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물의 증식 작용에 의해 음식물은 발효 또는 부패한다.

발효는 맛과 향, 그리고 식품의 저장성을 높이기 위한 기술로, 특정한 조건과 환경을 갖추었을 때 나타난다. 김치와 치즈, 술, 요구르트와 같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며, 특히 발효음식은 건강을 증진하는 음식으로서 사랑받는다.

반면, 음식물이 부패하면 식중독을 일으키거나 심하면 목숨을 잃는다. 원리는 비슷하지만 결과는 전혀 다르다. 사람의 생각도 마찬가지이다.

세계김치연구소 박채린 책임연구원은 15일 동북아역사재단 발행 리포트에서 ‘음식도 발효를, 생각도 발효를’이란 주제로 김치를 둘러싼 한중 문화충돌을 다뤘다. 그는 김치 종주국 논쟁을 부추긴 중국 언론의 가짜뉴스, 잘못된 정보를 하나하나 짚어내고, 한국과 중국의 절임채소 문화의 차이, 서로 다른 발전을 이룬 이유를 밝혔다.

지난 4월 15일 동북아역사재단이 발행한 동북아리포트에 박채린 세계김치연구소 책임연구원의 김치에 관한 논문이 게재되었다. 사진 동북아역사재단
지난 4월 15일 동북아역사재단이 발행한 동북아리포트에 박채린 세계김치연구소 책임연구원의 김치에 관한 논문이 게재되었다. 사진 동북아역사재단

팩트체크1 中 환구시보, 파오차이 ISO등재로 김치종주국 논쟁 ⭢ 가짜뉴스

먼저, 박채린 책임연구원은 2020년 11월 24일 중국 쓰촨지역 파오차이가 국제표준화기구(ISO)의 인증을 받은 것을 두고 중국 언론 ‘환구시보’가 “김치 종주국 한국의 굴욕”이란 기사로 촉발된 김치 종주국 논쟁을 다뤘다.

당시 ISO 파오차이 규격에는 “김치는 적용되지 않는다”라고 적시되었고, ISO 측에서도 “파오차이와 김치는 다르다”라며 보도 내용을 공식적으로 부정했다. 하지만 중국의 인기 유튜버가 김치를 자국 전통음식인 것처럼 소개하는 영상을 올리면서 양국 누리꾼의 공방은 가열되었다.

이와 관련해 박 연구원은 “2년여가 지나 당시를 냉정하게 되짚어 보면 감정적 대응이 앞서 논점을 제대로 짚지 못했다”라며 “여전히 재발 여지가 남아있기에 지금이라도 중국 주장에 대한 논점을 명확히 파악하고, 대응 논리를 철저히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왼쪽) 한국의 가미발효식품 '김치'. (오른쪽) 중국의 채소절임 '파오차이'. 사진 동북아역사재단.
(왼쪽) 한국의 가미발효식품 '김치'. (오른쪽) 중국의 채소절임 '파오차이'. 사진 동북아역사재단.

팩트체크2 中 바이두, 김치에 중국 유교의 흔적‧삼국시대에 한국에 전파 ⭢ 가짜정보

중국의 최대 포털사이트 ‘바이두’는 중국기원이라는 직접적인 단어를 피하는 대신 “김치에는 중국 유교의 흔적이 있고, 이것이 삼국시대에 한국에 전파된 후 여러 단계를 거쳐 오늘날 김치로 발전”했다고 밝혔다. 이 역시 “채소절임의 발상지는 중국이므로 김치 역시 그 모태가 중국”이라는 중화주의적 주장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은 것인데 이를 입증할 근거가 없다.

