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 고려인 추모공원 내 홍범도 장군 흉상 앞에 모인 역사탐방팀 속 전진 학생(벤자민인성영재학교). 사진 본인 제공.
카자흐스탄 고려인 추모공원 내 홍범도 장군 흉상 앞에 모인 역사탐방팀 속 전진 학생(벤자민인성영재학교). 사진 본인 제공.

세상을 교실로 삼아 나만의 꿈을 찾는 갭이어 과정을 밟는 벤자민인성영재학교(이하 벤자민학교) 경기학습관 전진 학생은 세계라는 무대에 나가고 싶었다고 한다.

전진 학생은 벤자민학교 멘토의 추천으로 올해 여름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서 교과서 속 글자로만 접했던 독립운동가의 후손들과 직접 만나는 특별한 역사탐방을 했다. 다음은 전진 학생의 탐방기이다.

한국역사문화원이 주관한 2023 청소년 국외 역사체험 활동 ‘잊혀진 역사의 발자국을 따라서’를 신청했다. 막상 홈페이지에 들어가 신청서 작성을 해보니 내가 과연 뽑히기나 할지 걱정이 생겼지만 포기할 수 없었던 나는 한 자 한 자 정성껏 신청서를 작성했다. 그 정성이 통했던 건지 1차 서류 면접에서 합격했다는 소식을 받았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내 번호가 있는 것을 보고 정말 내 번호가 맞는 건지 내가 잘못 본 것은 아닌지 계속 확인했다. 그렇게 2차 면접까지 잘 보고 최종 선발이 되어 참여하게 되었다. 우리의 일정은 8월 13일부터 8월 19일까지였다.

카자흐스탄에 도착한 첫날, 한글간판을 단 식당을 가서 독립유공자 후손들을 만났다. 사진 본인 제공.
카자흐스탄에 도착한 첫날, 한글간판을 단 식당을 가서 독립유공자 후손들을 만났다. 사진 본인 제공.

첫날 아침 전국 각지에서 모인 36명의 학생이 인천공항에 모여 카자흐스탄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6시간 30분을 비행기를 타고 카자흐스탄 알마티 공항에 도착했다. 간단하게 숙소에서 짐을 풀고 독립유공자 황운정, 계봉우, 최재형, 최봉설 지사의 후손들을 만나 뵈러 저녁식사 장소인 ‘육프로’라는 식당에 갔다. 간판에 한국어로 ‘육프로’라고 적혀 있었다.

그 자리에서 만난 독립유공자들의 후손들은 안타깝게도 한국어를 잘하지는 못하였다.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독립유공자의 후손들을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뜻깊은 시간이었다.

2일차 젠코프대성당 민족영웅광장에서. 가운데 남학생이 전진학생이다. 사진 본인 제공.
2일차 젠코프대성당 민족영웅광장에서. 가운데 남학생이 전진학생이다. 사진 본인 제공.

2일 차에는 젠코프 대성당에 갔다. 대성당의 입구에는 카자흐스탄의 민족 영웅 광장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입구부터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을 만큼의 웅장함과 흥미가 뒤섞여 있었다. 친구들과 민족 영웅 동상 앞에서 그 장엄한 기운을 받아서 멋지게 사진도 찍어보았다. 마음이 더욱더 비장해지는 느낌이었다.

(왼쪽) 고려극장 내 홍범도 기념관에서 카자흐스탄국립대 이병조 교수의 해설을 듣는 역사탐방단. (오른쪽) 기념관 내 홍범도 장군 영정. 사진 본인 제공.
(왼쪽) 고려극장 내 홍범도 기념관에서 카자흐스탄국립대 이병조 교수의 해설을 듣는 역사탐방단. (오른쪽) 기념관 내 홍범도 장군 영정. 사진 본인 제공.

3일 차에 우리는 고려극장에 도착했다. 고려극장은 고려인 문화예술의 상징으로 러시아 강제 이주 후 고려인들이 세운 유서 깊은 극장으로 고려인들에게만 인정받는 곳이 아닌 카자흐스탄 현지에서도 인정해 줄 만큼 알아주는 극장이었다. 극장의 출입문에는 ‘카자흐스탄 문화 체육부 국립 아카데미 고려극장’이라는 훈장이 있었다.

극장 안에는 〈홍범도기념관〉이 있었고, 카자흐스탄 국립대학교 학국학과 이병조 교수의 설명으로 그 시대를 더 잘 알 수 있었다. 이 극장에서는 ‘날으는 호랑이’로 불린 홍범도 장군이 살아계실 때 그분의 독립운동 일대기를 다룬 영화가 상영되었고, 홍범도 장군께서 고려극장의 수위로도 일하셨다고 한다.

홍범도 장군은 1938년 구 소련 스탈린 정부의 한인 강제이주 정책으로 연해주에서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주로 이주했고 병원 경비, 극장 수위로 근무하며 말년을 보냈다고 한다.

