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를 녹일 듯 단맛이 나는 음식들. 사진 Pixabay 이미지
혀를 녹일 듯 단맛이 나는 음식들. 사진 Pixabay 이미지

최근 맛있는 음식에 대한 대중적인 표현은 ‘단짠단짠’, ‘맵단맵단’이다. 달고 짜거나 청양고추 그 이상의 맵기와 함께 단맛 또는 치즈로 중화한 자극적인 음식이다.

특히, 부드럽고 단맛이 나는 것이 맛있는 음식의 대명사가 된 것이다. 포유류로 태어난 우리는 본능적으로 단맛을 찾는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느꼈던 두려움과 배고픔을 달래 준 따뜻한 엄마의 품과 그때 먹은 엄마의 젖이 달았던 기억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따뜻한 어머니의 품과 슴슴한 단맛이 나는 젖을 통해 안정감과 배고품을 잊은 기억으로 단맛을 선호한다. 사진 Pixabay 이미지
인간은 따뜻한 어머니의 품과 슴슴한 단맛이 나는 젖을 통해 안정감과 배고품을 잊은 기억으로 단맛을 선호한다. 사진 Pixabay 이미지

한편, 우리에게는 쓴맛을 피하는 본능이 있다. 상한 음식이 쓴맛을 내고 독초가 쓴맛을 내기 때문이다. 야생 식물은 대부분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약하게나마 독성을 가지고 있다. 이동할 능력이 없는 식물은 종족을 더 널리 퍼트리려 인간이나 동물이 좋아할 맛과 향을 가진 과육을 갖고 있지만, 아직 씨앗이 익기 전에는 먹지 못하도록 쓴맛을 띤 물질을 배출해 인간이나 동물이 함부로 먹지 못하도록 한다.

후세를 잇기 위해 지켜야 할 설익은 열매, 특히 씨앗에 독이 있는 경우가 많다. 잘못 먹으면 배탈이 나거나 심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이것이 식물의 입장에서는 생존 법칙인 셈이다.

산삼을 비롯해 대부분의 한약재는 쓴맛이 나는 것을 쓴다. 사진 Pixabay 이미지
산삼을 비롯해 대부분의 한약재는 쓴맛이 나는 것을 쓴다. 사진 Pixabay 이미지

하지만 약이 되는 쓴맛도 많다. 산삼을 비롯한 한약재로 쓰이는 약재들이 대체로 쓰고, 씀바귀‧고들빼기처럼 쌉싸름한 맛으로 입맛을 돋우는 식재료도 있다. 그럼 인류는 쓴맛의 독초와 쓴맛이지만 이로운 것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었을까?

이에 관해 동아시아에서 전해오는 전설이 있다. 의약의 아버지, 차(茶)의 아버지, 그리고 농사의 신으로 불리는 신농씨(神農氏) 이야기이다.

신농씨가 살던 서기전 2700년 경 원시적이었던 당시 질병에 시달려도 특별한 치료법이 없어 사람들의 수명이 극히 짧았다고 한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신농씨는 병자에게 좋은 약재를 구하기 위해 산천을 다니며 수백 가지 약초를 직접 맛보며 풀의 특성과 약효를 시험하여 치료에 이용했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수십 가지 독초에 중독되었고 그때마다 약초로 해독했다. 《회남자淮南子》 수무훈脩務訓 편에는 “신농은 일찍이 온갖 풀을 맛보고 물맛이 단가 쓴가를 알아보아서 백성들로 하여금 알고 피할 수 있게 했는데, 하루에 70번 중독되었다”라고 기록했다.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이던 신농씨는 120살까지 살았으나 불행히도 독초에 중독되고 해독제를 제때 마시지 못해 죽었다고 한다.

가장 오래 된 중국의 약서 '신농본초경'과 신농씨. 사진 한국의 차문화(이귀례 저, 설화당)
가장 오래 된 중국의 약서 '신농본초경'과 신농씨. 사진 한국의 차문화(이귀례 저, 설화당)

차(茶)의 기원도 신농씨라고 전한다. 독초에 중독되어 휴식을 위해 큰 나무 그늘에 앉아 있던 그의 앞으로 나뭇잎 몇 장이 떨어졌고, 그것을 입에 넣고 씹어보니 쓰고 떫었지만, 뒷맛이 개운하고 정신이 맑아지며 기력을 되찾게 되었다. 그렇게 찻잎으로 해독하였고 이때부터 차에 약효가 있음을 알고 즐겨 마시게 되었다는 것이다.

