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으로 건강을 유지하고 질병을 예방한다는 생각은 동아시아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해왔다. 그래서 음식을 만들 때 재료뿐만 아니라 맛도 중시했다. 오곡, 오미(五味)라는 개념이 생긴 이유이다. 우리 몸에 중요한 곡식 다섯 가지 오곡, 우리 몸에 이로운 맛 다섯 가지 오미는 음식을 조리할 때 고려해야 하는 것이었다. 맛있고 먹기 좋다고 어느 한 맛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였다. 요즘 유행하는 ‘단짠’음식은 단맛과 짠맛에 집중되다보니 다른 맛, 특히 쓴맛을 외면하게 된다. 하지만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는 이롭다(良藥苦口 利於病)”이라는 말이 있듯이 쓴 음식도 적절하게 섭취해야 한다.

 
쑥   [사진 pixabay]
쑥 [사진 pixabay]

 

한방에서는 맛 가운데 다섯 가지, 오미(五味)를 중시하였다. 쓴맛을 잘 활용하려면 오미를 잘 알아야 한다. 한방에서는 오미를 건강이나 질병치료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주례(周禮) ‘천관(天官)’에 “오미(五味), 오곡(五穀), 오약(五藥)으로써 병을 다스린다(以五味、五穀、五藥養其病)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한다. 오미는 함미(鹹味, 짠맛), 고미(苦味, 쓴맛), 산미(酸味, 신맛)、신미(辛味, 매운맛), 감미(甘味, 단맛)를 말한다. ‘천관’에 나오는 식의(食醫)는 왕의 식사 전반을 관리하는 의사였다. 음식의 재료, 계절, 배합에 관한 원칙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제왕의 건강유지와 증진을 도모하고 식중독 등을 예방하는 직무였을 것이다. 그 원칙은 보면 ”대체로 봄에는 신 것을 많이 하고, 여름에는 쓴 것을 많이 하고, 가을에는 매운 것을 많이 하고 겨울에는 짠 것을 많이 하고, 그리고 부드럽고 단 것으로 조절해야 한다(凡和,春多酸,夏多苦,秋多辛,冬多鹹,調以滑甘)”고 오미를 중시하였다. 오미를 계절에 맞게 배열함으로써 제왕의 건강을 관리하였다.

이 오미는 우리가 입에서 느끼는 맛으로 구분하기보다는 그 작용으로 분류한 것이다. 대한한의학회 표준한의학용어집 2.1 (2021)에 따르면 과거 선인들은 미(味)는 단순히 구강내의 미각세포를 통해서 느끼는 맛으로만 인식하지 않고 약물이 가지고 있는 작용을 오미를 통해 인식하려 하였다고 한다. 즉 산미(酸味)는 주로 아물게 하고 수렴하는 작용이 있으며, 고미(苦味)는 열을 내리고 수습(水濕)을 몰아내는 작용이 있고, 감미(甘味)는 자양하고 완화하는 작용이 있으며, 신미(辛味)는 땀을 나게 하여 발산하고, 기를 잘 돌게 하는 작용이 있고, 함미(鹹味)는 굳은 것을 유연하게 하고 마른 것을 녹여주는 작용을 한다.

약으로 보면 매운맛(辛味)의 약은 발산시키고 기를 잘 돌게 하며, 신맛(酸味)을 가진 약은 아물게 하고 수렴하는 작용이 있으며, 단맛(甘味)의 약은 보하고 완화시키며, 쓴맛(苦味)의 약은 열을 내리고 건조하며, 짠맛(醎味)의 약은 굳은 것을 부드럽고 매끄럽게 한다. 이에 대하여 약물이 갖고 있는 맛은 화학성분과 약간의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예를 들면 신미에는 휘발성(揮發性)이 많이 함유되어 있고, 산미에는 유기산이 함유되어 있으며, 감미에는 탄수화물의 함유가 많고, 고미에는 생물성 염기류(鹽氣類), 배당체(配糖體) 또는 고미질(苦味質) 등이 많이 함유되어 있다는 것이다(경희대학교, 동양의학대사전(1999) 참조).

이처럼 오미가 각각 서로 다른 작용을 하므로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기보다는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음식물의 오미를 조화시키고 영양을 충분히 섭취하여야 한다.

여주 [사진 pixabay]
여주 [사진 pixabay]

오미 가운데 어느 한 가지를 많이 섭취했을 때 부작용을 보자.

“짠 것을 많이 먹으면 혈맥이 엉기어 안색이 변하고, 쓴 것을 많이 먹으면 피부가 마르고 모발이 빠지며, 매운 것을 많이 먹으면 근육이 위축되면서 손톱발톱이 까칠해지며, 신 것을 많이 먹으면 살이 부르트고 굳은살이 생기며 주름지면서 입술이 들리고, 단 것을 많이 먹으면 골절이 아프면서 모발이 빠지게 되니, 이는 오미가 오장(五藏)을 손상하는 바이다”(《소문(素問)》‘오장생성편(五臟生成編)

《소문(素問)》의 ‘자법론(刺法論)’에도 주의할 점을 기록하였다.

“매운맛은 기로 되므로 기병에는 매운맛을 많이 먹으면 안 되고, 짠맛은 혈로 가므로 혈병에는 짠맛을 많이 먹으면 안 된다. 쓴맛은 뼈로 가므로 골병에는 쓴맛을 많이 먹으면 안 되며, 단맛은 살로 가므로 육병에는 단맛을 많이 먹으면 안된다. 그리고 신맛은 근육으로 가는데 근육병에는 신맛을 많이 먹으면 안 된다.”

이렇듯 음식을 섭취할 때는 오미의 조화가 중요하다. 그런데 쓴맛은 대부분 약성이 강하여 약으로는 많이 쓰이지만 음식물로는 드물다. 도라지나 쑥이 약간의 쓴맛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음식으로 쓴맛을 섭취할 기회가 많지 않다. 오미 가운데 섭취하기가 쉽지 않은 쓴맛이 우리 몸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 알아보자.

김호철 경희대 교수는 저서《한방식이요법학》(경희대학교 출판문화원)에 따르면 “쓴맛은 열을 없애는 작용이 주로 있어서, 열로 인한 변비, 불면증, 각종 염증 등의 질환들을 치료한다. 또한 건위작용이 있다.”

쓴맛의 작용을 보면 1. 쓴맛은 기운을 아래로 내리는 작용이 있다. 2. 건조한 성질이 있어 습으로 인한 질환을 치료한다. 3. 쓴맛은 또한 열을 꺼서 음을 튼튼히 하는 효과가 있다. 이외에 소량의 쓴맛은 식욕을 돋우고 소화를 촉진한다. 연구에 의하면 쓴맛의 약은 미각분석기를 자극하여 음식중추를 흥분시킨다고 한다. 그러므로 음식을 먹기 전에 소량의 쓴맛이 있는 음식을 먹으면 위액분비를 촉진하고 식용윽 증진한다. 그러나 과다한 쓴맛을 복용하면 반대로 위액분비를 억제하고 위를 자극하여 식욕을 떨어뜨린다.

너무 단짠단짠 음식을 자주 먹어 식욕이 떨어졌다면 쓴맛 음식을 먹어보자. 쑥, 도라지, 여주, 커피, 민들레, 바닷말 등이 쓴맛을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