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국학원(원장 권나은)은 8월 11일 천안에 소재한 국학원에서 “중국의 역사침탈 20년 이대로 둘 것인가?”라는 주제로 제45회 정기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이 학술회의에서 우실하 한국항공대학교 교수가 “동북공정과 중화인민공화국의 고조선 역사 왜곡 실태”라는 주제로 중국의 역사왜곡 허구성을 비판했다.

우실하 한국학공대학교 교수  [사진 국학원]
우실하 한국학공대학교 교수 [사진 국학원]

우 교수는 “중화인민공화국은 ‘문화공정’으로 김치, 한복, 농악 등을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고, 최근에는 아리랑도 중화민족의 것이라고 주장한다”며 “중화인민공화국의 소위 ‘문화공정’의 기본적인 전제는, (1) 중화인민공화국은 56개 민족으로 구성되어있는데 이들은 ‘이미 하나로 통일된 중화민족’이며, (2) 조선족은 56개 민족으로 구성된 중화민족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3) 조선족의 역사, 문화는 모두 중화민족의 것이고 중화인민공화국의 것이라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런 중화인민공화국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이론적 기초가 바로 ‘통일적다민족국가론(統一的 多民族國家論)’이다. 이는 중화인민공화국 역사학계의 이론적 대전제로, (1) ‘중화민족’이라는 학술적으로 허용될 수 없는 허구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개념을 만들어내고, (2) 주변국의 역사와 문화를 침탈하는 강력한 이론적 무기이다.

우 교수에 따르면 통일적다민족국가론은, (1) 중화인민공화국은 ‘56개 민족이 하나의 중화민족으로 통일되어 구성된 국가’라는 의미로, (2) 이들 중화민족을 구성하는 56개 민족의 과거-현재의 역사는 모두 치나(cina, china) 역사의 일부이며, (3) 치나가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역사상 치나의 강역’은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의 강역’이 기준이 아니라 최대 크기에 달했던 ‘1840년 이전, 곧 청나라 영토가 제국주의 침탈을 당하기 이전의 강역’이 ‘역사상 치나의 강역’이라는 것이다.

우 교수는 통일적다민족국가론을 바탕으로 중국의 (고)조선에 관한 기본 입장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고)조선은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을 말한다.

“(1) 단군조선은 신화에 불과하다고 인정하지 않으며, (2)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은 ‘화하족 (華夏族)이 주체가 되어서 건설한 지방정권이나 제후국(諸侯國) 혹은 번속국(蕃屬國)으로 보며, (3) 따라서 단군조선은 신화이고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은 전체가 ‘치나(cina, china) 역사’의 일부라는 것이 기본 입장이다.”

이어 우 교수는 중화인민공화국 역사-고고학계의 연구 결과와 당의 입장이 정리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보는 대표적이고 대중적인 인터넷 포탈인 백도(百度: 바이두)의 백과사전인 백도백과(百度百科)에 소개된 (고)조선에 관한 내용을 소개했다.

즉 (1) 단군조선은 신화-전설에 불과 하며, (2) 위치는 한반도 북부에 있었고, (3) 기자-위만조선 시기(BC 1122 – BC 108)만 인정하며, (4) 기자-위만조선은 모두 치나(cina, china) 정권의 지방정권이나 제후국 혹은 번속국이었으며, (5) 문화적으로나 혈연적으로나 오늘날의 대한민국이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역사와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6) 주요 민족도 화하족(華夏族)과 부여족(夫餘族)이고 따라서 당연히 이들은 중화고족 혹은 중하민족의 일부이며, (7) 결론적으로 (고)조선은 ‘치나 역사의 일부’라는 것이다.

