술회의 기획자 구도영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2020년 본격화된 소위 ‘문화공정’의 배경이 된 반한류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문화 갈등의 전개를 타임라인을 통해 정리했다. 또한, ‘문화공정’의 본질과 주장 속 허구, 대응 논리를 제시했다.

그는 “한국 문화의 세계적 유행을 ‘한류’라고 명명한 것은 한국인이 아니라 바로 중국인으로, 한류가 중국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반한류 역시 중국에서 시작되었다”라며 “그 도화선은 2000년대 초반 중국을 비롯해 아시아 각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대장금’”이라고 지적했다.

반한류의 발단…드라마 ‘대장금’, 中 유교문화 주권을 빼앗는다는 박탈감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다보니 충효를 중시하는 유교 문화가 반영된 드라마 ‘대장금’에 관해 중국 학자 중 “한국이 전 세계에서 유교 문화 주권을 빼앗아 가려고 일부러 대장금을 제작했다”는 주장을 내놓는 일까지 발생했다. 중국 내에서는 드라마에 열광하면서도 씁쓸하다는 여론에 이어 과거 문화 수혜국이던 한국에 중국의 민족 문화를 빼앗기면 안 된다는 주장이 급부상했다.

동북아역사재단 구도영 연구위원. 사진 동북아역사재단.
동북아역사재단 구도영 연구위원. 사진 동북아역사재단.

구 연구위원은 “중국은 현재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한때 유교를 버려야 할 봉건적 가치로 여겼다. 하지만 드라마 ‘대장금’을 통해 유교가 굉장히 매력 있고 산업적으로 큰 장사가 되는 괜찮은 문화라는 걸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중국은 1960~70년대 문화혁명을 통해 유교 문화를 말살해 중국 내 유교 전승이 훼손되고 끊겼다. 2000년대 전 세계에 공자학당을 세울 때 많은 중국 교수와 연구자는 한국을 방문해서 배웠고, 공자의 덕을 기리는 ‘석전대제’ 개최를 위해 한국 학자를 초청해 감수했다. 드라마 ‘대장금’을 계기로 중국의 입장에서 유교를 경제적 이익이 되는 콘텐츠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또한, 구 위원은 “유네스코 단오 등재 문제, 사드 배치 등 외교 문제가 중첩되며 반한류는 확장되었다. 그러나 문화원조론이 거세진 것은 최근의 일”이라며 그 이유로 “한국의 전통문화가 아시아를 넘어서 구미권까지 전 세계로 영향력이 확대된 것”이라고 관련성을 밝혔다.

中 문화원조론의 등장…드라마 ‘킹덤’ 속 갓 열풍

2019년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한국 사극 드라마 ‘킹덤’을 통해 조선의 전통 복식이 전 세계인에게 알려졌고 특히, 조선의 갓을 ‘킹덤 햇’이라 주목했다. 그 인기는 미국 최대 인터넷 쇼핑몰 아마존을 통해 판매되고, 미국 뉴욕을 비롯해 영국 등 패션쇼에서 한국의 갓이 패션 아이템으로 활용되기에 이르렀다. 이에 중국 드라마에서 갓을 쓰고 등장하기 시작했다.

또한, K팝 아이돌의 무대 및 일상의상과 음식은 물론 코로나 세계적 대유행 시기 OTT를 통해 확산한 K드라마와 ‘기생충’ ‘미나리’ 등 K무비의 약진을 디딤돌로 한국의 의식주 문화에 대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한중 문화 갈등의 본격화…한복공정, 페이퍼게임즈 논란

한편, 한중 문화갈등이 본격화된 것은 2020년 중국 온라인 옷 입히기 게임 ‘샤이닝니키’로부터 시작되었다. 게임회사 페이퍼게임즈는 한국 사용자를 위해 한복 아이템을 추가했는데 중국 이용자가 “한복은 명나라 ‘한푸’다, 조선족 전통의상”이라며 한복이 중국 의상이라 크게 반발했다.

그러자 게임회사는 “조국의 입장과 같다”며 이용자가 많은 중국 쪽 입장을 반영해 한복 아이템을 폐기하고 한국 서비스를 종료했다. 한복 원조론이 산업 분야에 직접 영향력을 미칠 정도가 되었고, 한국에서는 중국이 문화공정을 시작했다고 인식하고 분노를 표출하게 된 사건이다.

고도의 정치적 공간 올림픽 개막식에 등장한 한복

한중 문화 갈등에 기름을 부은 사건은 2020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한복을 입은 조선족 여성의 등장이다. 구도영 연구위원은 “올림픽 개막식은 고도의 정치적 공간이다. 이런 공간에서 중국인이 한복을 입었다는 것 역시 한국의 정체성을 중국이 가져가려는 것 아니냐는 분노가 일었다”고 했다.

한편으로는 중국 내 소수민족의 하나인 조선족이 전통의상을 입은 것이라는 논리로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당 문화를 고대로부터 계승‧발전해온 주권국가가 있음을 무시하는 처사로 비춰졌다.

한복은 고대로부터 계승 발전한 문화의 결정체로 한국인의 아름다움에 대한 지향과 동경, 그리고 사회 집단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종합문화이다. 사진 Pixabay 이미지.
한복은 고대로부터 계승 발전한 문화의 결정체로 한국인의 아름다움에 대한 지향과 동경, 그리고 사회 집단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종합문화이다. 사진 Pixabay 이미지.

일부에서는 미국에 이어 G2로 성장한 중국에서 애국주의 교육으로 성장한 청년에게는 문화 측면에서 한국에 뒤처진다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런 가운데 중국 온라인과 산업 분야에서 한국 문화에 대한 원조 주장은 지속되고 있다. 문화공정의 겉모습은 자존심 싸움 같지만, 그 실질은 산업적 이익인 셈이다.

구 연구위원은 “한국 대중사회의 일각에서는 중국이 고구려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하는 동북공정의 연장선에서 이제는 한국 문화를 빼앗아 간다고 여겼다. 분노는 한중 외교문제로 비화될 정도로 확대되었다”며 한국의 혐중 정서가 형성된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21세기 전기로 기록된 오늘날 ‘한류’ 열풍이 전 세계 대중문화 속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며 “그런 가운데 고려 시대 고려양에 이어 조선 전기 의상인 마미군이 중국 최고의 패션도시 소주(남경)을 중심으로 한때 주도했었다는 것은 시의성 측면에서 유의미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