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곡성 오곡면 야생차밭에서 딴 찻잎이 반짝인다. 사진 강나리 기자.
전남 곡성 오곡면 야생차밭에서 딴 찻잎이 반짝인다. 사진 강나리 기자.

화사한 5월 햇살 아래 곡성 섬진강 강변 나지막한 숲속 야생차밭에서 파릇한 생명력으로 기름 바른 듯 매끈하게 빛나는 찻잎이 쌓였다. 이른 아침 우리의 천년 차향을 체험하고 즐기기 위해 모인 이들이 정성스레 한 잎 한 잎 따 모았다.

예사 찻잎이 아니라 ‘1창槍 2旗’라 해서 창처럼 뾰족한 1개의 중심부를 깃발처럼 펼쳐진 2개의 잎이 감싼 형태이다. 4월 20일 곡우를 전후로 여린 첫 찻잎을 따 우전차를 만드는데 5월이면 좀 더 자라 1창 2기로 딴 찻잎이어야 우려냈을 때 모양도 곱고 차의 성분도 고루 우러난다고 한다.

5월에 찻잎을 딸 때는 1창 2기 찻잎을 딴다. 사진 강나리 기자.
5월에 찻잎을 딸 때는 1창 2기 찻잎을 딴다. 사진 강나리 기자.

이는 (사)남도정통제다‧다도보존연구소 최성민 소장이 매년 4월 25일부터 5월 15일까지 무료로 진행하는 ‘힐링 곡성 야생차포레스트’ 현장으로, 국가무형문화재 제130호 전통제다 전승을 위한 자리이다. 문화재청의 '문화재 전승공동체활성화 지원사업'이다.

‘다산茶山의 다정다감’을 주제로 한 지난 9일 모임에 오랫동안 차를 사랑한 교수 부부, 정년 퇴임한 교장 선생님, 다례원 원장, MZ 세대가 찾는 성수동 찻집을 운영하는 젊은이들, 영화감독 등 다양한 이들이 참여했다. 찻잎 따기를 마친 참가자들은 차 만들기, 제다를 위해 섬진강 옛 호곡나루터 근처 산절로 야생다원으로 이동했다.

이날 제다는 다산 정약용 선생이 발명한 구증구포와 삼증삼쇄의 원리로 진행되었다. 최성민 소장은 “합리적인 과학자이자 실학자인 다산이 수많은 실험 끝에 개발한 제다법은 세계 제다사製茶史에서 독보적인 발명품”이라고 소개하고 시범과 체험 및 시음을 이끌고 강의를 했다.

정약용의 구증구포 단차, 삼증삼쇄 차떡 제다법의 원리를 설명하는 최성민 (사)남도정통제다‧다도보존연구소 소장. 사진 강나리 기자.
정약용의 구증구포 단차, 삼증삼쇄 차떡 제다법의 원리를 설명하는 최성민 (사)남도정통제다‧다도보존연구소 소장. 사진 강나리 기자.

첫 과정은 찻잎 세척이지만 마침 이틀 전 내린 비로 송홧가루와 황사가 씻겨나가 생략하고, 약 50초~1분 30초간 찌고, 찻잎에 상처가 나지 않게 들썩이고 펼쳐서 식히는 과정을 반복했다. 상처가 나는 순간 갈색으로 변하며 산화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 찔수록 생잎에서 나는 녹향이 살아나는데 스트레스를 없애주고 기분 좋게 한다.”

찻잎을 짧은 시간 찌고 식혀 말리는 과정을 반복한다. 사진 강나리 기자.
찻잎을 짧은 시간 찌고 식혀 말리는 과정을 반복한다. 사진 강나리 기자.

그다음 100~150℃ 가마솥에서 수차례 들썩이며 수분을 날리고 손으로 비볐다. 시간에 따라 찻잎의 향과 상태가 달라지니 지켜보아 조절해야 한다. 마친 후에는 찻잎을 처음 땄을 때 나는 은은한 향이 살아나야 한다.

