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매일 먹는 약입니다. 가장 좋은 건 육미(六味)가 조화로워야죠. 사람들은 쓴맛이 몸에 좋은 약이 되는 줄 알면서 싫다고 우려내고 덜어냅니다. 그게 아니라 조리법을 바꿔야죠. 건강과 지혜를 담아 약이 되는 음식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사찰음식 명장 1호 선재스님. 매일 먹는 음식이 약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사진 강나리 기자.
우리나라 사찰음식 명장 1호 선재스님. 매일 먹는 음식이 약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사진 강나리 기자.

우리나라에서 첫 사찰음식 명장이 된 선재스님은 저서 〈선재스님의 이야기로 버무리 사찰음식〉에서 “쓴맛은 깊은 감칠맛으로 음식의 맛을 음미할 줄 아는 사람이 좋아하는 맛이기도 하다”라고 표현했다.

쌉싸름한 봄철 음식을 주제로 강연한 선재스님을 경기도 수원 봉녕사 사찰음식전수관 금비라에서 만났다.

봄 제철 음식에는 쓴맛 나는 것이 많은 듯 합니다.

봄의 대표적인 맛이 쓴맛이에요. 봄에 춘곤증이 생기고 식욕이 떨어질 때 쑥, 머위 등 쌉싸름한 나물이 달아난 입맛을 돌아오게 하죠. 무엇보다 쓴맛이 혈관을 튼튼하게 해서 봄철에 걸리기 쉬운 질병에 효과가 있다는 게 중요합니다. 호스가 약한데 수압이 세면 터지잖아요. 혈관을 튼튼하게 하면 심장마비, 뇌출혈 같은 질병을 예방할 수 있겠죠. 봄철에 많아지는 심혈관계 질환과 기침, 가래, 그리고 화를 참으면서 생기는 심화병에 좋다고 나와 있어요.

봄에 쓴맛나는 음식을 먹는 것은 봄에 걸리기 쉬운 질병을 예방하기 때문

쓴맛의 특징은 무엇인지.

맛마다 모두 각자 역할이 있어요. 단맛은 기분을 좋게 하고 신맛은 활력을 되찾아 주죠. 입에 쓴 것이 몸에 좋다는 말처럼 쓴맛이 나는 음식은 대부분 약효가 뛰어납니다. 쓴맛이 대체로 열을 내리고 습을 말리며 위를 튼튼하게 해주죠. 

봄철 외에도 계절마다 먹는 쓴맛 음식이 있는지요?

여름에는 열을 내려주는 효능이 있는 상추가 있죠. 쌈으로도 먹지만 김치를 담가 먹기도 하고, 특히 쓴맛이 강해지는 늦가을에는 겉절이나 전을 부쳐 먹어요. 기운이 불뚝 난다고 해서 상추 불뚝김치, 상추 불뚝전이라고 하죠. 가을에는 고들빼기가 있겠고, 겨울에는 도라지 정과, 도라지나물, 머위떡을 해 먹었죠. 봄과 여름, 가을에 캔 나물을 다 추렴해서 말리고 절이거나 삶아서 저장해서 겨울에 먹는 것입니다.

지난 2월 23일 경기도 수원에 있는 봉녕사 사찰음식전수관 금비라에서 강연 후 봄 제철 음식으로 쑥과 배를 이용한 겉절이를 하는 선재스님. 사진 강나리 기자.
지난 2월 23일 경기도 수원에 있는 봉녕사 사찰음식전수관 금비라에서 강연 후 봄 제철 음식으로 쑥과 배를 이용한 겉절이를 하는 선재스님. 사진 강나리 기자.

보통 5미味를 말하는데, 사찰음식은 육미六味인가요?

단맛, 짠맛, 신맛, 쓴맛, 매운맛에 떫은맛이 하나 더 추가되지요. 쑥에도 있고 덜 익은 감이나 연근, 우엉에도 떫은맛이 있는데 잘 삭히면 굉장히 좋은 약이 됩니다. 신맛 하면 싱아, 괭이밥이 있고, 짠맛 하면 미역, 다시마 등 해초와 함초, 세발나물 등이 있는 것처럼 쓴맛이 나는 쑥, 머위, 씀바귀, 낀묵 등이 있죠.

육미가 조화로운 음식이 건강에 좋다고 하셨는데.

편식하지 않고 치우치지 않는 게 중요하죠. ‘칠가식七家食’이라고 해서 부처님은 매일 부잣집이든 가난한 집이든 일곱 집에서 탁발하라고 하셨어요. 집마다 음식이 다르니 골고루 조화롭게 먹을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탁발은 복을 줄 기회를 베푸는 것이기도 하고, 앉아서 수행하는 스님들이 먹기 전과 후에 걸으며 운동을 하도록 한 것이기도 하죠.

