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생각할 때 쓴맛은 모든 맛의 바탕이 되는 맛입니다. 쓴맛 위에서 단맛이 더 달게 느껴지듯 쓴맛이 있어야 다른 맛도 더 잘 느껴지죠. 차에서는 쓴맛, 단맛, 짠맛, 신맛, 그리고 매운맛 대신 감칠맛을 오미(五味)로 치는데 우리 야생차에서는 쓴맛을 바탕으로 그 위에서 다른 맛들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룹니다.”

한국 야생차 복원에 전념하는 최성민 야생다원 산절로 대표. 사진 본인제공.
한국 야생차 복원에 전념하는 최성민 야생다원 산절로 대표. 사진 본인제공.

한겨레신문 창간 발의인이자 기자와 논설위원으로 언론인의 삶을 살던 최성민 대표(야생다원 산절로)는 취재로 만난 우리 야생차(야생녹차)에 반해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2003년 호기심을 갖고 전남 곡성에서 4만여 평에 한국 최대 야생다원을 조성한 최 대표는 야생차 복원에 전념하며 대학원에서 논문을 쓰고 동양철학과 연결해 차를 연구하며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야생차 제다, 동양사상 수양론과 한국 수양다도, 수양다도 음악 등을 주제로 강연과 집필에 매진 중이다.

올해 1월 〈한국 차茶의 진실-한국 차 삼현三賢(한재, 다산, 초의)이 밝혀낸 전통 차문화의 탁월한 정체성〉을 펴낸 최성민 대표에게 지난 1월 20일 우리 야생차의 오묘한 맛에 대해 들었다.

- 오랫동안 야생차 복원에 힘쓰면서 터득한 것이 있다면.

차의 역사는 선사시대부터라고 한다. 우리 차에 관해 전래설, 자생설이 있는데 중요한 것 차나무가 이 땅에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야생차에서는 봄날의 풋풋한 기운과 은은하고 고유한 향이 나는데 그 매력을 알았으면 한다.

그리고 인위적인 것을 최소화한 방식으로 차를 만들고 연구하면서 터득한 것은 야생차에 자연의 조화로운 기운, 생명 에너지가 응집되어 있다는 것이다. 초의선사는 차가 가진 이 에너지를 ‘다신(茶神)’이라고 표현했는데,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입자성 파동에너지라고 볼 수 있다.

- 왜 녹차에 주목하는가?

예부터 차라고 하면 녹차를 말했고, 홍차나 우롱차, 보이차 등 다른 차는 녹차를 만드는 과정에서 보관방법, 기간, 온도 등 요인으로 인해 부수적으로 발생했다. 차 선진국인 중국과 일본에서 녹차 소비가 절대적인 이유는 녹차가 심신건강 수양음료로서 차의 3대 성분인 카테킨, 테아닌, 카페인을 가장 적절히 품고 있기 때문이다.

- 차의 3대 성분이 심신건강 수양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심신수양은 몸 건강이 바탕이 되어 마음 건강이 이루어진다. 카테킨은 육체적 건강에 도움을 주고, 테아닌과 카페인은 정신 수양을 가능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최성민 대표는 전남 곡성에서 4만여 평에 우리 야생 차나무를 심어 한국 최대 야생다원을 조성했다. 사진 본인 제공.
최성민 대표는 전남 곡성에서 4만여 평에 우리 야생 차나무를 심어 한국 최대 야생다원을 조성했다. 사진 본인 제공.

- 카테킨이 육체적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카테킨은 공기에 노출되면 곧바로 산화하는 성질이 있는데 몸속 활성산소를 없애준다는 것이 연구결과 밝혀졌다. 활성산소는 면역력을 떨어뜨리고 세포의 활력을 저하시켜 암이나 노화의 원인 물질이다. 카테킨이 잘 보존된 차를 마시면 몸속에서 스스로 산화되면서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것이다.

제다 과정에서 카테킨을 보존하기 위해 70도 이상 되면 산화가 멈춘다. 반면, 홍차는 카테킨의 80~90%, 청차나 우롱차는 40~50% 산화가 진행된 차이다. 향기가 좋아 기호식품으로 선호하지만, 동양의 다도의 본질과는 잘 맞지 않는다고 본다.

- 테아닌과 카페인이 정신수양을 가능하게 하는 원리는?

