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효진, 권효진 동화 '저는 행복한 여행자로 살겠습니다' 삽화, 2023,  A4용지에 먹.  이미지 김수정
권효진, 권효진 동화 '저는 행복한 여행자로 살겠습니다' 삽화, 2023, A4용지에 먹. 이미지 김수정

평화문화진지(서울시 도봉구 마들로 932)에서 12월 3일부터 12월 30일까지 열리는 〈두 개의 시간: 한韓과 조선朝鮮〉전은 한국 미술사의 한 조각이나 기록에서 누락 혹은 외면된 재일한인, 중국 조선족 그리고 탈북민을 다룬다. 구한말,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 그리고 냉전 전후 중국과 일본으로 이동된 조선족과 재일한인의 역사와 분단의 경계를 넘어 생존을 위해 탈주한 탈북민의 오늘을 보여준다.

전시기획자 김수정 독립 큐레이터는 “서울의 북쪽 끝, 대결과 분단의 상징인 옛 군사시설을 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한 평화문화진지에서 여전히 진영대립 갈등의 중심에 있는 조선족, 재일한인, 탈북민의 이야기를 펼치는 것은, 이들을 둘러싼 국가 간의,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의 진영 간의 케케묵은 논쟁을 이제 그만 과거의 시간으로 박제하자는 의도를 담고 있다”라면서 “소수민족을 분열주의자로 억압하는 중국 사회에서, 여전히 차별하는 일본에서, 굶주림을 피해 차라리 난민이 되고자 국경을 넘어야 하는 이들의 아픈 현실을 알고 ‘우리’의 경계를 낮추는 것을 조심스럽게 제안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권효진, 권효진 동화 '저는 행복한 여행자로 살겠습니다' 삽화, 2023,  A4용지에 먹. 이미지 김수정
권효진, 권효진 동화 '저는 행복한 여행자로 살겠습니다' 삽화, 2023, A4용지에 먹. 이미지 김수정

<두 개의 시간: 한韓과 조선朝鮮>은 재일한인, 중국 조선족, 탈북자 그리고 한국인이라는 네 개의 정체성을 담은 작가의 작품과 한인 이주사 아카이브를 전시한다. ‘탈북자’ 권효진의 탈북과정과 남한 정착기를 담은 동화책과 목공 작품으로 전시가 시작되어, 한국식 민족주의 현상으로서 ‘태극기 집회’를 다루는 <한국인을 관두는 법>이 자유를 찾아 한국으로 온 권효진의 작품과 한 공간에 배치되어 이념 추앙에 젖은 남과 북 모두 국가관을 꼬집는다.

목수 권효진의 또 다른 이름 '탈북자'이다. 엘리트 당 간부에서 정치범, 탈북자로의 정체성과 삶의 변화를 경험한 권효진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정치범 수용소의 실태와 인권 현황을 알린 유엔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2014)의 삽화를 통해서이다. 수용소 복역 후 2008년 탈북을 강행, 2009년 남한으로 입국하였고 COI보고서의 참담한 수용소 복역기를 담은 그림을 발표한 때로부터 10년이 흘렀다. 오늘의 권효진은 탈북 이후 남한에서의 적응 과정 중 겪은 이념의 내적 갈등과 목수 권효진으로 살기 위한 도전, 캐나다로의 이주를 담은 과정적 아카이브이며, 자유인 권효진의 일대기를 담은 동화책을 발표한다. 난민에서 자유인으로, 절망의 기록에서 희망의 그림으로 변주하는 이곳, 여행자 권효진의 방에 우리를 초대한다.

안건형, 한국인을 관두는 법, 2018, 2채널 영상, 120분. 이미지 김수정
안건형, 한국인을 관두는 법, 2018, 2채널 영상, 120분. 이미지 김수정

〈한국인을 관두는 법〉은 한국식 민족주의 현상으로서 ‘태극기 집회’를 다루면서, 이의 역사적 연원을 추적하여, 동시대 한국인의 삶을 묘사한다. 영상의 나레이션 대본집 《출세의 소리- 기회주의 반도총연합 중앙위원회》는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 시절 권력자를 칭송하는 달콤한 말들을 늘어놓았던 ‘기회주의자’- 권력자를 위한 립서비스로 이득을 쟁취한 자칭 예술의 수호자와 석학의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마주 보는 스크린 양쪽 면에서 각각 상영되는 영상의 한 스크린은 공공의 재산을 이용해 자기 치장을 한 권력자의 부끄러움을 모르는 국가재산 수탈 현장을, 다른 한 스크린은 그러한 정권이 민족주의를 드높이기 위해 건립한 유관순, 이순신, 강감찬 등의 동상을 비춘다. 이를 통해 한국 근현대사에서 주창되었던 ‘민족주의’, ‘애국심’의 실체가 무엇이었는지를 비판적으로 조망한다. 1919년부터 현재에 이르는 100여 년의 시간 동안 ‘대한민국 국민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한국인’으로서 살아가는 개개인이 자신의 사고체계와 현재 자신이 가진 욕망에 대하여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한국인을 관두는 법>은 그 지점에서 한국 사회를 지배한 국가 이데올로기와 우리 사회에 무의식적으로 흐르고 있는 동일한 유형의 자본주의적 욕망에서 탈주하는 법을 에돌려 말하는지도 모른다.

