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생활상과 문화 등을 보여주는 특별한 전시와 공개 행사가 잇따라 열려 역사문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고려도기의 생생한 모습을 선보이는 특별전 「고려도기 - 산도해도 주재도기(山島海道 舟載陶器) -」를 오는 2024년 1월 14일까지 목포해양유물전시관에서 개최한다. 문화재청은 지난 9월 6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을 통해 일본에서 환수한 고려 나전칠기《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를 언론에 최초 공개했다.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는 지난달 29일과 30일 고려 강도시기 사찰유적으로 알려진 강화 전(傳) 묘지사지에 대한 발굴조사 성과를 공개했다.

왕의 만찬을 운반한 그릇, 「고려도기」 특별전

‘고려도기’ 특별전 포스터[이미지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고려도기’ 특별전 포스터[이미지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생활용기이자 각지의 일품(一品) 먹거리를 운반하는 그릇으로 사용돼 온 고려도기의 생생한 모습을 선보이는 특별전 「고려도기 - 산도해도 주재도기(山島海道 舟載陶器) -」를 오는 2024년 1월 14일까지 목포해양유물전시관에서 개최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도기(陶器)는 선사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 그릇문화의 중심에 있었으며, 자기(磁器)의 시대인 고려-조선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질그릇, 옹기라는 이름으로 변함없는 가치를 이어오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해양과 육상 유적에서 출토된 고려도기를 비롯해 도기와 관련한 고문헌과 회화, 재현 도기, 영상콘텐츠, 모형 등 270여 점을 감상할 수 있다. 

먼저, △1부에서는 <그릇문화 1만 년과 고려도기>를 주제로 우리나라 그릇문화의 역사 속 도기의 특징과 제작 기술을 소개하고 생활·분묘(무덤)유적 출토 도기 70여 점을 선보인다.

고려시대 생활 및 분묘유적 출토 도기 매병[이미지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고려시대 생활 및 분묘유적 출토 도기 매병[이미지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2부 <고려, 푸르고 검은빛 그릇의 공존>에서는 동시대 절정기를 이룬 고품격 도기와 청자, 고려 왕실의 술을 의미하는 「양온(良醞)」이 새겨진 도기 술병(서울시유형문화재), 각종 의례용 도기 등을 감상할 수 있다. 

△3부 <고려도기의 길, 바닷길>은 고려시대 침몰선 ‘태안 마도1·2·3호선’에서 건져낸 유물들을 중심으로 지역 토산품 포장 운송용, 선상생활용, 도량형 용기 등 도기의 다양한 용도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전시이다. 특히 고려 무신정권기 최고위층과 권력 기관들에 보내는 풍요로운 물산이 실렸던 마도3호선의 이야기를 다양한 연출 영상과 모형으로 흥미롭게 조명했다.

전시는 매주 화요일-일요일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아울러 오는 10월 20일에는 고려도기의 가치를 조명하는 국제학술대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자세한 내용은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목포해양유물전시관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려의 빛 담은 나전칠기, 800년 베일 벗고 돌아오다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이미지 문화재청]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이미지 문화재청]

문화재청은 지난 9월 6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을 통해 일본에서 환수한 고려 나전칠기《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를 언론에 최초 공개했다.

이번에 환수된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는 일본 개인 소장가의 창고에서 100여 년 이상 보관돼 최근까지 일본에서조차 그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았던 유물로, 지난해 7월 재단의 일본 현지 네트워크를 통해 최초로 확인됐다. 이후 문화재청과 재단은 1년여 간의 치밀한 조사와 협상 끝에 지난 7월 마침내 환수에 성공했다.

현존하는 고려 나전칠기가 전 세계 20건에도 못 미치고, 그 대부분이 외국에 있는 상황에서 이번에 환수한《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의 문양과 보존상태가 고려나전을 대표할 만큼 뛰어날 뿐만 아니라 그동안 학계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유물을 발굴했다는 점에서도 그 의의가 매우 크다.

나전칠기는 자개로 무늬를 장식하고 칠을 한 공예품이다. 목재, 옻칠, 자개, 금속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하며, 작게 오려낸 자개를 일일이 붙여 꽃과 잎의 문양을 장식하는 등 고도의 정교함과 복잡한 제작과정을 거쳐 완성되기 때문에 ‘공예 기술의 집약체’ 라고도 일컬어진다. 

특히, 고려의 나전칠기는 청자, 불화와 함께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미술공예품으로 손꼽혀 왔다. 12세기 고려에 사신으로 왔던 송나라의 서긍(徐兢)은 <고려도경(高麗圖經)>에 “나전 솜씨가 세밀하여 가히 귀하다(螺鈿之工 細密可貴)”라고 기록했으며, <고려사(高麗史)>에도 이미 11세기에 고려 조정이 송(宋), 요(遼) 등 외국에 보내는 선물 품목에 나전칠기가 있었다는 기록이 전해지는 것으로 볼 때 당시 주변국에서 매우 인기가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이번에 환수된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는 13세기 작품으로 추정되며, 고려 나전칠기의 진수를 보여주는 유물이다.

