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도립미술관, 3월 26일까지 《고화흠: 이제서야 비로소 나의 백안白岸을 찾아》전 개최 [사진 김경아 기자]
전남도립미술관, 3월 26일까지 《고화흠: 이제서야 비로소 나의 백안白岸을 찾아》전 개최 [사진 김경아 기자]

전남도립미술관은 3월 26일(일)까지 《고화흠: 이제서야 비로소 나의 백안白岸을 찾아》전을 개최한다. 전남도립미술관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전남지역의 작가를 발굴하고 있으며, 이들의 발자취를 재조명하기 위해 이번 전시를 마련했다. 

전시 제목인 ‘이제서야 비로소 나의 백안白岸을 찾아’는 작가의 글에서 비롯했으며, 이는 ‘하얀 언덕’이라는 뜻으로 ‘백안(白岸)’은 고화흠에게는 언젠가 도착해야 할 이상향을 나타내는 것이다. 

전시의 부제목인 '이제서야 비로소 나의 백안白岸을 찾아'는 고화흠이 원광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정년을 마치고 손수 쓴「백안기」에서 따온 것이다 [사진 김경아 기자]
전시의 부제목인 '이제서야 비로소 나의 백안白岸을 찾아'는 고화흠이 원광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정년을 마치고 손수 쓴「백안기」에서 따온 것이다 [사진 김경아 기자]

고화흠(1923~1999)은 전남 구례 출신으로 전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동경의 녹음사화학교 회화과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귀국 후, 그는 1976년 원광대학교 미술대학 교수직을 맡으면서 교육자로서 활발히 활동할 뿐 아니라 대중적인 미술문화 저변 확대에도 큰 열정을 보였다. 특히, 고화흠은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수채화를 통해 문화적 교감을 추구하였으며 흔히 유화의 밑그림으로 여겨지던 수채화의 장르적 특성에도 깊이를 더했다.

고화흠은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수채화를 통해 문화적 교감을 추구하였고, 흔히 유화의 밑그림으로 여겨지던 수채화의 장르적 특성에도 깊이를 더했다 [사진 김경아 기자]
고화흠은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수채화를 통해 문화적 교감을 추구하였고, 흔히 유화의 밑그림으로 여겨지던 수채화의 장르적 특성에도 깊이를 더했다 [사진 김경아 기자]
자화상, 1989, 캔버스에 유채, 41x32cm, 전남도립미술관 소장 [사진 김경아 기자]
자화상, 1989, 캔버스에 유채, 41x32cm, 전남도립미술관 소장 [사진 김경아 기자]
백안90, 1990, 캔버스에 유채, 162x133cm, 전남도립미술관 소장 [사진 김경아 기자]
백안90, 1990, 캔버스에 유채, 162x133cm, 전남도립미술관 소장 [사진 김경아 기자]
공백, 1970, 캔버스에 유채, 145.5x97cm, 유족 소장 [사진 김경아 기자]
공백, 1970, 캔버스에 유채, 145.5x97cm, 유족 소장 [사진 김경아 기자]
백안白岸, 1990년대, 캔버스에 유채와 모래, 96x144.5cm, 전남도립미술관 소장 [사진 김경아 기자]
백안白岸, 1990년대, 캔버스에 유채와 모래, 96x144.5cm, 전남도립미술관 소장 [사진 김경아 기자]

고화흠은 부인의 예술적 조력자이기도 했다. 부인 김인숙(1926~2020) 여사는 이화여자대학교 섬유예술학과를 졸업했는데, 전시에서는 고화흠의 밑그림에 자수 등을 수놓은 작품들을 직접 만나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유족의 작품 기증을 통해 이뤄질 수 있었다. 

(작품 왼쪽) 무제, 연도미상, 천에 자수, 35.5x30cm, 유족 소장 (작품 오른쪽) 무제, 연도미상, 천에 자수, 35.5x30cm, 유족 소장 [사진 김경아 기자]
(작품 왼쪽) 무제, 연도미상, 천에 자수, 35.5x30cm, 유족 소장 (작품 오른쪽) 무제, 연도미상, 천에 자수, 35.5x30cm, 유족 소장 [사진 김경아 기자]
뱃고동, 2008, 천에 자수, 34x24cm, 유족 소장 [사진 김경아 기자]
뱃고동, 2008, 천에 자수, 34x24cm, 유족 소장 [사진 김경아 기자]

전남도립미술관의 관람은 화요일~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다.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 추석날은 휴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