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 역사에서 답을 찾다
한일관계, 역사에서 답을 찾다
  • 민성욱 박사
  • k-spirit@naver.com
  • 승인 2019.08.01 09: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칼럼] 민성욱 박사

요즈음 난데없는 친일 논쟁이 뜨겁다. 일본이 우리나라에 취한 수출규제라는 경제보복 조치를 두고 국내에서 입장의 차이에 따른 논쟁을 말한다. 이 논쟁에 참여하는 개인과 집단 간의 또 다른 갈등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 또한 우리 사회의 오래된 한 단면이라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물론 모든 한국인이 이 논쟁에 참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언론이 조장하고 정치권에서 이해관계에 따라 악용하는 것이 문제라고 본다.

그럼 일본은 왜 경제보복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을까? 그리고 그들의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 이것을 드러난 현재 상황으로만 인식하기에는 한계가 따른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한일관계는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민성욱 박사
민성욱 박사

나는 대학 3학년 때 일본 문부성의 초청으로 대한민국 대학생 대표 방문단의 일행으로 일본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일본 가정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일본 대학을 방문하고 일본 현지 대학생들과 교류하기도 하였으며, 교토나 오사카 등 일본 내에 알려진 관광지도 둘러보았다. 일정 내내 일본은 우리에게 아주 호의적이었다. 하룻밤을 보냈던 일본 가정은 평범한 전형적인 일본 가정이었고, 정말 친절하였다. 한국인이 왔다고 한국 음식을 준비해서 내 놓기도 했고, 야구를 좋아하는 초등학생 아들과 야구를 같이 하기도 했으며, 영어 과목이 부족하다며 중학교 1학년인 딸의 영어 과외도 부탁하기도 했다. 그 집 아이들은 세월이 흘러 어느 덧 중년이 되어 있을 것이다. 내 생애 이렇게 친절한 대접을 받아 본 적은 없었다. 그 하룻밤의 인연이 상당히 오랜 기간 편지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기도 하였다. 방문 마지막 날에는 일본 문부성이 주최한 공식만찬에 참석했는데, 그때 그들의 속내를 알 수 있었다.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5년 단임의 대통령을 직접선거로 선출하였던 6공화국의 시작, 노태우 정부는 외교에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북방외교에서는 큰 성과가 있었고, 남북문제도 진전이 있었다. 또 하나의 과제인 일본과의 관계 개선도 필요했다. 경제는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해 왔지만 정치적으로는 경색되어 있었다. 양국 간의 관계개선을 위해 우선 전후세대 중 공통적인 요소를 많이 갖고 있을 거라 생각된 대학생들끼리 교류하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고 앞으로 미래의 주역이 될 그들에게 과거사를 잊고 새로운 관계를 기대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과거사라는 것이 잊어진다고 해서 잊어지는 것이 아니다.

만찬장에서 한 주최 측 관계자가 했던 말이 기억이 난다. 한일 관계는 마치 서로 망원경을 통해 마주 보고 있는 것과 같다고 했다. 한국 입장에서 일본은 실제보다 작아 보이고 일본 입장에서 한국을 보면 실제보다 커 보인다는 것이다. 사실 한국인들은 경제대국인 일본을 아직도 우습게 안다. 반면 일본인들은 한국을 과대해석해서 지나치게 경계하기도 한다. 그때만 해도 반일 감정만 내세우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슬기롭게 극복해야 되겠다는 의미에서 극일로 가야 된다고 생각했다. 즉 일본을 극복 또는 승패의 대상으로 인식했다.

한일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 현재 상황에 이르게 된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의 명분과 그 이유를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겠다. 우선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의 내용은 안보예외, 즉 한국에 수출하였더니 불화수소와 같은 전략물자들이 (북한이라고 지칭은 안했지만) 적대국인 다른 나라로 넘어가는 상황이라 이것은 일본 안보에 타격을 주는 행위다. 따라서 대한국 수출규제는 불가피하며,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에도 제외하겠다고 한 것이다. 즉 일본이 한국을 잠재적 적대국가로 간주하여 주요한 수출 품목에 규제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2003년, 2008년에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 추가할 때 내세웠던 이유가 여전히 존속하고 있음에도 이번에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겠다는 것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 위반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은 표면적으로는 안보를 이유로 꺼내 들었다. 물론 우리나라도 과거 방사능(후쿠시마 원전)에 오염된 일본 수산물에 수입규제를 하여 일본이 WTO에 제소했으나 일본이 패소했던 적이 있다. 사실 아무리 기준치 이하라도 체내에 방사능이 쌓일 수 있다면 누가 사먹겠는가.

