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에서 중국이 문화로 충돌하는 나라는 한국이다.

중국은 자국이 ‘발명’한 문화가 한국으로 전해졌으니, 문화의 소유권이 중국에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은 한국문화는 중국문화와 본질적으로 다르며 중국에서 기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양국이 문화의 기원을 밝혀 특정 문화의 소유권을 갖게 되면 논란이 일단락될 수 있는 것일까? 2004년 단오 논쟁을 시작으로 끊임없이 중국이 한국과 문화로 충돌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동북아역사재단은 지난 24일 한국과 중국의 문화소유권 논쟁과 그 이면에 숨겨진 진짜 이야기를 다른 연구총서 〈문화의 시대, 한중 문화충돌〉을 발간했다. [사진 동북아역사재단]
동북아역사재단은 지난 24일 한국과 중국의 문화소유권 논쟁과 그 이면에 숨겨진 진짜 이야기를 다른 연구총서 〈문화의 시대, 한중 문화충돌〉을 발간했다. [사진 동북아역사재단]

동북아역사재단(이하 재단)은 한국과 중국의 문화소유권 논쟁과 그 이면에 숨겨진 진짜 이야기를 다룬 연구총서 135호 〈문화의 시대, 한중 문화충돌〉 (김인희 편)을 발간했다.

편찬 책임자는 김인희 재단 한중관계사연구소 소장으로, 임동욱 광주대 명예교수, 박정수 전 한양대 연구교수, 박영환 동국대 교수, 윤경우 국민대 교수, 신종원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권혁희 강원대 교수가 집필진으로 참여했다.

〈문화의 시대, 한중 문화충돌〉에서는 중국의 목적이 문화의 기원을 밝혀 소유권을 갖는 것이라면, 다른 나라와 소유권 논쟁을 벌이지 않는데 한국하고만 문화기원 논쟁을 일으키는 목적이 다른 데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중국이 문화기원 논쟁을 일으키는 이유는 한류(韓流)을 포함해 서구문화 유입에 따른 자국 문화의 침식 우려, 그리고 우월적 문화관으로서 중화주의가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 시작되었다고 분석했다.

해당 연구서 집필진은 한중 간 발생한 실제 문화충돌 사례를 중심으로 원인을 살펴보고 해결 방안을 모색했다. 특히, 한중 문화충돌의 출발점이자 한국문화에 대한 열광이 혐한으로 바뀌는 계기가 된 단오 논쟁에 대해 상세하게 분석했다.

한국은 강릉단오제를 200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했다. 한국의 단오는 중국과 날짜를 제외한 구체적인 행사와 내용이 완전히 다른 문화이며, 특히, 천년을 이어온 강릉단오제는 독특한 공동체 문화이다. 반면, 중국의 단오는 초나라 때 간신의 모함을 받고 투신자살한 애국시인 굴원의 영혼을 위로하는 제사에서 유래했다.

200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강릉 단오제. [사진 강릉단오제 누리집]
200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강릉 단오제. [사진 강릉단오제 누리집]

그러나 2004년 5월 6일 ‘런민일보(人民日報)’는 중국 문화부 부부장(차관) 저우허핑(周和平)의 말을 인용해 “우리는 무슨 면목으로 조상을 대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자극적인 문구를 뽑아 중국의 민족영웅 굴원의 제사 문화를 한국이 강탈해갔다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이를 중국 언론들은 잇달아 보도하며 오해를 더욱 확산해 나가 중국 인민과 학생들의 민족주의 감정을 고양했고, 한국을 ‘중국문화를 빼앗아간 도둑, 문화침략자’라 성토했다.

당시 중국 학자 중에는 한‧중 단오 문화가 서로 다르며, 한국이 등재했다고 중국이 등재할 수 없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기도 했으나, 소수의 목소리는 묻혔다. 또한, 런민일보 기사에서 저우허핑 문화부 부부장에게 편지를 보낸 동북 모대학 교수로 언급된 우빙안(烏丙安) 교수도 보도 5일 후 본인이 직접 중국 언론의 보도가 과장되고 잘못되었음을 지적했으나 사실의 검증 없이 오보는 확산되었다.