우 교수는 “많은 한국인이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리(고구려) 역사를 빼앗아 가고 있다’고 흥분할 때, 중화인민공화국은 이미 (고)조선-부여-고구리-발해의 역사를 모두 치나 역사로 만들어 버렸다.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고고학계에서 한국사로 인정하는 것은 삼한시대부터이며, 그 영역도 한반도 중부 이남에 한정되어 있고, 반식민지로 보고 있다”며 “중화인민공화국의 대표적인 백과사전에서 (고)조선을 이렇게 소개하는 것은, 많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고고학자들이 이런 입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입장에 대해서 우리가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그들의 입장을 만들어 온 기본적인 역사관인 통일적다민족국가론, 중화민족 개념, 민족 귀속과 강역 이론 등에 대해서 철저히 분석하고 대응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상고사-고대사는 치나의 역사라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입장은 더욱더 공고해질 것이다”고 강조했다.

토론자 송시내 우리역사바로알기 교육국장. [사진 국학원]
토론자 송시내 우리역사바로알기 교육국장. [사진 국학원]

우 교수는 한국학계에서도 이제는 (고)조선에 관해 새로운 시각에서 연구할 필요가 있다며

첫째, 우선적으로 중화인민공화국 학계 역사 이론의 바탕이 되는 ‘통일적다민족국가론’과 그에 기반한 ‘중화민족’이라는 허구적 개념을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일적다민족국가론’과 그에 기반한 ‘중화민족’이라는 허구적 개념을 정밀하게 분석하고 해체시키는 것이 동북아시아 역사를 재정립하고, 우리의 상고사-고대사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우선적인 과제라는 것이다.

둘째로 우 교수는 새롭게 발견된 요하문명을 우리의 관점에서 본격적인 연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 교수는 연구 결과 우리의 상고사-고대가와 연결되는 많은 것들이 이 요하문명 지역에서 시작됐다고 밝혔다. 곧, (1) 빗살무늬토기의 기원도 소하서문화이고, (2) 각종 적석묘의 기원도 흥륭와문화고, (3) 동북아시아의 옥결(玉玦)의 기원도 흥륭와문화이고, (4) 편두(偏頭)의 기원도 이미 1만 년 전에 흑룡강 지역에서 출발해서 홍산문화에서 광범위하게 확산되었고, (5)뼈를 이용해 점을 치는 골복(骨蔔)의 기원도 조보구문화이고, (6) 계단식 적석총의 기원도 홍산문화이고, (6) 치를 갖춘 석성의 기원도 하가점하층문화이고, (7) 비파형동검의 기원도 하가점상층문화다.

우 교수는 “현행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서는 비파형동검이 출토되는 지역을 ‘(고)조선의 세력권’, ‘(고)조선의 문화권’, ‘(고)조선의 세력 범위’ 등으로 가르치고 있고, 이 범위에는 요하문명 지역이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며 “만주 일대에서 수 천 년 동안 묻혀 있다가 새롭게 드러난 요하문명 이 우리의 상고사-고대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연구하는 것은 학자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다”고 말했다.

셋째로 우 교수는 셋째, 요하문명 지역을 중심으로 좌로는 치나로 우로는 한반도로 연결된다는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며 ‘A자형 문화대(A字型文化帶)’를 제시했다. ‘A자형 문화대’는, (1) 요하문명 지역에서 서남방으로 치나의 황해-동중국 해를 따라 남하하는 노선, (2) 요하문명 지역에서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연결되는 노선, (3) 장강 하류 지역에서 해로(海路)로 한반도 남부와 일본으로 연결되는 노선을 상정하고 있다.

우 교수는 “‘A자형 문화대’는, (1) 요하문명을 ‘동북아 공통의 시원문명’으로 삼아서, (2) 주변국과의 공동 연구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이고, (3) 단군조선의 실체를 좀 더 실제적으로 연구하고 입증할 수 있는 것이며, (4) 미래의 역사 갈등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시각이다”고 설명했다.