신농씨에 관해 우리나라는 배달국 8대 안부련 한웅 말기에 살던 소전의 아들로 농사와 의약의 시조라는 기록이 있고, 중국에서는 전설 속 삼황오제(三皇五帝) 중 한 사람이라고 전한다. 또한, 베트남의 다수 종족인 비엣족 설화에는 신농씨가 베트남 민족의 시조라고 기록하고 있다.

결국, 인류는 오랜 시간 동안 쌓은 경험과 지혜를 통해 약초와 독초를 구분하고 쓴맛 중에서 먹을 수 있고 약효가 있는 것들을 찾아낸 것이다.

쓴맛 중에는 우리에게 익숙하고 선호하는 쓴맛도 있다. 동양의 차와 서양의 커피가 그것이다. 커피는 1600년대 유럽에 전해질 때까지 약(藥)으로 인식되었다. 상인들은 커피를 동양의 묘약으로 선전했다. 17세기 터키(현 튀르키에)를 방문한 한 영국인 의사는 “투르크인들은 몸이 아프면 단식하면서 커피만을 마신다. 그래도 병이 낫지 않으면 유언장을 작성하고는 다른 치료법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라고 적기도 했다.

‘약초꾼 한의사’ 최철환 박사는 〈사람을 살리는 음식, 사람을 죽이는 음식〉에서 “한의학에서는 약한 쓴맛이 기운을 끌어올리고 강한 쓴맛이 화를 내린다”고 한다.

취나물, 곰취, 씀바귀, 왕고들빼기 등 씁쓰름한 봄나물은 춘곤증으로 나른한 봄날 입맛을 돌아오게 하고, 인삼과 홍삼이 기운을 보충해주는 것은 약한 쓴맛 덕분이다. 몸이 무겁고 처질 때는 씁쓰름한 맛이 제격이라는 것이다.

동의보감에서는 약한 쓴맛을 내는 상추가 총명하게 한다고 기록했다. 사진 Pixabay 이미지
동의보감에서는 약한 쓴맛을 내는 상추가 총명하게 한다고 기록했다. 사진 Pixabay 이미지

약한 쓴맛은 허열을 꺼서 머리를 맑게 한다. 녹차나 커피가 잠을 깨우고 기운을 차리게 하는 것도 같은 원리이며, 《동의보감》에서 ‘상추가 총명하게 한다’는 것도 약한 쓴맛 때문이다. 식후에 먹는 누룽지와 숭늉은 밥을 살짝 태운 것이기 때문에 약한 쓴맛이 나고 끝맛은 구수하다. 이렇게 약한 쓴맛은 식후 소화제 역할을 한다.

강한 쓴맛은 화와 열을 끌어내리는 효능이 있다. 한의학에서 모든 병은 원인에 관계없이 화와 열이 머리 쪽으로 오른 것이다. 즉, 아랫배는 따뜻하고 머리는 시원한 건강한 상태 ‘수승화강(水昇火降)’의 균형이 깨진 것이다. 그래서 황금, 황련, 황백, 용담, 포공영, 대황 등 강한 쓴맛의 한약재를 많이 쓴다.

현대인을 사로잡는 ‘단짠단짠’ ‘맵단맵단’의 자극적인 맛은 혀끝과 기분을 만족시킬 수 있지만, 건강을 보장해주진 못한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인이 좋아하는 매운 음식들. 사진 Pixabay 이미지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인이 좋아하는 매운 음식들. 사진 Pixabay 이미지

우리가 먹는 단맛은 엄마의 젖처럼 슴슴한 단맛이 아니다. 입맛을 위한 인공감미료와 부드러움을 극대화한 조리법 등은 현대인의 질병 당뇨병을 유발하며, 지나친 짠맛은 고혈압 등 성인병의 원인이 되고 있다.

단맛의 세상에 쓴맛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잃어버린 균형 감각의 회복이다. 우리 몸에 좋은 음식은 신맛, 쓴맛, 매운맛, 짠맛이 나면서도 끝맛이 반드시 은은하게 달다고 한다. 하지만 자극적인 맛에 길들인 우리 혀가 물의 단맛을 느끼고 은은하게 단맛을 내는 담미(淡味)를 느낄 수 있도록 회복하려면 징검다리가 필요하다. 쓴맛은 어떻게 그 징검다리가 되어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