첫째, 혹한기 채소를 장기간 보관하기 위해 부패를 막는 효과가 큰 소금에 절여 둔 ‘원시형 단순 절임’은 특별한 기술이 필요치 않아 각 문화권에서 자생했다는 것이 보편적인 견해이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 발효 절임 음식으로, 한국의 김치와 장아찌를 비롯해 독일의 슈크루트(sauerkraut, 사우어크라우트), 그리스‧아랍지역의 투르시(tursu), 인도‧남아시아 지역 아차르(acharr), 중국의 파오차이(泡菜), 일본의 오싱코(新香)가 세계 각국에서 발전했다.

채소절임은 각 문화권에서 자생해 각국에서 발전했다. (왼쪽) 독일의 사우어 크라우트. (오른쪽) 그리스‧아랍지역의 투르시. 사진 Pixabay 이미지.
채소절임은 각 문화권에서 자생해 각국에서 발전했다. (왼쪽) 독일의 사우어 크라우트. (오른쪽) 그리스‧아랍지역의 투르시. 사진 Pixabay 이미지.

둘째, 중국은 《시경》(서기 전 5~6세기)에 등장하는 ‘저菹’를 두고 김치의 원조라고 주장한다. 또, 시경의 기록이 주나라 민요를 적은 것이므로 그 이전부터 ‘저’가 존재해 중국인은 3천여 년 전부터 채소절임을 먹어왔다고 자랑한다. 그리고 한나라 때 유교가 전래되면서 ‘저’도 함께 우리나라에 전해져 여러 단계를 거쳐 현재의 김치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중국 고대의 ‘저’가 유교 의례음식 중 하나였던 점, 한국 유교가 중국에 뿌리를 둔 점을 엮어 중국의 ‘저’문화가 중국 유교와 더불어 한국에 그대로 유입된 것인양 교묘하게 엮은 것이다.

그런데 ‘저’는 인류 보편적인 문화인 원시형 채소절임일 뿐 유사한 문화가 여러 지역에서 자생하기에 중국이 발원지라는 증거가 될 수 없다. 다만, 한글 창제 이전까지 한자를 기록문자로 쓰다 보니 ‘김치’를 ‘저菹’ 또는 ‘침채沈菜’로 표기했을 뿐이다.

박채린 책임연구원은 동일한 사례로 우리 고유 음식인 ‘떡’을 한자어 ‘병餠’으로 표기한 것을 들었다. “중국의 ‘병’은 ‘밀가루 반죽을 기름에 지진 것’을 지칭하지만, 한국에서 떡은 ‘쌀가루를 쪄서 만든 것’이다. 표기로는 같은 한자지만, 그 실체가 전혀 다르다”라고 강조했다.

中 한나라 말 전파 주장, 도리어 한국의 발효문화가 중국으로 전파 근거 있어

그는 “중국이 후한 말기(한국 삼국시대)에 채소절임 기술을 우리나라에 전해 주었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입증할 근거가 전혀 없다. 그렇다 보니 한나라가 고조선 땅에 설치한 한사군을 통해 전했다고 추정하기도 하고, 최초의 농서 《제민요술》과 엮기도 한다”라며 “《제민요술》에서 확인되듯 중국과 한국의 채소 절임원이 전혀 달라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기 어렵고, 후한 말기에 전파되었다는 주장도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박 책임연구원은 “도리어 중국 역사서인 《삼국지》 〈위지동이전〉에서는 ‘고구려인들이 발효음식을 잘 만든다’라며 한민족의 발효 기술을 인정하고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콩을 소금에 발효시킨 두장豆醬을 채소 절임원으로 하는데 고구려 및 북방지역의 장醬문화가 한나라 시기 중국으로 전파되었고, 《제민요술》이 기술된 6세기 전반에는 중원 전역으로 퍼져 중국식 채소절임법으로 발전했다는 근거가 제시된다. 우리나라 메주에 해당하는 시豉를 이용한 중국식 채소절임법이 《제민요술》에 소개되었는데 이후 중국 식문화에서 사라졌다”라고 설명했다. (2편 계속)

2편 “한국 김치는 하나의 완결된 음식, 중국 파오차이는 식재료로 발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