1923년 창간해 지금도 카자흐스탄어와 한국어로 발간하는 고려일보. 사진 본인 제공.
1923년 창간해 지금도 카자흐스탄어와 한국어로 발간하는 고려일보. 사진 본인 제공.

​고려극장을 다 둘러본 우리는 독립운동 신문의 뿌리였던 고려일보를 방문했다. 1923년 연해주에서 최초 발간되었고, 그때 신문의 제호는 ‘선봉’이었다. 고려일보는 지금도 카자흐스탄어와 한국어로 신문을 발간한다. 이렇게 먼 타지에서도 자신들의 뿌리를 잊지 않고 계신 분들이 참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후 우리는 고려인 추모공원에 도착했다. 그곳은 홍범도 장군의 흉상과 계봉우 독립운동가의 흉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흉상의 모습은 내가 수업 시간에 본 모습과 똑 닮아 있었다.

두 독립운동가의 후손과 인사를 나눈 뒤, 추도사를 낭독하고 독립 군가를 불렀다. 해군사관학교 생도들은 국기를 들고 행진하며 독립운동가분들께 예의를 표했다. 태극기가 바람에 휘날렸고 그 순간 애국가가 흘러나왔다. 가슴이 뜨거움으로 벅차올랐다.

한국역사문화원과 카자흐스탄 정부기관과의 MOU체결식. 사진 본인 제공.
한국역사문화원과 카자흐스탄 정부기관과의 MOU체결식. 사진 본인 제공.

4일 차 한국역사문화원과 카자흐스탄 정부기관이 MOU를 맺는 중요한 날이었다. 내가 이런 뜻깊은 자리에 참석할 수 있다는 것이 영광이었고 감사했다. 그렇게 MOU 체결 후 크질오르다주 정부에서 지정한 거리인 홍범도 거리로 이동하였다. 그곳에서 홍범도 거리 현판 제막식을 거행하였다.

이후 고려인들이 세운 대학으로, 강제 이주 당시 조선에서 가져온 《삼국유사》, 《삼국사기》 등 오래된 고서들을 보관하고 있는 크질오르다 국립대학교를 방문하였다. 500년이 넘은 고서들을 직접 넘겨보고 만져보기도 했다. 모든 책이 한자로 쓰여 있었기에 뜻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한눈에 봐도 관리가 잘되어 있었고 강제 이주 당시 목숨도 부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책들을 챙겨 오신 조상님들에게 감탄했다.

크질오르다 국립대에 보관 중인 고서들. 사진 본인 제공.
크질오르다 국립대에 보관 중인 고서들. 사진 본인 제공.

이병조 교수의 특강을 통해 고려인들이 인정받을 수밖에 없는 궁금증이 풀렸다. 강제 이주 당시 이 땅은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의 끝 쪽에 위치해 땅은 넓지만, 쌀농사를 짓기에는 너무나 척박했다. 강제 이주한 10만여 명의 고려인들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서 지금의 비옥한 농경지로 땅을 바꾸었다고 한다.

강의 듣는 동안 나는 정말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사람이 살기에는 너무나 힘든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은 우리 조상들이 대단하다는 말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5일차 우리는 애국지사 최봉설 선생의 묘를 방문하였다. 최봉설 선생은 간도 청년회, 철혈광복단, 적기단 등에 참여하며 무장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카자흐스탄에서 처음 최봉설 선생의 묘비명을 ‘최봉솔’로 잘못 표기하였고, 후손들은 형편이 어려워 정정을 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묘비 교체가 절실한 상황에서 한국역사문화원에서 ‘최봉설’로 새로운 묘비 제막식을 거행하였다. 그곳에서 경건하게 제막식을 진행한 후 우즈베키스탄을 거쳐 우리나라로 돌아왔다.

최봉설 지사 묘비명 정정 제막식. 사진 본인 제공.
최봉설 지사 묘비명 정정 제막식. 사진 본인 제공.

이번 역사 체험 활동은 나에게 ‘새로움’이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 처음 가는 나라, 처음 먹는 음식 등 모든 새로움 속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 성숙해진 것을 느꼈다.

대한민국을 위해 싸우셨던 독립운동가들의 가슴 절절한 이야기와 직접 방문하여 본 그분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그분들 생의 흔적까지 생생하게 느꼈던 시간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뉴스에서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 이전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직접 보고 느낀 홍범도 장군과는 거리가 먼 내용들이어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홍범도 장군의 발자취를 따라갔다 왔던 나에게는 안타까웠다.

이번 역사탐방은 잊지 못할 진한 기억이 내 핏속으로 흘러들어 영원히 흩어지지 않을 것이고, 기회가 되면 고려인들의 후손들을 돕는 활동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