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과학 기술이 발달되어 기계가 사람이 하던 많은 일을 대신하고 있고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의 기기가 고도로 발달한 시대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전에 비해 몸은 편안해졌고 엄청나게 많은 정보를 처리하느라 뇌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의식을 몸보다는 뇌에 집중하고 있으므로 기운이 머리 쪽으로만 쏠려 있는 상태이다. 또 정보들이 지나치게 많아서 뇌에 과부하를 주어 머리가 과열되어 있으며, 여러 가지 원인으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로 인해 화 기운이 심장과 머리에 쌓여 있다.

한편 요즘은 주위에서 달고 기름진 음식들을 쉽게 구해서 먹을 수 있고, 내 몸에 필요한 칼로리보다 지나치게 많이 먹어서 비만 환자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한의학에서는 단 음식을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몸에 습담(濕痰)이 많이 쌓여서 비만해진다고 본다. 그래서 식이조절과 적당한 운동을 하면서 몸에 지나치게 많이 쌓인 습담을 빼 주는 것이 한방 다이어트 치료의 기본이다.

한약재 중에는 쓴맛을 내는 약재들이 많다. 쓴맛은 화(火)기운을 내리면서도 음기가 몸에 잘 보존되도록 하는 작용이 있다. 사진 Pixabay 이미지.
한약재 중에는 쓴맛을 내는 약재들이 많다. 쓴맛은 화(火)기운을 내리면서도 음기가 몸에 잘 보존되도록 하는 작용이 있다. 사진 Pixabay 이미지.

한의학에서는 사람의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하여 응용할 수 있는 물질을 ‘본초’라고 하는데, 본초에는 식물뿐 아니라 동물과 광물까지도 포함이 된다. 그리고 한의학의 특성상 본초의 약성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그 본초가 가지고 있는 기운(氣)과 맛(味)을 연구하는 기미론(氣味論)이라는 분야는 아주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기미론이란 4기(溫熱凉寒, 따뜻하고 뜨겁고 서늘하고 차가운 기운)와 5미(酸苦甘辛鹹, 시고 쓰고 달고 맵고 짠 맛)를 말하는데 이 4기와 5미라는 도구를 활용하면 그 약물의 특성과 효능을 알아내고 활용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한편 동양 학문은 전체적, 유기적으로 바라보는 특성이 있어서 모든 것이 창조되고 운행되는 원리를 음양오행으로 설명한다. 사람의 몸이 운행되는 기전과 질병의 발생과 치료 원리도 역시 음양오행의 원리로 이해하고, 건강을 증진시키거나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데 음양오행의 원리를 활용한다. 오행에 우리 몸의 주요 장기인 오장과 기미론의 5미가 어떻게 배속되는지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한의학원론, 최승훈 저, 군자출판사, 2020)
(한의학원론, 최승훈 저, 군자출판사, 2020)

위의 오행 배속표를 5미 중에서 쓴맛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쓴맛은 오행 중에서 불의 기운을 뜻하는 화(火)에 속하고, 오장 중에서는 심장이 화에 속한다. 곧 쓴맛은 오장육부 중에서 화(火)의 기운이 많은 심장이라는 장기와 연관이 된다.

쓴맛은 화(火)기운 내리면서도 음기가 몸에 보존되도록 작용한다

한의학 서적 중에서 쓴맛의 특성과 작용에 대하여 설명된 구절들을 살펴보면 우선 『황제내경』이라는 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 『황제내경』은 수천 년 전에 저술된 책으로, 한의학의 기초 원리가 담겨 있어서 한의학의 기본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 참고할 수 있다. 이 《황제내경 소문 장기법시론》에서는 ‘매운맛은 흩어지게 하고, 신맛은 수렴하게 하고, 단맛은 이완되게 하고, 쓴맛은 음기를 견고하게 하고, 짠맛은 부드럽게 한다. 辛散 酸收 甘緩 苦堅 鹹軟’고 하여 오미가 우리 몸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에 대하여 서술되어 있다. 곧, 쓴맛은 기운을 아래로 내려 음기(陰氣)를 견고(堅)하게 하는 작용을 한다고 하였다.

허준은《동의보감》「탕액」 편에 쓴맛이 화 기운을 나가게 한다는 구절을 기록했다. 사진 문화재청
허준은《동의보감》「탕액」 편에 쓴맛이 화 기운을 나가게 한다는 구절을 기록했다. 사진 문화재청

또한, 조선의 명의(名醫) 허준은 《동의보감》 「탕액」 편에서 『東垣』과 『醫學入門』의 구절을 인용해 ‘쓴맛은 바로 아래로 내려서 나가게 한다(苦直下而泄). ’이때 쓴맛이 나가게 한다는 것은 위로 올라가는 화(火) 기운을 나가게 한다는 뜻이다(苦泄, 謂瀉其上升之火也)라고 기록했다.

『황제내경』 이후로 한의사들이 쓴맛의 작용에 대하여 연구해 온 내용들을 종합해 살펴보면, 첫째로 쓴맛은 화(火) 기운을 내리고 기운이 위로 올라간 것을 아래로 내리는 작용을 한다. 쓴맛이 있는 약재들을 예로 들어 설명하자면, 대황이라는 약재는 화 기운을 내리고, 대변이 열 기운으로 인해 막혀서 변비가 된 것을 밑으로 빼 주어 대변이 잘 나오게 하는 효능이 있다. 그리고 치자라는 약재는 심장에 화 기운이 쌓여 가슴이 답답한 증상이 있을 때 심장의 화 기운을 아래로 내려주는 효능이 있다.

둘째, 쓴맛은 화 기운을 내리면서도 음기(陰氣)가 몸에 보존되도록 하는 작용이 있다. 음기란 양기(陽氣)와 상대적인 개념으로서 우리 몸에서 진액, 혈 등의 물질적인 부분과 연관된 기운을 뜻하는데, 몸에 화 기운이 많으면 음기가 말라서 우리 몸에서 음기가 점차 허(虛)해지게 된다.

음기가 허해지면 어지럽거나, 입이나 목구멍이 건조해지거나, 마른 기침을 하거나, 허리가 아프거나, 성 기능이 떨어지는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고, 면역력을 약화시키고 뇌 기능을 떨어뜨리며 노화를 촉진시킬 수 있으므로 우리 몸에서는 음기와 양기가 충분하게 채워져 있으면서 조화롭게 작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음기가 허해진 경우에는 음기를 보하는(滋陰) 동시에 화 기운을 아래로 내리는(降火) 방법으로 치료를 해야 하는데, 쓴맛이 있는 약재나 음식은 화 기운을 아래로 내려주므로 음기가 우리 몸에 잘 보존되도록 도와줄 수 있는 것이다. 곧 쓴맛은 수승화강(水升火降. 화 기운은 아래로 내려가고 수 기운은 위로 올라간다)이 잘 이루어지도록 도와준다고 할 수 있다.

셋째, 쓴맛은 습(濕) 기운을 마르게 하는 작용이 있다.

이처럼 쓴맛이 있는 약물이나 음식은 우리 몸에서 화 기운을 아래로 내리고 음기가 마르지 않고 몸에 보존되도록 해 주어 수승화강이 잘 이루어지도록 도와주며, 습기운을 말리는 효능이 있다. 현대인들은 화 기운이 가슴과 머리 쪽에 쌓여 있고 습담이 지나치게 많이 쌓여 있는 상태이므로, 쓴맛을 잘 활용하면 현대인들의 건강을 증진하고 질병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윤미나 한의사
윤미나 한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