최근 세계무역기구 일반 이사회에서 한일 대표단이 만났지만 서로 입장 차이만 확인했고 일본은 계속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시종일관 똑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은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앞서 살펴보았지만 “안보와 관련한 부적절한 수출관리가 있었다”는 게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줄곧 밝혀 온 대한국 수출규제 조치의 핵심 이유다. 하지만 진짜 목적은 따로 있다. 일본 기업이 패소한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뒤 대책 마련에 적극 나서지 않는 한국 측에 보복하기 위한 성격이 짙다는 것이다. 이러한 수출규제는 일본의 화풀이이자 힘의 과시이며, ‘위안부 합의’가 사실상 파기 되었고, 청구권협정 체결 이후 별 탈 없던 강제동원 관련 합의를 뒤집는 대법원 판결이 내려졌는데도 한국 정부가 아무 대책을 내놓지 않자 아베 총리가 화가 났다는 것이다. 물론 확대 해석을 자제해야 하지만, 수출규제는 단지, 일본이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 한국정부가 일본이 원하는 답을 제시하도록 압박하는 것일 수 있으며, 일본은 이중심리가 있어, 헌법 개정을 찬성하면서도, 헌법 구조에 대해선 지켰으면 하고 평화국가의 틀을 깨는 것은 아직도 50% 이상이 반대하고 있다.

대일항쟁기에 일제가 전시체제하에서 병력보충을 위해 한국인 청년들을 강제로 군대에 복무하도록 했다. 1944~45년 강제 징집된 한국인 청년의 수는 약 21만 명에 달했다. 이처럼 패전의 위기에 몰린 일제의 최후 발악 속에서 한국인 청년들은 침략전쟁의 총알받이로 희생을 강요당했다. 또 많은 한국인들은 공사장이나 공장 등에서 강제노역을 했다. 특히 1938년 국가총동원법이 시행되면서 100만 명 이상의 한국인들이 강제징용 되었으며, 징용된 사람들은 국내외의 탄광이나 군수공장 등에서 강제노동을 해야 했다. 그런가 하면 반인륜적인 강제 성노역을 당해야만 했던 위안부 등 주권을 상실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겪어야만 했던 아픔과 슬픔이 있었다. 그 아픔과 슬픔의 세월을 어떻게 보상할 수 있겠으며 보상한다고 보상이 되겠는가.

그렇다면 일본의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

우선 일본 중심의 동북아 질서의 재편에 있다. 아베정권을 비롯한 일본의 우익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중국의 급부상 등으로 세계정세가 불투명해지면서, 일본 내부에서는 자국의 역할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으며, 그 과정에서 안보 및 경제와 관련한 한국과의 관계 재정립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한국 길들이기에 있다.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판결 등 일본의 심기를 건드린 데 대한 일종의 경고성 메시지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줄곧 대한국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해 왔다. 그런 일본이 한국을 상대로 수출제재에 나섰다. 일본의 진짜 속내가 궁금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지막으로 외교를 내치에 이용하려는 아베의 꼼수가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올라섰고, 한국은 추격하는 상황, 일본은 위협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런 판도를 뒤바꾸려는 것이다. 지금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 의도가 여기에 있다는 분석이 여러 전문가들에 의해 나오고 있다. 결국 동북아의 정치·경제·문화 대국을 자처해온 일본이 그들 중심의 ‘새로운 판짜기’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한일 간의 관계를 설정해야 할 것인가?

이제는 협일(協日)이다. 일본을 더 이상 배제하거나 제외해서는 안 된다. 항일에서 반일, 반일에서 극일까지 왔다. 그 동안은 일본을 배제하거나 이기려고만 했다. 반일이든 극일이든 우리한테는 좋지만 그것이 상대인 일본에게는 좋을 리가 없다. 일본을 협업, 협치, 협조의 대상으로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은 협상 테이블에 나올 것이다.