불경은 깨달음만 적혀 있는 줄 알았는데 음식에 관한 내용이 꽤 많습니다.

부처님은 당시 열악한 환경인 인도에서 수행자들이 단체로 생활하는데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할지 음식부터 운동, 명상까지 수많은 고민을 하고 실천한 의사이자 과학자이고 명상가라고 할 수 있죠. 우주 안의 모든 생명이 함께 행복해야 한다는 논리하에 삶을 펼치신 거죠.

쓴맛을 우려내는 게 아니라 지혜롭게 조리법을 바꿔야

사람들은 음식의 쓴맛을 꺼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죠. 단맛이나 매운맛은 좋아하면서 쓴맛은 아무리 몸에 좋다고 해도 싫어하는 경우가 많아요. 사실 저는 간이 좋지 않아 쓴맛에 더 민감하고 잘 못 먹어요. 가을이면 지인들이 간에 좋다고 귀한 국화차를 선물하는데 제게는 몹시 쓰죠. 그래서 어떻게 하면 쓴맛을 잘 먹을 수 있을지 나름대로 고민하고 연구하다 보니 다양한 방법을 찾을 수 있었죠. 음식에 국화물을 넣어 활용하는 방법처럼요.

*선재스님은 간경화로 인해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고 난 후 자신이 전공한 사찰음식을 통해 자신의 몸을 치유한 경험으로 사찰음식의 명장이 되었다.

쓴맛의 효용을 살리면서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조리법이 무엇인지.

예를 들어 도라지의 쓴맛이 싫다고 물에 오래 우려버리면 쓴맛과 함께 효능도 사라집니다. 소금으로 한 번만 주물러서 볶으면 숨어있던 단맛이 도드라져 굉장히 달아져요. 쓴맛은 사그라들지만, 효능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씀바귀나 머위 등을 고추장, 된장, 간장에 넣어 장아찌를 만들기도 하고, 김치나 전으로 만들어 먹기도 합니다. 특히 쓴 머위잎도 전을 부치면 맛있게 먹을 수 있죠.

'자연의 리듬에 맞추어 먹어라'를 주제로 강연하는 선재스님. 사진 강나리 기자.
'자연의 리듬에 맞추어 먹어라'를 주제로 강연하는 선재스님. 사진 강나리 기자.

강연 주제가 ‘자연의 리듬에 맞추어 먹어라’였습니다. 제철 음식이 중요한 이유는.

완전한 유기농이란 없기 때문에 제철 음식을 먹는 게 제일 좋습니다. 불경 중 〈금광명최승왕경〉에는 “계절에 따라 병이 나니 계절에 따라 음식을 취해서 먹으면 병을 예방할 수도 있고 치료할 수도 있다”라고 되어 있기도 하고요.

오늘 시연 때 재료 중 자연산 머위라고 준비해주었는데 아니었습니다. 봄 추위가 가시지 않은 날씨에 똑바로 자랄 수가 없거든요. 구불구불하고 색깔도 굉장히 짙은 보라색이 나야 하죠. 그렇게 땅속에서 강한 에너지와 봄날의 추위를 견뎌낸 생명을 먹어서 사람도 견딜 수 있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무말랭이를 먹으면 골다공증에 좋다고 하잖아요. 그 이유는 햇볕에 말렸으니까 비타민D가 많고, 비타민D가 칼슘을 흡수시켜주는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죠.

요즘은 제철 음식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물론 비닐하우스가 좋은 점도 있지만, 햇빛과 바람, 공기가 통하는 곳에서 자라지 못하니 성장촉진제를 줘야 하고 당도가 떨어져 설탕을 줘야 하죠. 온실가스의 문제도 생기고요. 제철과 관련해 딸기가 많이 벗어났죠. 5월 말이나 6월 초가 제철인데 이제는 거의 겨울철 과일처럼 나오잖아요. 제게 요리를 배운 분이 친척의 딸기 수확을 도와주러 가서 맛있게 먹었는데 며칠 후 다시 가니 맛이 없더래요. 왜 맛이 변했느냐고 물으니 ‘설탕을 준 지 좀 돼서 그렇다’라고 하더랍니다.

스님께서는 양평 옥천면에서 채소를 직접 키우신다고.

양평에서 산꼭대기에 살아요. 먹는 걸 다 키우진 않지만, 생기는 대로 먹고 삽니다. 비가 안 와도 물을 주지 않아요. ‘견딜 놈만 키운다’ 이런 마음이죠. 하하. 그곳은 서울 시민이 먹는 한강의 수원水原이 되는 곳이라 제초제나 농약을 뿌리지 못하게 단속하고 관리하는 곳이라 자연에 조금 더 가깝다고 할 수 있겠죠. (2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