테아닌은 차에만 존재하는 단백질인데 뇌파를 일상자극파인 베타파에서 명상뇌파인 알파파로 낮춰줌으로써 마음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참선이 훨씬 수월해진다. 차를 마시면서 자연의 기운, 자연의 청정하고 조화로운 모습을 생각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히면 세타파, 감마파까지 내려가면서 참선의 최종목적지인 번뇌와 잡념이 없는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이때, 잠으로 곯아떨어지지 않게 카페인이 각성작용을 한다. 테아닌과 카페인이 서로 길항작용, 상승작용을 적절히 하면서 정신수양을 돕는 것이다. 카페인이 많으면 테아민과 함께 배출되도록 이뇨작용이 일어난다. 차에 든 카페인은 중독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 차와 명상, 수양은 연관성이 깊은 듯하다

고려시대 지눌스님은 명상수양을 통해 득도한 상태를 적적성성(寂寂惺惺)이라고 했다. 숙면에 빠질 정도로 고요한 상태에서도 깨어 있어 우주의 참 진리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유교에서는 허령불매(虛靈不昧), 도가의 허실생백(虛室生白)과도 일맥상통한다.

차를 마시는 것은 마음을 깨끗이 청소하고 우주 자연과 연결해 자연합일을 이루는 길이라 할 수 있다. 차에 들어있는 다신茶神 즉, 생명에너지로 정화시키고 채워주니 차보다 더한 것이 없다.

- 한국 차문화의 본질은 수양다도라고.

이번 신간 〈한국 차의 진실〉에서 소개했다. 한국 차의 삼현(三賢) 중 한재 이목(1471~1498) 선생은 한국 차문화의 정체성을 ‘수양다도’로 제시하고 자리매김했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자신의 호를 다산(茶山)이라 할 만큼 차를 사랑했는데 수양다도를 가능케 하는 차를 제다하는 구증구포, 삼증삼쇄 등 다양한 방법을 정립했다. 초의선사(1789~1866)는 《다신전》, 《동다송》을 쓰면서 중국 명나라의 덖음차 제다법을 소개하면서 보완하고 ‘다신茶神’의 의미를 파악해 전했다.

최성민 대표는 매년 '야생차포레스트'라는 한국 전통 차문화 복원 캠프를 무료로 운영한다. 사진 본인 제공.
최성민 대표는 매년 '야생차포레스트'라는 한국 전통 차문화 복원 캠프를 무료로 운영한다. 사진 본인 제공.

- 한국 야생녹차만의 고유한 특징은 무엇인지

한국과 일본 녹차는 온대소엽종이고 중국은 대부분 아열대 대엽종인데 각각 특징이 있다. 중국 차는 카테킨이 많아 산화되기 쉬워 홍차, 청차, 우롱차와 같은 산화차나 보이차같은 발효차를 만들기에 좋다.

한국 녹차는 카테킨이 적고 테아닌이 많은 특징이 있다. 중국 차보다 카테킨이 적은데 중국 차는 복합형 카테킨인 반면, 한국 야생차는 유리형 카테킨이라고 해서 기분 좋은 쓰고 떫은 맛이 난다. 또한, 풍부한 테아닌으로 인해 차의 맛을 좌우하는 감칠맛이 난다. 오미가 조화로운 한국 차가 심신건강 수양 음료로 적격이라고 본다.

한편, 한국 녹차가 덖음차라면 일본은 수증기로 쪄서 만드는 증제차가 많은데 카테킨 보존이 더 잘 되고 잎의 녹색 유지가 잘 되는 특징이 있다.

- 한국 야생차의 기분 좋은 쓴맛을 제대로 즐기려면

일부에서 녹차의 쓴맛과 독소를 없애려 제다를 한다고 하는데 그건 잘못된 말이다. 차의 쓴맛은 카테킨과 카페인에서 나는 것인데 앞서 말했듯 정신 수양에 좋은 성분이다. 차를 우릴 때 쓴맛이 두드러진다면 너무 뜨겁거나 너무 오래 우려서 카테킨이 많이 나와서 생기는 현상이다.

좋은 차는 설렁설렁 우려도 거북스럽지 않고 기분 좋은 쓴맛이 난다. 쓴맛이 없으면 밍밍하다. 테아닌의 감칠맛도 쓴맛이 있는 가운데 더욱 돋보인다. 중요한 것은 쓴맛을 바탕으로 오미가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