반일과 극일은 결국 우리는 이기고 일본은 지는 구도다. 이것은 진정한 파트너십이 아니다. 이제는 같이 이기는 전략으로 가야 된다. 소위 말하는 ‘윈윈전략’이 그것이다. 우리는 ‘윈윈전략’을 일본에게만 고려하지 않으려 한다. 이것은 역사성에 기인한 감정정보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성에 기인한 감정정보는 서로 인정하고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려면 과거 역사에 머물거나 집착하면 안 된다. 과거에 집착하면 더 큰 그림을 볼 수 없다. 그것은 한국과 일본 모두의 손실이다. 따라서 역사성에 기인한 것은 서로 인정하되 그것에 집착하지 말고 대국적인 견지에서 포용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안중근 장군(독립군 장군)의 동양평화사상, 비록 미완성으로 끝났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가 완성해야 된다. 안중근 장군은 1909년 10월의 어느 날, 하얼빈역에서 동양평화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였다. 그것이 대일항쟁의 신호탄이 되어 준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순국하기 전 마지막까지 놓치지 않았던 것이 일본을 포함한 동양평화였다. 그토록 미워했던 일본이지만 그러한 일본도 동양평화라는 큰 그림 속에서 힘을 모아야 하는 대상으로 본 것이다.

일본은 1592년 ‘정명가도(征明假道)’의 명분으로 전쟁을 일으켰다. 그것이 임진왜란이다. 나라가 송두리째 일본으로 넘어갈 뻔 했다. 근대에 와서도 그들은 한반도에 대한 침략 야욕을 버리지 못했다. 1876년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를 시작으로 1910년 경술국치까지 그들은 주도면밀하게 준비했고 임진왜란의 실패를 교훈삼아 오로지 힘만으로 밀어붙이지 않았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통해 주변 국가들을 정리하고 영일동맹과 가쓰라 태프트 밀약 등으로 외교로 서구열강들도 정리했다. 그리고 한국 내에는 마지막 개혁세력인 동학농민군들을 무참히 짓밟았고 국모를 살해했으며, 왕을 허수아비로 만든 후 일부 친일세력과 함께 그들의 의도대로 조선을 개혁했다. 을사늑약으로 외교권 박탈하고, 2년 후인 정미년에는 군대까지 해산시켜버린 후 헤이그에 특사를 파견한 고종황제를 강제 퇴위시킨다. 결국 그들은 원하는 것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거룩한 저항정신과 빛나는 얼을 바탕으로 전개되었던 대일항쟁의 결과, 광복을 했고 일본은 패전국으로 전락했지만, 6.25. 전쟁으로 일본은 전후 복구를 완전히 이루어 내었고, 경제대국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왜 이렇게 일본과는 악연일까? 이러한 악연은 언제부터인가?

따지고 보면 지금의 경제전은 임진왜란이나 100년 전과 양상이 다르지 않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고조선시대, 일본 열도도 단군의 통치 범위 내에 있었다. 그리고 섬나라의 특성상 상당기간 문물교류 없이 단절되었기 때문에 역사의 시작이 대륙보다 늦을 수밖에 없었고, 대륙의 선진문물은 북방계나 한반도 토착민들 등 도래인들에 의해 전달 되었다. 즉 일본 문화의 시작은 도래인들의 문화였다. 일본 열도 곳곳에 그 흔적들이 남아 있다. 우리가 일본인을 업신여길 때 사용하는 ‘왜’라는 말도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신라인들이 가야인을 두고 한 말이었다. 고구려 광개토태왕과 장수태왕 때 한반도는 고구려 지배하에 들어갔던 적이 있었다. 그때 삼한인들과 가야인들이 일본 열도로 넘어 갔다. 신라 법흥왕과 진흥왕 때 가야가 완전히 신라에 복속이 되면서 남은 가야인들이 일본 열도로 넘어 가면서 이제 일본 열도가 ‘왜’가 되었다. 일본 열도인들은 한반도를 동경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이 언젠가는 회복해야 될 고토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만주지역을 회복해야 될 고토로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일본은 섬나라이기 때문에 섬이 바다에 잠길 것이라는 잠재적 위협을 느끼고 있고 잦은 지진과 방사능 오염 등 그들의 섬에서 벗어나려고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반도의 옛 고토를 회복하고자 했던 500년 전이나 100년 전의 행태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는 논리로서는 설명이 안 된다. 논리로 설명이 안 될 때는 역사를 보아야 한다. 한일 간에는 오래된 역사가 존재하고 그로 인한 감정의 골이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깊다. 역사적인 관계성을 가늠해 볼 필요가 있다. 같은 동북아시아에 속한 한국, 중국, 일본은 서로 인접해 있어 고대부터 일정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런데, 인접해 있었기 때문에 겪을 수밖에 없었던 갈등과 대립, 상생과 조화를 반복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개인 간에도 가까운 사이일수록 좋을 때는 괜찮지만 사이가 안 좋아지면 그 배신감과 적개심이 더 커진다. 만약 일본이 지구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다면 현재의 감정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는 역사 앞에서 화해와 치유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배척이나 제외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수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상대방을 포용하려면 상대방 보다 강해야 가능하다. 그리고 국제관계 속에서 일방적으로 당하지 않으려면 주도면밀함과 상대방이 꼼짝하지 못할 전략과 논리가 필요할 것이다.

