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재스님은 인터뷰 도중 도착한 한 통의 문자에 얼굴이 환해졌다.

“항생제 주사를 너무나 많이 맞아서 병원에서 주삿바늘을 꽂을 데가 없다고 하는 분인데요. 내가 준 물김치를 먹고 얹힌 게 쑥 내려가서 밥 한그릇을 뚝딱 잘 먹었다고 연락을 주셨어요.”

매일 먹는 한 끼 식사이지만 병 때문에 제대로 먹을 수 없게 되면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선재스님에게 음식의 소중함과 한식에 대한 깊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선재스님과 봄철 건강에 좋은 쓴맛 나물들로 차린 쌉싸름한 봄 밥상을 함께 했다. 구수한 된장찌개, 쑥과 배로 만든 쑥겉절이, 쑥과 연근을 갈아넣은 쑥전, 머위 곁절이, 짭짜름한 새발나물무침. 사진 강나리 기자.
선재스님과 봄철 건강에 좋은 쓴맛 나물들로 차린 쌉싸름한 봄 밥상을 함께 했다. 구수한 된장찌개, 쑥과 배로 만든 쑥겉절이, 쑥과 연근을 갈아넣은 쑥전, 머위 곁절이, 짭짜름한 새발나물무침. 사진 강나리 기자.

스님께서 생각하는 음식의 정의는 무엇인지요?

음식은 생명이죠. 나를 살릴 수 있는 음식, 건강을 돕고 영혼을 도와주는 음식은 나를 떠나서 농부도 살릴 수 있고, 땅, 바람, 물도 살리고 동물도 살릴 수 있어요. 좋은 자연에서 온 좋은 식재료는 나에게 건강과 행복을 주기 때문에 내가 행복하려면 자연의 생명들이 행복하고 건강해야죠. 땅도 행복하고 물도 행복하고 햇빛, 바람 공기들이 행복해야 합니다. 내 먹을거리를 위해서 땅을 더럽히고 물을 더럽히면 안 되죠.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누구나 지켜야 할 도덕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생명을 살펴야 하는 것이죠.

사람들이 건강한 식재료나 약선요리에 대한 관심이 높은 편입니다.

건강한 식재료는 진귀하고 영양가 높은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소고기 마블링을 만들려고 옥수수를 먹이고 협소한 곳에 가둬 키우는 것도 그렇고, 닭다리살을 빨리 취하려고 성장촉진제를 주어 10여 일 만에 도축하는 것은 문제죠. 육식을 하더라도 다른 생명의 삶을 없애는 방식으로 하면 안 되죠. 그런 음식을 먹다 보니 나도 황폐해지고 자연의 생명도 황폐해집니다.

불교에서는 육식을 금禁한다고 하는데.

꼭 그렇지는 않아요. 부처님은 육식도 약이 될 때가 있다고 했어요. 하지만 깨달으려면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평안하고 영혼이 맑아야 하잖아요. 탁한 음식을 먹으면 졸리고 피곤하고 짜증이 납니다. 육식뿐만 아니라 파나 마늘은 식물인데도 못 먹게 하는데 그건 너무나 강하기 때문이에요. 날로 먹으면 화가 나고 익혀 먹으면 음욕이 생긴다고 하죠. 차분히 수행하지 못하고 밖으로 뻗쳐 나가는 에너지인 겁니다. 마치 아이들이 에너지가 넘쳐 부산스러운 것처럼 고요하게 수행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죠.

우리나라 사찰요리 명장 1호 선재스님. 젊은 시절 간경화로 인해 시한부 판정을 받고 자신의 몸을 임상실험 삼아 사찰요리로 건강을 회복했다. 사진 강나리 기자.
우리나라 사찰요리 명장 1호 선재스님. 젊은 시절 간경화로 인해 시한부 판정을 받고 자신의 몸을 임상실험 삼아 사찰요리로 건강을 회복했다. 사진 강나리 기자.

우리가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 하는 데는 이유가 따로 있다고.

보통 음식을 먹으면 1주일간 우리 몸에 머물게 되는데 자연에서 온 좋은 식재료로 만든 음식은 몸속의 독소나 안 좋은 것들을 끌고 밖으로 나가는 역할을 해요. 하지만 방부제나 인공감미료가 많이 들거나 안 좋은 음식들은 몸에 2배 이상 오래 머물면서 독소를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몸에는 1주일 전에 먹은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셈이에요.

요즘은 1인 가구가 세 집 중 한집이고, 집에서 요리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1인 가구도 건강한 음식을 먹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저도 1인 가구죠. 하하.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건강식은 김치예요. 김치에는 각종 젓갈과 생선, 청각 등 해조류, 밤, 대추, 낙지 등 온갖 재료를 넣을 수 있죠. 예를 들어 낙지를 사시사철 먹을 수 있는 게 아닌데 김치에 넣으면 먹을 수 있잖아요. 이렇게 영양이 풍부하게 담근 김치 한 가지와 밥만 있으면 육미을 갖춘 훌륭한 건강식이 됩니다. 그리고 김칫국물은 좋은 소화제여서 에너지원인 밥을 먹기 전 한 수저만 먹으면 체하는 법이 없죠.

선재스님은 1인 가구에서도 육미를 갖춘 건강식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김치를 꼽았다. 사진 강나리 기자.
선재스님은 1인 가구에서도 육미를 갖춘 건강식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김치를 꼽았다. 사진 강나리 기자.

