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돋이 명소마다 인파로 북적이는 2020년 새해 첫날의 아침, 사람들은 어제와 다르지 않은 태양을 굳이 고생해 가며 보러 간다.

사람들이 해돋이를 보려고 고생하면서까지 가는 이유는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비록 희망 고문이 될지언정 그것때문이라도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여유를 갖게 되고 삶의 의욕이 충만해 지는 것이다.

민성욱 박사
민성욱 박사

만약 그것이 일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온갖 스트레스에 짜증이 날 것이다. 하지만 정말 많은 시간을 들여 해돋이 보러 갔지만 수많은 인파에 인상을 찡그릴 만한 데도 다들 얼굴에 함박웃음 꽃이 핀다.

어제 떠오르는 태양은 동그랗고 오늘 떠오르는 태양은 네모이고 내일 떠오르는 태양이 세모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정말 특별할 것이 없어서 더 특별하다고나 할까. 기분 탓일 것이다. 그래서 어떤 기분으로 새해를 맞이하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대충 맞이하면 대충 태양이 뜨는 것이고 정성껏 맞이하면 황금 태양이 뜨는 것이다. 새해 첫날 아침에 해돋이를 본 사람들은 가슴 속에 황금 태양 하나씩 품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서기 2525년에 사람들이 여전히 살고 있다면 깨닫게 될 거에요. 서기 3535년에는 진실을 말할 필요도 거짓을 말할 필요도 없어요. 서기 4545년에는 이마저도 필요 없이 눈도 필요 없고 씹어 먹을 필요도 없겠죠. [......] 서기 9595년에도 인간이 그대로 살고 있을지 난 궁금해요. 지구의 혜택을 인간이 모두 착취하고 되돌려 준 건 아무것도 없어서 ..... 이제 서기 만년이 되어 깨닫지 못한 걸 후회하며 인간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게 될 거에요. 인간의 지배는 종식되었지만 그 장대한 세월 속에서도 저 멀리 별들은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그때도 반짝일 겁니다.”

제이거와 에반스가 1969년 6월에 발표한 미래에 대한 생각이 담겨있는 노래 “in the year 2525”의 가사이다. 50년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 들어 보니 가사가 의미심장하다.

사람들은 1980년대에는 2000년을 예측했고, 21세기를 맞이하는 순간에는 2020년을 예측해 왔다. 이제 그 2020년이 되었다. 인류가 예측한 대로의 모습인지 여부는 인류가 선택하기 나름일 것이다.

21세기를 맞이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5분의 1이 지나가고 밀레니엄 세대들이 세계를 주도하고 있다. 연도를 1000년 단위로 끊는 것을 밀레니엄이라고 하며, 1980년부터 2000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를 밀레니엄 세대라고 한다.

인류가 세 번째 맞이하는 밀레니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인류의 미래뿐만 아니라 지구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달라져야 될 것인가?

현대인들은 산업화, 과학화 등 물질문명의 혜택을 받고 있으면서도 그 안에 갇혀 있다. 이제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면서 AI(인공지능), 빅데이터, 로봇 등 새로운 이슈들이 부각되면서 오히려 역설적이지만 이 시대는 인간에게 근원으로 회귀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인간성 상실시대에서 인간성 회복시대로 나아가야 하며, 새로운 정신문명시대를 맞이할 준비를 하여야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대인의 고질병인 막힌 가슴부터 풀어야 된다. 가슴이 막히면 기혈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으며 스스로 위축되어 자존감이 상실된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심인성 질환으로 힘들어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 가슴을 살릴만한 제도적인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불치의 병, 마음의 병을 이제 치유해야 된다.

인간은 수성(獸性), 인성(人性), 신성(神性)을 다 갖고 있다. 하루에도 이 세 가지 속성이 수 없이 반복되어 나타난다. 사람이 인성을 회복하고 신성이 발현되면 성스럽고 거룩한 행위를 하게 된다. 반면 인성을 상실하고 수성만 발현된다면 인류는 희망이 없어지게 된다.

밝고 환한 세상 vs 어두운 세상

밝고 환한 빛의 세상은 모두가 가슴이 열려 하나가 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개천이다. 반면 어두운 세상은 가슴이 닫히고 분별하며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어 결국 고립되어 자멸의 길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2020이라는 숫자는 쉽게 만날 수 있는 숫자가 아니다. 어쩌면 2020년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은 현 인류의 축복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것은 아름다운 선택이 선행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그 동안 종교가 나름의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우리의 삶을 특정 종교에 맡길 순 없다. 스스로 존재가치를 확인하고 창조해야 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누구나 신이 될 수 있고, 즉 신인이 될 수 있는 자질이 있다는 한민족의 가르침을 되새겨 볼 때이다.

광명의 세상을 여는 2020년

2020년의 화두는 한자로는 光明, 영어로는 Get bright, 우리말로는 ‘밝고 환해져라’이다. 서로 다른 언어이지만 그 뜻은 모두 하나로 통한다.