백조가 호수 위를 유유히 떠다닐 수 있는 것은 물밑에서 쉼 없이 물갈퀴가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즉 조용하듯 보이지만 백조의 물갈퀴가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에 우리의 대응도 그럴 필요가 있다. 지나치게 흥분하거나 호들갑 떨지 말고 정부는 정부대로,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경제인은 경제인대로, 언론인은 언론인대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분명 일본의 이번 조치는 부당한 것이다. 하지만 아베나 일본 극우 보수는 비판해도 되지만 일본과 일본인들을 적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또 국가는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국가는 알아야 된다.

또한 한일 국가 간의 해석의 차이도 이해를 해야 된다. 일본은 한일청구권협정을 통해 국가 간의 합의가 끝났기 때문에 모든 배상은 끝났다고 인식하고 있다. 반면 한국 정부는 국가 간의 합의는 끝나서도 개인의 배상 요구는 남아있다고 보고 있다. 개인의 권리를 아무리 국가라지만 정부가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갈등이 생겨났다. 그 결과 경제보복 조치로 나온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세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 번째 일본에 의존하고 있는 수입선을 다변화 할 필요가 있고, 두 번째 수출의 비중 중 중국의 의존도를 낮추고 다변화할 필요가 있으며, 세 번째 국가안보가 미국에 편중되어 있는 것을 감안할 때, 한미동맹뿐만 아니라 다자간 안보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추가로 식량자급률도 현재 28%에 그치고 있지만 이것도 일정 수준이상 끌어 올려야 잠재적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전후세대 일본인들에게는 중국에도 밀리고 미국에도 밀리는 상황인데 한국으로부터도 무시당한다고 생각하니 자존심 상하고 ‘그래 너희들이 우리의 지원 없이 얼마나 잘 나갈 수 있나 보자’고 하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일본이 필요하고, 북미관계가 긴장이 고조될 때는 한미관계는 돈독해 졌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겉으로는 견고해 보이는 성도 자칫 사상누각이 될 수도 있음을 인지해야 된다. 따라서 동북아 역학관계의 변화, 국제관계의 변화 등에서 한일 간의 갈등이 시작이 되었기 때문에 큰 틀에서 이번 사태를 바라보아야 한다.

중국에 잃은 자존심을 되찾고자 미국에 붙은 일본, 북한은 존립기반을 유지하기 위하여 현재 국제정세를 이용하고 있다. 이것은 모두 각자의 국익을 추구하고자하기 위함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평화를 지켜내야 하고, 통일의 기초를 마련해야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과 협력이 필요하다.

위기에 처한 국민을 위해 사회안전망 구축이 중요하며, 국산화 성공과정에 필요한 기간이 필요하므로 우리 정부는 유연하게 대처해야 된다고 본다. 경제인들이 나와서 완화시키고 정부차원에서 유연하게 풀어 나가야 된다. 평화통일의 관점에서 전 세대를 아우르고 역사를 관통하는 계획을 수립하고 비전을 제시해야 된다. 새로운 관계를 구성하고 동아시아 정세의 변화에 대응해야 된다.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 그래서 한반도는 동양평화의 중요한 분수령이 되고 있다. 한반도는 남북한의 관계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세계 주요 국가들의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이다. 따라서 한반도의 평화는 아시아평화이며, 아시아평화는 세계평화로 이어지는 것이다. 주도면밀하게 준비해서 고대 왕인과 아직기가 그러 했듯이 일본에 국학, 즉 홍익의 가치를 전달해야 된다. 그들도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공유하고 있으므로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고 하나라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역사를 관통하는 살아있는 국학, 그것이 경색된 한일관계를 풀 수 있는 해법이며, 안중근의 동양평화사상을 완성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본 칼럼을 본지의 편집방향과 관련이 없습니다.

13
0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