넷째, 우 교수는 새롭게 전모를 드러내고 있는 요하문명에 대한 다양한 분야의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영성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수 [사진 국학원]
최영성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수 [사진 국학원]

우 교수는 “중국에서는 이미 다양한 분야에서 홍산문화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발표되고 있다. 우리 학계에서도 다양한 분야에서 요하문명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나와야 하고, 이제는 고고-역사학이 기후학, 지질학, 문화사, 사상사 등의 연구와 만나 진정한 의미의 ‘학제간 연 구’가 이루어져야 한다”면서 “우리가 현재 중화인민공화국 학계의 새로운 연구 동향과 고고학적 발굴 결과 등에 대해 우리의 입장에서 분석하고 대응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모든 상고사-고대사는 ‘치나 역사’의 방계 역사로 전락하게 된다는 점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술회의 두 번째 발표자로 최영성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무형유산학과 교수는 “최치원 「난랑비서(鸞郎碑序)」에 대한 검증: ‘玄妙之道, 包含三敎’를 중심으로”를 발표했다.

최 교수는 “최치원이 삼교로써 풍류를 설명한 것은 당시 국제적으로 공인된 종교와 사상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기실 그 이면에는 상고대부터 내려오던 신교(神敎)의 삼원사 상(三元思想), 즉 삼위관(三位觀)이 깔려 있었다. ‘삼위’란 하나의 실체 안에 있는 세 위격(位 格)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동북아문화권에는 상고대부터 천⋅지⋅인의 합일체(合一體)를 최상의 진리로 여기는 사유구조가 존재하였다. 이를 삼일지도(三一之道)라고 하는데, 경우에 따라 셋을 하나로, 하나를 셋으로 보는 것이다. 『천부경(天符經)』에서 ‘일석삼극(一析三極)’이라 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최치원이 풍류를 유⋅불⋅도 삼교와 대비하여 관계를 설정한 것은 한국사상의 특수성과 보편성을 염두에 둔 것이라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최 교수는 “최치원이 생각하는 민족 고유의 도는 선인들의 ‘유풍여류’ 그것이었을 것이다. 이것이 ‘풍류’ 두 글자로 정착되었을 것이다. 전대부터 내려온 전통〔遺風〕과 그 흐름이라는 의미다. 최치원은 여기에다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였다. 먼저 유가에서 중시하는 ‘풍(風)’과 ‘화(化)’의 개념으로 재해석하였다. 그런 해석을 담은 글이 「난랑비서」다. 풍류는 ‘풍화’의 의미로 풀어낼 수 있다. 둘다 ‘바람’과 ‘변화’라는 개념적 사유의 틀로 되어 있다. ‘바람’이 체라면 ‘흐름’은 용이다. 최치원의 풍류 해석에는 ‘바람의 철학’, ‘변화의 원리’가 그 원천을 이룬다”고 밝혔다.

토론자 오보화 씨(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대학교 박사과정). [사진 국학원]
토론자 오보화 씨(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대학교 박사과정). [사진 국학원]

또한 최 교수는 “풍류사상의 본질은 최치원이 말한 ‘포함삼교 접화군생’ 여덟 글자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포함삼교 접화군생’은 최치원이 풍류도를 왜 ‘현묘한 도’라고 했는지 그 해답을 안에 담고 있다. 풍류도가 유⋅불⋅도 삼교사상과 이질적이지 않으면서도 그 자체는 별개의 것이라는 점, 또 풍류도가 군생을 변화로 이끄는 것이 참으로 신묘하다는 점 때문에 ‘현묘한 도’라고 하였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한국사상은 합리성⋅정감성⋅신비성을 함께 지녔다는 데서 큰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이것은 ‘풍류’라는 말 자체의 함의(含意)에서 읽을 수 있다. 또 ‘접화군생’의 과화존신적(過化存神的) 신비성과 연관된다”며 “이 땅에서 유교가 성행함에 따라 우리 고유사상이 지닌 신비적 성격이 차츰 약화되어 간 것이 사실이지만, 한국사상에서 신비적 성격이야말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요소라 할 것이다. 신비적 성격을 가진 풍류도였기에 최치원이 ‘현묘지도’라고 하였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자로는 송시내 우리역사바로알기 교육국장(상명대 박사과정 수료)과 오보화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박사과정생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