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웅천황이 신시배달국을 세운 날, 개천(開天)

천손(天孫) 한민족의 웅혼한 하늘이 열린 날. 우리는 이 날을 한민족의 건국 기념일인 ‘개천절’이라 부른다. 

흔히 개천절은 최초의 민족국가인 단군조선이 세워진 날로 알려져 있지만, 역사를 잘 살펴보면 ‘개천(開天)’의 본래 뜻은 단군조선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서기 전 2457년 음력 10월 3일, 하늘의 신(神)인 환인(桓因)의 뜻을 받아 그의 아들인 환웅(桓雄)이 백두산 신단수 아래에 내려왔다는 기록이 있다. 환웅은 그곳에 신시(神市)배달국을 열고,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대업(大業)을 펼쳤다. 단군조선보다 1565년이나 앞선 신시배달국이 우리민족의 첫 나라이다. 단군조선은 환웅의 홍익이념을 이어받은 국가이다. 우리민족을 하늘의 자손인 천손, 배달민족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늘이 열린 날, 100년 전을 기억하다

전 세계 어느 나라를 둘러보아도 ‘하늘이 열린 날’이라는 아름다운 의미를 가진 건국기념일을 들어본 적이 없다. 게다가 우리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 이화세계’는 시대와 사상을 넘어 널리 통용될 수 있는 뉴 노멀(New Normal)의 살아있는 정신이다.

대한민국에는 5대 국경일이 있다. 3.1절, 광복절, 제헌절, 개천절, 그리고 한글날이다. 이 다섯 국경일에는 일제강점기라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나라에 개천절이라는 이름을 처음 쓴 분은 독립운동의 아버지인 홍암(弘巖) 나철 선생이다. 그는 빼앗긴 나라와 민족정신을 바로 세우기 위해 국조 단군을 독립운동의 정신적 구심으로 삼고, 개천절을 건국일로 정해 크게 기념했다. 이 정신은 상해 임시정부로 이어져 개천절은 국경일로 지정하여 경축 행사를 거행하는 등 국가행사로 치러졌다.

우리가 단군의 자손이라는 강고한 인식은 위기 때마다 우리를 하나로 뭉쳐 국권을 수호하게 하는 변하지 않는 가치였다. 오랜 역사를 거쳐 온 한민족에게는 기나긴 역사만큼의 영광사와 수난사가 있었다. 중요한 것은 역사의 과오는 후일의 경계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광복 후 77년, 개천절을 맞은 오늘의 대한민국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평화통일의 역사적 과제와 공생 공존 추구의 시대적 요구에 직면해 있다.

한민족의 하늘이 열린 이 기쁜 날, 나는 우리에게 주어진 엄중한 과제와 사명을 다시 한 번 말하지 않을 수 없다.

100년 전 우리는 나라를 빼앗겼다. 우리나라가 식민지가 된 근본 원인은 당시 세계를 휩쓸었던 제국주의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세계정세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국력이 튼실했다면 나라를 빼앗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흔히들 그때의 선조들이 세계정세에 어두웠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것도 결정적인 원인이 될 수는 없다. 나라의 힘을 기르지 못한 것은 어떠한 변화도 용납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좇던 지배 세력 때문이었다. 그들끼리조차 권력을 놓고 목숨을 건 싸움이 빈번했으니 그야말로 나라 안에서부터 분열과 대립, 갈등이 터질 듯 부풀어 있었다.

정치 지배 세력의 끝없는 부정부패로 백성들의 삶은 뿌리가 뽑히고, 백성들은 지배층을 불신하며 따르지 않게 되었다. 동학이 일어나고, 여기에 외세가 끼어들면서 극심한 분열과 대립은 이 나라를 피폐하게 했다. 그렇게 조선은 망국(亡國)에 이르렀다.

100년이 흐른 지금, 후손들이 오늘의 역사를 보고 우리가 세계정세에 어두웠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국력이 모자라서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일도 없을 것이고, 어떠한 독선적인 사상이나 체계도 더는 우리 사회를 가로막지는 못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단군 이래 가장 잘 사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이고, 6위의 군사력을 가진 나라이자 한류 열풍을 이끈 문화 대국이자 풀뿌리 민주주의의 모범국가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아직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려운 것이 있다. 우리에게 뿌리 깊이 내려온 분열과 갈등은 과연 얼마나 극복이 되었는가? 해결되지 않은 역사적 과제뿐 아니라 지역갈등과 좌우대립, 경제 사회적 불균형으로부터 온 빈부격차는 여전히 이 사회에 분열과 불신의 상처로 남아 있다.

잘 받아 빛내오리다 맹세하노니

개천의 하늘 아래, 단군의 자손인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눈앞의 작은 밥그릇이 아니다. 고개를 들어 단군의 눈으로 미래를 내다보면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 국가의 이익이 아닌 전 지구적인 위기 상황이 분명하게 보인다.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뿐 아니라 지구의 역사에서도 아주 특별한 위치에 서 있다.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이전과는 다른 수준의 성찰과 지혜, 용기와 책임감이 절실한 때이다.

변화와 도전을 맞이한 이 시대에 그것이 무엇이든 대립을 조장하고, 분열을 야기하는 모든 정보와 행동은 나 자신을 포함한 우리 모두를 공멸시키는 망국의 음모이며, 의식의 퇴보이자, 문명의 반역임을 알아야 한다.

이제, 우리의 선택 기준은 되느냐 안 되느냐가 아니라 지금 이것이 대한민국과 인류의 미래를 위해 정말 필요한 일인가, 아닌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너와 나의 차이를 먼저 찾는 대립과 갈등이 아니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처럼 하나 된 뜻과 마음으로 희망을 찾으려고 하는 상생의 의지이다.

나는 우리가 바로, 새로운 문명시대를 개척하는 역사가 될 것임을 믿는다. 인성과 영성, 신성을 회복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환하게 깨어날 때 대한민국의 화해와 통합, 지속가능한 지구의 평화와 미래는 활짝 열릴 것이다. 그것이 바로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실현이고, 공생의 기술이다.

나는 개천절 노래의 노랫말을 좋아한다. 오늘의 약속을 하늘에 올리는 심정으로 노래의 한 구절을 되뇌어 본다. ‘오래다 멀다 해도 줄기는 하나 다시 필 단목 잎에 삼천리 곱다 잘 받아 빛내오리다 맹세하노니 잘 받아 빛내오리다 맹세하노니’

 

이승헌

국학원 설립자,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