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많은 꽃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다양한 인생이 존재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꽃이든 사람이든 생명의 법칙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생명의 법칙을 따라가다 보면 역사가 보인다. 역사 수업 시간에 한 학생이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중국에서는 무슨 근거로 홍산문화를 중국문화라고 주장하나요?”

지금의 요서지역에서 발원한 홍산문화와 하가점하층문화는 중국 대륙의 문화와는 전혀 다르고 한민족 문화의 특징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는데 왜 중국에서는 그들의 문화라고 주장하는 지 그리고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했을 것이다. 우선 홍산문화에서 홍산은 현재 내몽고자치구 적봉시에 있는 홍산을 말한다. 도시 이름과 산 이름이 같은 의미다. 바로 이 지역을 중심으로 다량의 후기 신석기 유물이 출토되었다.

그동안은 황하유역의 문명이 중국문명의 기원이었고, 만주라고 일컫는 중국의 동북쪽 지역인 동북삼성(요령성, 길림성, 흑룡강성)지역은 황하문명의 영향으로 형성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출토 유물을 보았더니 황하 유역을 비롯한 중국인의 뿌리인 화하족 문명이 아니라 동이족의 문명으로 밝혀지게 된다.

매장문화는 잘 안 바뀌는 것인데 황하유역과 전혀 다르고 토기, 동검 등 기존의 황하문명의 것과는 전혀 달라 이 지역에는 별도 집단에 의한 고유한 문화가 형성되었을 것으로 학계에서는 판단하고 있다.

그럼 그 주체가 누구인가, 라고 했을 때 그 시기에 고유한 문화를 형성할 수 있는 집단은 한민족의 뿌리라고 일컫는 신시배달국과 단군조선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다급해진 중국은 이른바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 즉 동북공정을 통해 한민족의 고대사를 송두리째 중국의 역사로 만들려는 계획을 세우게 되었고, 지금은 계획대로 중국의 역사로 만들어 버렸다. 중국은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중국고대문명탐원공정'을 진행하면서 신화와 전설의 시대로 알려진 삼황오제시대를 역사로 편입하여 중국 역사의 상한을 끌어 올렸고 홍산문화를 포함한 중화문명이 이집트나 수메르 문명보다도 오래된 세계 최고 문명임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중국은 중화문명이 황하나 장강 유역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요하 유역에서 시작했다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면서 중화문명의 발원처인 요하 일대에 기원한 모든 민족은 중국의 시조라고 일컫는 황제헌원의 후예라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그래서 중국 정부는 하북성 탁록현 귀근원에 중화삼조당을 세우고 신시배달국 제14대 자오지 환웅이라고 알려진 치우천황, 황제헌원, 염제신농을 모시고 있다. 즉 동북지역인 탁록을 중국 고대 문명의 발원지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2001년에는 연변 조선족자치주 왕청현에 만성국가삼림공원 안에 ‘백의신녀’ 혹은 ‘백의녀’ 라는 이름으로 웅녀상을 건립하였다. 일제가 왜곡하고 강단 주류 사학계가 단군조선의 역사를 신화라고 할 때 중국은 그들의 역사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단군조선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만들면 고구려와 발해사는 당연히 중국의 역사가 되고 만다.

“홍산문화와 하가점하층문화는 한민족의 상고시대 문화이다.”

요하는 고대의 요하와 지금의 요하가 다르다. 고대의 요하는 지금의 난하이고, 현재 요하는 요령성에 위치한 요하이다. 요하는 중국 입장에서는 멀리 있는 강이고 이민족과의 자연경계였다. 요하유역에서 발생한 신석기시대 문명인 홍산문화와 청동기시대 하가점하층문화를 포함해서 요하문명이라고 한다. 역사로 보나, 출토된 유물로 보나 요하문명은 중국문명과는 전혀 다르고 한민족의 문화로 볼 수밖에 없다. 한반도와 만주 지역의 신석기 문화는 빗살무늬토기로 특징지어지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와 함께 묘제에서도 한반도와 만주 지역 문화권과 황화문화권은 분명하게 구분이 된다. 지금의 베이징 동쪽에 가까이에 있는 강인 난하를 경계로 하여 동쪽과 서쪽의 묘제가 완전히 다르다. 난하의 동쪽 지역인 한반도와 만주 지역에는 돌무지무덤, 고인돌, 돌 상자 무덤 등 돌을 재료로 사용한 무덤들이 많이 분포되어 있지만, 난하 서쪽 지역에는 이러한 유형의 무덤들이 거의 없으며 움 무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움은 구덩이를 의미한다. 이러한 현상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난하를 경계로 하여 동쪽 지역과 서쪽 지역이 서로 다른 문화권이라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한반도와 만주 지역은 동일한 문화권이라는 사실이다.

홍산문화는 중국 내몽고자치구 적봉시 홍산구에서 발견된 기원전 4,000년 전후의 신석기 문화인 동시에, 적봉시와 그 주변에서 광범위하게 발견되는 후기 신석기 문화 전체를 통칭해서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하가점하층문화는 적봉시 홍산구 홍산 삼림공원 근처의 하가점이라는 마을에서 발견된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청동기 문화를 의미한다. 적봉 지역에서 비슷한 청동기 유물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면서 하가점하층문화는 홍산문화의 뒤를 이어 이 지역에서 일어난 초기 청동기 문화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적봉시 남쪽에는 몽골어를 한자로 음차해서 적은 ‘노노아호산’이라는 산맥이 있다. 이 산맥 남쪽에는 ‘대릉하’와 ‘소릉하’라는 강이 ‘발해만’으로 흘러가므로 능하 지역으로 통칭하고 있다. 이 능하 지역에서 기원전 800년에 형성된 것으로 보이는 청동기 유물이 다량 발굴되었다. 이것으로 알 수 있는 것은 기후가 건조하고 추워지자 상당수의 홍산문화인들이 ‘노노아호산’ 남쪽의 따뜻한 능하 지역으로 이동해 발달한 정주 청동기 문화인 ‘능하문화’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한국 상고사 연구에서 능하 지역은 주목해야 할 곳인데, 그 이유는 중국식 동검과는 다른 비파형 동검과 다뉴세문경 등이 이곳에서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물은 만주를 거쳐 한반도에서도 출토되고 있어 능하 지역에 있던 고조선의 영향력이 만주와 한반도로 확장된 것으로 해석하는 학자들이 많다. 그래서 만주와 한반도는 구리와 아연을 품은 돌을 찾아낼 수 있는 능하문화인들이 들어오면서 청동기시대로 들어갔다고 할 수 있으며, 드넓은 땅 만주, 지금은 중국의 영토가 되었지만 그곳에는 우리 선조들의 역사가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다.