먼저 문양을 살펴보면, 고려 나전칠기의 대표적인 문양인 국화넝쿨무늬, 모란넝쿨무늬, 연주(連珠)무늬가 고루 사용됐다. 전체 면에 자개로 약 770개의 국화넝쿨무늬를 장식하고, 천판(뚜껑 윗면) 테두리의 좁은 면에는 약 30개의 모란넝쿨무늬를 배치했으며, 외곽에는 약 1천670개의 연주무늬가 촘촘히 둘러져 있는 등 사용된 자개의 수가 약 4만5천개에 달한다.

 또한 C자형 금속선으로 국화꽃무늬를 감싸고 있는 넝쿨줄기를 표현했고, 두 선을 꼰 금속선으로 외곽 경계선을 표현했다. 국화꽃무늬는 중심원이 약 1.7mm이며, 꽃잎 하나의 크기는 약 2.5mm에 불과한데, 꽃잎 하나하나에 음각으로 선을 새겨 세부를 정교하게 묘사했다. 

이처럼 자개로 국화 또는 모란무늬를 기물 전면에 빼곡하고 규칙적으로 배치한 점, 단선의 금속선으로 넝쿨 줄기를 묘사한 점, 매우 작게 오려낸 자개에 음각의 선을 그어 세부를 표현한 점 등은 고려 나전칠기 중에서도 최고의 작품성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나전 본래의 무지개 빛깔과 광택이 살아있어 오색의 영롱함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나전과 금속선 등 장식 재료의 보존상태도 현재까지 알려진 고려나전 중에서도 매우 탁월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번에 환수된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는 국립고궁박물관의 체계적인 보관 아래 향후 우리나라 나전칠기의 전통 기술 복원을 위한 연구와 국민들의 문화유산 향유 확대를 위한 전시 등에 다양하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고려 사찰 ‘묘지사지’(강화)에서 건물 구조 확인

고려사찰 ‘묘지사지’ 발굴현장[이미지 문화재청]
고려사찰 ‘묘지사지’ 발굴현장[이미지 문화재청]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는 지난달 29일과 30일 고려 강도시기 사찰유적으로 알려진 강화 전(傳) 묘지사지에 대한 발굴조사 성과를 공개했다.

강도시기(江都時期)는 몽골 침략에 맞서 강화도로 천도한 1232년(고종 19년)부터 1270년(원종 11년)까지 시기를 일컫는다.

「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묘지사는 1264년(고려 원종 5년) 왕이 마니산 참성단에서 초제(醮祭)를 지내기 전에 거처했던 사찰로, 마니산 동쪽의 초피봉 남사면에 위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傳) 묘지사지는 산 사면에 축대를 쌓아 조성한 2개의 평탄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지난해에 상단 평탄지를 조사한데 이어, 올해 하단 평탄지 등 사역 전반에 대한 조사를 완료했다. 

전(傳) 묘지사지는 서쪽의 계곡부에서 하단의 평탄지로 진입할 수 있도록 설계됐으며, 하단 평탄지의 마당을 중심으로 북쪽과 동쪽에 건물지가 직각을 이루도록 배치된 구조이다.

건물지는 모두 3동이 확인됐는데, 대규모의 중심 건물과 생활시설을 갖춘 부속 건물로 구분돼 있다. 상단 평탄지에 위치한 북쪽의 중심 건물은 경사 지형을 이용한 다락집 형태의 건물지로, 상층에는 대규모의 난방시설을 갖춘 방과 누마루가 설치됐다. 

건물의 난방시설은 방 양쪽에 설치된 아궁이를 통해 유입된 화기가 방 전체를 ‘ㄷ’ 형태로 회전하면서 건물 북쪽으로 각각 빠져나가는 구조로, 13세기 전면온돌(방 전체에 깔린 온돌)의 온전한 형태를 갖춘 귀중한 자료로서 주목된다. 이 온돌방에 잇대어 누마루가 설치됐고, 누마루의 하부는 별도의 건물 공간으로 활용된 것도 확인했다. 이와 같은 다락집 구조는 지금까지 동 시기 유적에서 확인된 사례가 없는 것으로, 고려시대 건물 구조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또한 하단 평탄지 동쪽에 나란히 자리한 2동의 부속 건물지에는 내부에 아궁이와 부뚜막, 온돌시설 등이 설치돼 있다. 이 건물지들은 한 지붕 아래에 부엌과 온돌이 있는 여러 개의 공간으로 구분돼 있어 생활공간으로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차맷돌, 벼루, 찻잔을 비롯한 다양한 기종의 도자류, 다량의 평기와 등이 출토됐다. 이 유물들로 미루어 보아 전(傳) 묘지사지는 고급청자와 차 문화를 향유한 상위계층에 의해 강도시기를 중심으로 조선시대 이전까지 운영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발굴조사 성과는 오는 9월 27일 국립문화재연구원 유튜브 채널(http://youtube.com/@nrichstory)을 통해서도 공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