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는 분명 소금 절임에서 유래했으나 전혀 다른 돌연변이이다”

전 세계적으로 채소의 소금 절임음식들이 발달했다. 독일의 슈크루트(sauerkraut, 사우어크라우트), 인도‧남아시아 지역 아차르(acharr), 그리스‧아랍지역의 투르시(tursu), 중국의 파오차이(泡菜), 일본의 오싱코(新香), 한국의 장아찌 등이다.

한국 발효음식의 진수 '김치'.  [사진 Pixabay 이미지]
한국 발효음식의 진수 '김치'. [사진 Pixabay 이미지]

하지만 최소한 삼국 형성기부터 갈라져 나온 것으로 보는 김치는 훨씬 복잡한 프로세스를 거쳐 모양, 형태, 맛의 차이를 갖게 되었다. 문화인류학자 전경수 서울대 명예교수는 발효음식을 ‘사람이 개입하지 않는 미생물만의 영역과 사람의 지식과 행동이 개입해야 하는 문화적 작업이 결합하여 완성되는 공존의 산물’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김치에 한국인들의 지식과 행동이 어떻게 개입해 독자적인 ‘문화적 산물’을 만들었는지 역사적으로 살펴 다른 채소절임류와 다르게 진화해 한국 음식문화에서 독특한 지위를 갖게 되었는지 밝히는 학술발표가 있었다.

세계김치연구소 박채린 책임연구원은 지난 7월 29일 동북아역사재단이 개최한 한중 문화충돌 대응 학술회의 “한국 음식문화의 미학, 그 여정에 대한 역사적 이해”에서 김치 분야를 맡아 ‘한국 발효음식의 진수, 김치의 탄생과 진화’를 주제로 발표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지난 7월 29일 한중 문화충돌 대응 학술회의 '한국 음식문화의 미학, 그여정에 대한 역사적 이해'가 열렸다. [사진 동북아역자재단]
동북아역사재단은 지난 7월 29일 한중 문화충돌 대응 학술회의 '한국 음식문화의 미학, 그여정에 대한 역사적 이해'가 열렸다. [사진 동북아역자재단]

현재 중국은 채소절임 문화가 단순절임인 ‘옌(腌)’에서 파오차이를 비롯해 장차이, 옌차이, 쏸차이 등을 발효절임인 ‘즈(漬)’ 단계에 들어간 것이 적어도 후한 시기부터 지속된 것이라 주장한다. 공자가 ≪시경(詩經)≫에 주나라 문왕이 창포저를 즐겼다는 것을 따라 하느라 “얼굴을 찌푸려가며 저(菹)를 먹었는데 3년이 지난 후에나 익숙해질 수 있었다”는 내용에 대해 산미가 높아진 ‘즈(漬)’계열일 가능성을 짐작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중국은 김치의 원조가 중국의 파오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 감칠맛 지향하는 발효절임 VS 중국 신맛 지향하는 발효절임, 1~3세기 계통분화

박채린 연구원은 “인류의 보편적 문화인 ‘단순절임’에서 벗어나 각자의 자연생태, 사회경제적 여건, 민족적 기호에 영향을 받으면서 한국과 중국의 ‘발효절임’은 1~3세기경 계통 분화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라며 각종 문헌에 따라 신맛을 지향하는 중국의 발효절임과 아미노산계 감칠맛을 지향하는 한국의 발효절임을 비교했다.

박 연구원은 사례로 6세기 북위 때 산동지역 가사협이 저술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농사기술서 ≪제민요술≫에서 나타난 중국의 채소절임 제조방식이 한국과 상이하다는 점을 들었다.

첫째, 한국의 ‘발효절임’은 생채소를 그대로 이용하는 비중이 높은 반면, 중국은 데치거나 건조하는 등 전前처리를 거쳐 초기 발효에 관여하는 미생물 수를 최소화시키려는 목적의 제조법 비중이 높다.

둘째, 1차 원료 소금을 직접 담금원으로 활용하는 방식에서 2차 가공품인 장, 식초, 술 등 발효음식을 담금원으로 재발효하는 방식으로 발전했는데, 이 과정에서 중국은 한국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술과 식초의 활용이 두드러진다. 우리나라는 술과 식초 등 고도 발효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마늘 등 일부 원재료에 제한적으로 활용될 뿐이다.

한국 김치의 독자적 행보, 14~15세기 가미발효·17~18세기 복합발효

한국 김치만의 특징은 젓갈을 활용한 ‘가미발효’와 고추가 들어간 김칫소라는 전용 양념으로 발효하는 ‘복합발효’이다. 중국의 채소절임은 발효절임에 집중적으로 특화된 기술인 반면, 한국의 김치는 원시형 단순절임⭢발효절임⭢가미발효절임⭢복합발효절임까지 4단계까지 발전단계를 거쳐 발달했다.

세계김치연구소 박채린 책임연구원은 주제발표를 통해 한국 김치와 중국 파오차이의 차이를 설명했다. [사진 동북아역사재단 학술회의 자료]
세계김치연구소 박채린 책임연구원은 주제발표를 통해 한국 김치와 중국 파오차이의 차이를 설명했다. [사진 동북아역사재단 학술회의 자료]

박 연구원은 “김치가 지닌 또 하나의 창의적 경이로움이 바로 식물성 채소절임에 동물성 발효식품인 젓갈을 넣어 맛과 영양성 모두를 잡았다는 점”이라고 했다. 우리 젓갈에 대한 기록은 통일신라 문무왕(683)이 왕비를 맞이하며 보낸 폐백품목에서 확인되는데 젓갈이 들어간 김치는 2017년 발굴된 《주초침저방酒醋沉菹方》 속 ‘감동저甘動菹’, 《세종실록》 속 곤쟁이젓김치 등을 통해 14~15세기부터 시작된 것으로 확인된다.

또한, 17~18세기부터 고추 및 파, 마늘, 생강, 파, 무 등 다양한 재료를 버무린 복합양념인 ‘김칫소’를 사용했다. 김칫소는 어떠한 재료라도 버무려주기만 하면 김치로 완성시켜주는 일종의 모듈방식으로, 새로운 자료와 융합이 매우 쉬워 김치 창의성의 핵심이다. 매운맛을 내는 동시에 동물성 젓갈의 비린 냄새를 가려주고, 유산균 발효를 도와 맛을 상승시키는 용도로 사용된다.

박채린 연구원은 “김칫소처럼 다양한 재료가 섞여야 하다 보니 제조공정이 굉장히 복잡하고 다양해 많은 인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김장 문화’라는 독특한 공동체 문화가 형성되어 유네스코 무형문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청주대학교 김홍렬 교수는 종합토론에서 "우리 동이족의 주 세력 근거지가 대체로 황하유역이나 동북지역이기 때문에 저장성이 중심이 되어 지금의 김치 문화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었고, 황하 이남이나 한족 중심이었던 곳은 따뜻한 기후로 채소가 계속 나오기 때문에 맞추구형 절임으로 갔다고 추론해 볼수 있다"라고 의견을 피력했다.

이날 동북아역사재단이 개최한 한중문화충돌 학술회의에서는 김치 외에도 밥·쌀, 나물, 삼계탕, 육식문화, 장(醬)문화, 술, 인삼 등 8개 분야를 주제로 발표와 토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