두 번째 공간에는 조총련계 재일조선인 미술사가가 출간한 《재일조선인미술사》 서적이 배치되고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과 미술가들의 활동을 설명하는 글과 영상이 있다. 최근 소수민족 말살 정책을 펼친다는 국제 사회의 비난을 받는 중국에서 조선족 정체성을 드러내는 작업을 해온 작가들의 활동이 조심스러워지고 있다. 이 공간에 있는 두 작가는 남과 북, 한국과 중국의 관계와 경계 속에서 조용히 ‘개인’의 이야기를 한다. 전시장 중앙에는 1860년대부터 시작된 한인 이민사 연대표와 디아스포라의 주요 사건 아카이브 자료가 길게 이어져 ‘재일한인, 중국 조선족, 탈북자 그리고 한국인’ 작가들의 경위를 설명한다.

신광, 이사와 이주, 2012~현재,  디지털프린트, 가변크기. 이미지 김수정
신광, 이사와 이주, 2012~현재, 디지털프린트, 가변크기. 이미지 김수정

현대미술가 신광은 중국에서 태어난 조선족으로 중국 국적으로 학업과 작가 활동을 위해 유학생 신분으로 한국에서 거주한 경험이 있다. 외국인 출입국 사무소에서 시작된 이 경험은 두 개의 문화 뿌리를 가지고 있지만 그 어디에도 온전히 소속되기 힘든 자신의 다중적 정체성에 초점을 맞춘 작업을 전개하게 했다. 그의 이주에 따른 문화적 정체성 변화를 난방시스템의 변화로 은유하는 <이사와 이주>는 그가 태어난 연변의 집부터 현재 서울의 집까지, 그동안 이사와 이주를 했던 집의 난방시스템과 일상을 기록한 사진, 에세이로 구성되었다. 이번 전시에서 발표하는 신작 <Change>, <무→유→무→유→무>는 거주지 이동에 따른 정체성 변화의 과정적 경험을 넘어 '조선족' 신광으로서의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어필해, 지역적 소수민족에서 초국가적 조선족으로 변모하는 조선족처럼 다중적 경계인에서 조선족 미술가 신광으로 단단해져가고 있음을 보인다.

재일조선인 미술사 1945-1962, 미술가들의 표현활동의 기록  삽화. 이미지 김수정
재일조선인 미술사 1945-1962, 미술가들의 표현활동의 기록 삽화. 이미지 김수정

<재일조선인미술사 1945-1962>는 해방 후 약 15년간 펼친 ‘자이니치조센진’이라고 불렸고, 스스로 ‘재일조선인’이라 불렀던 미술가들의 표현 활동과 생활의 기록이다. 1962년 발행된 『재일조선미술가화집』으로 시작한 미술사가 백름의 연구는 액자와 캔버스에 담긴 유화뿐만 아니라 판화, 삽화, 표지화, 만화, 무대미술, 그리고 소수자의 언어를 지키며 끈질기게 펴냈던 신문 기사와 팸플릿을 넘나든다. 그 결과 해방, 제주 4.3사건, 한국전쟁, 4.24 한신교육투쟁, 귀국운동, 4.19 혁명 등 한반도와 일본의 격동 한가운데서 분단과 억압을 극복하고자 했던 자이니치 미술가들의 조형적 연대 활동을 또렷이 확인해 준다.

'재일조선인미술사 1945-1962', 연립서가(2023). 이미지 김수정
'재일조선인미술사 1945-1962', 연립서가(2023). 이미지 김수정

전시기획자 김수정 독립 큐레이터는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이주 경로와 경위, 정착의 과정을 조선족, 자이니치, 탈북민의 주체적 관점에서 기록된 역사를 직시하고 이들의 역사와 중첩되는 통합적 지역사 서술의 의의와 가능성을 논하고자 한다.”라면서 “조선 말기 하와이와 멕시코에서는 노동자로, 일제강점기 만주와 일본에는 농민과 징용군 혹은 독립투사로, 근대 이후에는 미주, 유럽, 호주 등지로 유학, 경제적 이민으로 퍼져나간 한반도인은 척박한 환경을 개척하며 현지 사회에 뿌리내리고 모국과 긴밀한 연대를 통해 지역적 소수민족이 아닌 탈지역 초국가적 활동을 보이고 있다. 소수이며 경계인으로, 약자로 규정하여 편협한 시선으로 그들을 말하는 한국사에 대한 반박으로 시작된 이번 전시를 통해 개인을 넘어 공동체를 이루고 한 사회의 소수민족이자 주요 구성원으로서 강인하고 적극적인 삶을 꾸려나간, 생존자이자 개척자인 조선족, 자이니치, 탈북민의 역사에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

'두 개의 시간: 한韓과 조선朝鮮'전 포스터. 이미지 김수정
'두 개의 시간: 한韓과 조선朝鮮'전 포스터. 이미지 김수정

학술행사로 12월 3일 오후 2시에서 열리는 '아트티스트 토크'에서는 탈북민 권효진, 조선족 신광이 토크를 한다. 12월 26일 오후 2시에는 백름 재일조선인 미술사와 김동근 전 인천이민사박물관 학예사가 특별 강연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