실제 2009년 9월 중국의 단오절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이후에도 중국 정부와 언론은 한국 강릉단오제에 대한 오해가 있었다고 공개적으로 해명하지 않았다.

연구서에서 박영환 교수는 중국이 단오 논쟁을 통해 얻고자 한 것과 관련해 “단오 논쟁은 표면적으론 한국과 중국 간 문화쟁탈 형식을 취했지만, 사실은 중국 내부의 결속 강화와 서구적인 가치관 배척, 중국 전통문화 부흥을 위한 고육지책”이었다고 지적한다.

최초 발단이 된 기사의 전체 내용은 중국 전통명절을 소홀히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공산당 집권 후 문화대혁명을 거치며 중국 설날인 춘절을 제외한 단오, 중추절 등 전통 명절을 거의 쇠지 않고 휴일도 아닌 상황에서 젊은이들이 크리스마스나 발렌타인데이 같은 서구식 명절에 심취한 것을 지적한 것이다. 한‧중 단오 논쟁 이후 2008년 중국 당국은 전통 명절을 부활했다.

박 교수는 “문화대혁명 전후 전통 명절을 폐지할 때, 또한 그것을 복원할 때와 동일한 방식으로 단오 논쟁도 ‘런민일보’가 앞장서고 다른 여론이 따라갔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2000년대 중후반 중국에서 한류 열풍이 퇴조한 것과 한중 단오 논쟁과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도 우연이라기에 시기상 매우 절묘하게 일치한다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가 2006년 이후 한국 드라마 수입을 대폭 축소하며 한류 열기가 퇴조할 수밖에 없었던 점을 지적했다.

김인희 소장은 “2005년 〈대장금〉이 중국에서 크게 유행하면서 중국은 한국문화가 중국문화를 침략한다는 위기의식을 갖게 되었다. 중국 학계에서 ‘한국이 중국의 유교종주국 지위를 빼앗기 위해 ‘대장금’을 제작 방영하였다‘는 음모론이 대두되고, ‘중국인의 한국문화 열광에 냉수를 부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고 했다.

박정수 교수는 “한류의 영향력이 세계적으로 높아질수록 중국의 반응 역시 감정적으로 더욱 격해지는 모양새”라고 했다. 박영환 교수는 “K-POP 열풍 속에 중국 어린 학생들이 한국 태극기를 들고 열광하는 모습은 중국 당국으로서 용인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중국은 단오 논쟁을 통해 화살을 외부로 돌림으로써 내부를 결속하고 단속하는 효과를 거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임동욱 교수는 중국 정부의 전파공정과 문화 애국주의와 관련해 “중국 정부는 애국주의 강화를 통해 해외 시장에 자국의 문화를 널리 알리면서도 다른 나라의 문화상품은 자국의 시장으로 유입되는 것을 막아내는 이중적 임무를 수행한다”라고 했다.

김인희 소장은 “기존의 문화충돌이 무의식적 오독에 속한다면, 현재의 문화충돌은 한국이 역사적으로 중국의 종속적 관계에 있었다고 주장하려는 의식적 오독에 해당된다”라고 했다.

더불어 김 소장은 “2016년 이후 한국에 대한 문화 공격이 증가한 직접적인 원인으로 중국 한류 팬이 애국주의 대열에 투항한 것을 빼놓을 수 없다”라며, 그동안 매국노라 비난받던 한류 팬들이 한국의 사드 배치 이후 입지가 좁아지자 애국주의 대열에 투항하면서, 공격의 내용이 구체화되고 수량도 증가했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중국 정부가 2016년 이후 전문대 학생 이상 학력을 가진 이들을 대상으로 조직한 인터넷 댓글 부대인 ’청년 인터넷 문명지원자‘의 활동도 한국문화에 대한 공격이 증가하는 원인이 되었다고도 했다.

이번 연구서에서는 중국 민족주의 특징을 보다 자세히 살폈다. 또한, 중국이 주장하는 한국 문화의 중국 기원론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고, 중국의 문화 공경에 탄력성을 가지도 대응할 것을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