또한 홍산문화를 정점으로 화려한 꽃을 피웠던 문명은 요하 일대에서 집중적으로 발굴되고 있어 일명 ‘요하문명’이라 불리고 있다. 1980년 초 만리장성 북쪽 요서 지방 일대에서 어마어마한 신석기 유적이 무더기로 발굴되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요하문명이다.

요하문명의 출현은 중국을 당황하게 만들었는데, 그 이유는 1980년대부터 황하문명보다 더 오래되고 더 발달된 문화가 만리장성 이북지역에서 발굴됐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중국은 만리장성을 중원과 변방을 가르는 북방한계선으로 인식해 왔다. 중국은 중화문명의 기원이 한 곳이 아니라 여러 곳이라는, 이른바 ‘다(多)기원론’을 들고 나왔다. 즉 요하문명 출현 이후부터는 요하문명을 중화문명의 시원지로 삼고 있는 것이다.

신석기시대가 시작되던 때부터 난하와 대릉하, 요하 유역은 동이의 여러 부족이 사는 중심지였다. 이들은 기원전 6~5천 년경에 빗살무늬토기를 만들어 쓰고, 기원전 3,500년에 이르러서는 큰 신전과 제단을 지어 여신을 숭배하며, 죽은 이를 위하여 적석총을 만들어 주는 등 황하 유역의 화하족과 확연히 구별되는 독자의 문화를 발전시켰다. 이러한 동이문화권은 만리장성 부근부터 만주, 연해주를 거쳐 한반도 및 일본 남부에 이르는 광역에 형성되었다. 후기 신석기 문화를 토대로 정치사회로 발전한 동이족은 그 문화권의 중심부인 대릉하·요하 유역에서 기원전 2,333년에 국가를 건설하고 국호를 ‘조선’이라고 하였다. 단군은 조선의 임금을 부르던 말이었다.

단군의 조선 건국 사실은 그동안 문헌상 설화식 기술로서 전해 오던 것이었으나 이른바 ‘요하문명’이 발견됨으로써 그 실체성이 한층 확실해진 것이다. 고고학적 연구 성과를 토대로 고조선의 자취를 좇는 학자들은 홍산문화와 하가점하층문화를 고조선의 출범과 연결하고 있다. 즉, 신석기 후기 문화인 홍산문화인들이 홍산 지역에서 초기 국가 체제를 형성하여 생활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곳에 청동기를 개발한 환웅족 무리 3,000여 명이 들어와 하가점 지역에서 신석기 후기 문명 단계에 있는 종족을 지배하며 새로운 문화를 열었던 것이다. 중국 역사서에서는 전혀 흔적을 찾을 수 없는 홍산문화와 이 문화를 바탕으로 일어난 하가점하층문화의 발견은 한국 역사학계에도 충격을 주었다. 왜냐하면 하가점하층문화에서 일어난 것으로 보이는 비파형 청동검이 발해만 지역과 만주를 거쳐 한반도로 전래되기 때문이다. 하가점하층문화인들이 만든 청동검은 황하에서 발견되는 중국식 청동검과 제작 방법이 다른데, 이러한 청동검 제조법이 한반도로 들어오는 것이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확인된 것이다.

한반도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많은 고인돌이 발견되는 지역이다. 그러나 하가점하층문화인들은 고인돌을 만들지 않았다. 고인돌은 요하 건너 만주 지역에서부터 발견되었다. 만주 지역의 고인돌 문화가 한반도로 들어오는 모양을 보여주는 것이다. 비파형 동검은 요서 지역에서부터 한반도로 들어오고, 고인돌은 요동 지역에서부터 한반도로 들어온 것이다.

하가점하층문화는 70여 개의 성을 짓고 고구려식의 ‘치’를 보유한 특이한 한민족 특유의 성 구조를 갖고 있다. 또 토성, 석성으로 구성된 3개의 수도도 보유하고 있고 청동기도 제법 잘 주조하고 청동 창도 출토되었다. 70여 개의 성으로 자신들의 영역을 확보하고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이렇듯 70개의 성을 관리하려면 국가 체제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한·중 사서에 등장하는 요서 지역의 유일한 국가는 고조선이다.

홍산문화와 하가점하층문화의 고고학적 발굴 성과를 토대로 정리해 보면 하가점하층문화를 만든 세력이 만주로 이동했고, 그곳에서 고인돌 문화를 만든 세력과 합세해 지내다가 다시 한반도로 이주해온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추정이 사실이라면 단군조선의 흔적은 한반도가 아니라, 하가점이 있는 내몽고 적봉시 일대에서 찾아야 한다. 따라서 고조선의 건국지는 오늘날의 요서 지역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요하문명이라고 불리는 홍산문화와 하가점하층문화는 한민족의 상고시대 문화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