요즘 현대인들은 자극적인 맛을 즐기고 커피의 쓴맛에 중독이 되어 있습니다. 균형을 회복하려면 어떤 것이 필요할까요?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생각이 바뀌어야 입맛이 바뀌지, 생각을 바꾸지 않는데 될 수는 없어요. 음식에 대한 개념을 바꾸어야 합니다. 약선이라고 음식에 약초를 넣고 그러는데 그것도 바꿔야 합니다. 그리고 양념도 음식을 약이 되게 만드는 것인데 제일 좋은 양념은 우리 고추장, 된장, 간장이죠.

"농부가 행복한 나라가 진짜 부강한 나라입니다"

건강한 식재료를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농사를 짓는 분들이 점점 줄어든다고 들었습니다. 옷이나 가방 같은 것은 디자이너가 가격을 매기는데 농산물은 소비자가 가격을 책정하죠. 그런데 농부에게 그만큼 혜택이 돌아가진 않아요. 예전에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고 했죠. 농사가 세상의 중요한 바탕이고 나라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힘이라고요. 전 세계에서 농부가 행복한 나라가 정말 부강한 나라입니다.

선재스님은 오랫동안 외국에 한식을 알리셨고 한식사랑이 깊다고.

한식은 5천 년의 역사와 지혜가 들어있는 음식입니다. 예를 들어 기자님도 어릴 때 생일날 수수팥떡을 먹어본 적이 있을 거예요. 10세 이전 뼈가 자라는 시기에 뼈를 튼튼하게 하는 수수팥떡을 주는 것이죠. 또, 동지에는 팥죽을 먹으며 액땜을 한다고 하죠. 팥은 몸의 냉기를 없애주는 역할을 합니다. 체온이 1도만 올라가도 면역력이 5배가 높아진다는데 가장 추운 동지에 팥죽을 해 먹으면 얼마나 건강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굉장히 지혜로운 전통인 것이죠.

(위) 수수팥떡 (아래) 동지 팥죽. 사진 쇼핑몰 멸치쇼핑, 한식진흥원.
(위) 수수팥떡 (아래) 동지 팥죽. 사진 쇼핑몰 멸치쇼핑, 한식진흥원.

그동안 한식을 알려오면서 안타까웠던 점이 있다면.

유명한 쉐프가 한식에는 발효음식이 많다는 걸 알고 방한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온통 조미료와 향신료만 많이 들고 제대로 된 발효음식이 없어 실망하고 귀국하려다가 지인의 소개로 저를 찾아오셨죠. 제대로 발효된 김치와 장아찌 등 음식을 먹고 한식의 진정한 묘미를 알았다고 했어요.

그분이 머무는 동안 호텔 측에 “조식에 왜 서양식 음식만 있느냐? 한식은 없느냐?”고 했더니 양식요리사만 있어서 한식을 준비할 수 없다고 하더랍니다. 그분은 “아무리 외국 요리를 전문으로 하더라도 자국의 요리를 할 줄 모르는 것은 요리사로서 말이 안 된다”라고 하더군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점점 더 음식 맛이 자극적으로 변하고 원재료보다 조미료로 맛을 내는 것은 고유한 맛을 잃는 셈이죠.

사찰음식 강의를 꾸준히 해오셨는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10년 넘게 제 음식을 배운 분이 있는데 요리법이 점점 원재료의 맛을 살리는 방향으로 바뀌었다고 해요. 매일 우엉을 식탁에 올렸는데 처음에는 삶다가 다음에는 쪄서 내고, 이제는 살짝 익혀서 나오는 물까지 허술하지 않게 한다는 거예요. 우엉을 손질할 때도 물에 안 담그고 손질하니 향도 더 살아나고요. 그랬더니 남편이 “밖에서 음식을 먹으면 온통 조미료 맛인데 당신 음식에는 품위가 있어”라고 진심으로 칭찬하셨다더군요.

진달래화전. 진달래는 봄철 언 땅이 녹으면서 일어나는 흙먼지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기관지 천식에 좋다. 사진 한식진흥원.
진달래화전. 진달래는 봄철 언 땅이 녹으면서 일어나는 흙먼지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기관지 천식에 좋다. 사진 한식진흥원.

스님께서는 한식에 적합한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예를 들면 봄에 진달래화전을 왜 먹을까요? 예뻐서? 먹을 게 없어 들판에 나는 진달래꽃까지 먹어야 해서?

예전에 한 장군이 평생 전장터에서 말을 달려 나라를 지키려 애썼는데 흙먼지를 너무나 많이 마셔서 기관지 천식이 심각해 죽게 생겼어요. 그때 딸이 산에 올라 기도를 했는데 절에서 진달래로 술을 담가 먹으라고 했답니다. 그걸 먹고 나았는데 그게 바로 진달래로 담그는 두견주이죠. 겨울에 언 땅이 녹으면서 먼지가 많이 일어나서 기관지가 안 좋아지는데 진달래가 치료해주는 약효가 있는 겁니다. 다만 약효가 강한 만큼 독도 있어서 꽃술은 떼어내고 찹쌀에다 꽃잎을 붙여 화전을 만들지요. 찹쌀은 진달래의 독을 중화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얹으면 봄에 진달래화전을 꼭 먹고 싶겠죠. 우리 한식에 건강과 지혜를 얹으면 훌륭한 이야기가 됩니다.

끝으로 음식과 관련해서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지.

모든 음식은 약이라고 했어요. 병이 나기 전에 하는 예방의학이고, 병균이 들어오기 전 방어 의학인 셈이죠. 그래도 병이 나면 그때는 음식을 치료식으로 썼어요. 좋은 식재료로 그 음식을 어떻게 만들지, 먹을 사람을 생각해서 만들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