“가마솥에서 건조할 때 찻잎을 비비는 것은 찻잎 겉에 코팅된 막을 깨기 위한 것이다. 그래야 깊은 속 물기까지 마르기 때문인데 찻잎에 상처가 나면 안 된다. 덕음차를 할 때 빨래하듯 우적우적 비빈다고도 하고, 수분이 빠져나와 거품이 날 정도로 비빈다는 분도 있는데 그러면 찻잎은 산화되기 시작하고 물기가 가마솥 바닥에 눌어붙어 향과 맛을 해친다. 또한, 300~400℃에서 많은 양을 덕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가마솥에서 손으로 비비고 들썩이며 수분을 완전히 날리는 과정. 사진 강나리 기자.
가마솥에서 손으로 비비고 들썩이며 수분을 완전히 날리는 과정. 사진 강나리 기자.

이 과정을 마친 후 난방기를 틀어 하룻밤새 말리고 다시 한지로 싸서 3일간 덮어 두었다가 다시 한번 가마솥에서 건조해 완성한다. “뜨거운 가마솥에서 기운이 움츠러들었던 찻잎이 3일간 두면 회복되어 본성이 살아난다. 일본에서는 5개월간 보관하며 장마가 지난 후 11월에 개봉해 차를 즐길 만큼 제다에 엄격하다.”

다산은 왜 이렇듯 반복해서 찌고 식히고 말리는 독특한 제다법을 개발했을까?

최성민 소장은 “다산의 제다법은 차에서 자연의 녹색, 찻잎을 처음 땄을 때 맡아 볼 수 있는 허브 향, 그리고 생잎의 상큼한 맛을 살려낸 것”이라며 “동양에서는 차의 3요소로 색과 향, 맛을 든다. 완제된 차에서 얼마나 자연의 색‧향‧맛을 살려내느냐 못 내느냐가 좋은 차인지 나쁜 차인지 가름한다”고 했다.

다산의 구증구포, 삼증삼쇄 제다법은 자연의 색과 향, 맛을 최대한 살려
심신수양을 목적으로 한 한국 수양다도에 최적화

또한, 그는 “한국의 다도 문화는 심신수양을 목적으로 한 수양다도이다. 다산의 제다법은 수양 다도에 최적화된 제다법”이라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과거 차는 기호식품보다 정신건강 수양음료로 마셨다. 서구의 식품영양학으로는 차에 카테킨, 테아닌, 카페인 3대 성분이 들어있다고 밝혀져 이를 뒷받침한다. 카테킨은 정신 수양의 기초가 되는 신체적 건강에 좋은 성분이고, 테아닌은 뇌파를 명상상태까지 낮춰 심신안정을 해준다. 그리고 카페인은 안정된 가운데 잠에 빠지지 않고 총총하게 깨어 있을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녹차의 카테킨은 산소를 끌어안고 산화하기를 좋아하는 성질로 인해 우리 몸에 들어가면 활성산소를 없애준다고 밝혀졌다. 이로 인해 몸의 활력과 면역력을 높이고 노화를 방지하는 효과를 나타낸다. 테아닌은 차 단백질로 유일하게 차에만 있으며, 녹차의 카페인은 몸 밖으로 배출되어 중독의 부작용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옛 선인들은 카테킨이나 테아닌, 카페인이라는 성분은 몰랐지만, 기氣적인 감각으로 차 속에서 생명의 파동을 알아챈 것이다. 이를 다신茶神이라 불렀다.”

최성민 소장은 차 한잔에 깃든 수양다도와 다신의 의미를 이야기했다. 사진 강나리 기자.
최성민 소장은 차 한잔에 깃든 수양다도와 다신의 의미를 이야기했다. 사진 강나리 기자.

최 소장은 “중국의 차는 주로 대엽종인데 찻잎에 상처를 내면 카테킨 효소가 자극을 받아 가장자리부터 갈변되면서 산화가 진행된다. 또, 티벳, 몽골 등에서 차를 오랫동안 쌓아놓고 즐기는 과정에서 곰팡이가 생겨 발효가 진행되기도 하는데 산화‧발효가 되면 녹차에는 없는 새로운 향이 난다.

사과 향과 같은 과일 향을 비롯해 200여 가지 향기 성분이 나타나는데 이에 따라 각각 향기와 색깔, 맛이 달라지면서 홍차, 보이차, 철관음 등 다양한 차가 나왔다. 그런데 카테킨이 산화되면 몸 속 활성산소를 없애는 역할은 줄어들기 때문에 이때부터는 수양 음료보다는 맛과 향을 즐기는 기호식품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산의 구증구포 단차와 삼증삼쇄 차떡, 어떻게 다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