2020년은 특별한 숫자의 조합인 만큼 기대가 크다. 특별한 날에는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이와 비슷한 연도가 1010년, 3030년 이지만 3030년은 우리가 살아 볼 수가 없다. 오로지 2020년을 맞이할 뿐이다. 다만 1010년은 지나간 과거이므로 역사 기록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다. 2020년을 맞이하면서 1010년으로 돌아 가보자.

Back to 1010

지금으로부터 1,010년 전 서기 1010년은 고려 시대였다. 후삼국의 분열을 넘어 민족의 재통합을 이룬 고려, 고려는 어떻게 재통합을 이루어 낼 수 있었을까?

거기에는 태조 왕건의 포용 정책이 한 몫 했다. 후기신라 말기는 귀족의 사치가 심해지고 백성의 살림은 어려워지면서 이를 견디다 못한 백성들이 여기저기에서 봉기하던 때였다. 왕건은 이를 잘 알고 있던 사람이었기에 통일의 과정에서 지방의 호족 세력을 자신의 세력으로 끌어들였다. 무조건 그들을 통제하려 하지 않았고 그들의 세력을 인정해주면서 자신의 편으로 만든 왕건의 이러한 온화한 정책이 호족뿐만 아니라 신라의 세력, 나아가 멸망 후 고려로 넘어온 많은 발해인들까지 고려로 흡수되도록 했다. 실질적인 민족의 통합을 이루어낸 것이다. 또한, 왕건이 중요하게 여긴 것은 백성의 마음이었다. 후기신라 말 곳곳에 있었던 백성의 봉기를 본 왕건은 나라를 지속하려면 먼저 백성을 살펴야 한다고 생각했고, 때문에 통일의 과정에서도 최대한 백성에게 피해를 덜 주도록 노력하였으며 세금을 낮추는 등 백성을 위하는 정책을 펼쳤다. 신라가 귀족의 나라였다면 왕건은 백성이 편한 나라를 세우고자 한 것이다.

이처럼 지방의 세력과 다른 나라의 사람까지도 모두 받아들이며, 백성을 위하는 마음으로 정책을 폈던 왕건의 마음은 후삼국 통일의 바탕이 되었다.

1천 년 전 고려가 이룩한 새로운 민족통합 방식과 그에 바탕에 둔 다원주의 역사, 다양성과 통일성의 문화전통과 대내외에 대해 각각 개방성과 역동성을 지향했던 역사전통 등은 지금 시점에서 배워야 할 좋은 교훈으로 새롭게 재조명될 필요가 있다.

고려의 역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해법을 고려왕조의 역사에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21세기 초반은 지식정보사회라는 새로운 역사발전 단계로 진입하는 세계사의 거대한 전환기이다. 각기 다른 이념과 세계관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넘어 다양한 인종과 국가, 종교와 문화, 사상이 공존하면서 새로운 통합을 추구해가는 시대이다. 약 1,000년 전에 나라를 세워 500년간 지속한 고려사에서 그러한 모습을 읽을 수 있다. 고려는 문화와 사상 면에서 다양성과 통일성이 정치와 사회에서 개방성과 역동성이 공존한 다원주의 사회였다. 우리 사회가 21세기 새로운 사회에 성공리에 진입하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고려사회의 역사 경험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1010년은 고려 제8대 왕인 현종의 즉위년이다. 우리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왕이 현종이다. 현종은 고려 제5대 왕인 경종의 제4비인 헌정왕후가 경종이 승하한 후 자신의 친삼촌이자 왕건의 여덟 번째 아들인 왕욱과의 사통으로 낳은 아들이 바로 현종이다. 이렇게 불륜으로 태어난 현종은 혈통으로는 왕족의 지위를 갖고 있었지만 정치로는 위치가 바닥이었다. 그리고 이모였던 천추태후가 김치양과 사통해서 낳은 아들(제7대 목종)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 왕위 계승 서열 1순위였던 그를 끊임없이 죽이려고 했고 심지어 절로 쫓겨나 동자승으로 살아야만 했다. 온갖 위험 속에서도 살아남았던 그는 결국 고려 제8대 임금으로 거란의 침입으로 인한 위기를 극복하고 지방제도와 체제를 정비하여 고려의 문화를 중흥하여 위대한 명군이 되었다. 또한 성종 이래로 폐지되었던 연등회와 팔관회를 부활시켜 민족의 주체성을 확립하고 국운을 되살렸다.

현종의 현(顯)은 나타나다 뜻도 있지만 광명이라는 뜻도 갖고 있다. 태조 왕건 이후 다시 대통합으로 광명의 세상을 열었던 현종도 위기는 있었다. 두 차례 거란족의 침입이 그것이다. 첫 번째 침입 때는 도망친 후 화친으로 마무리 되었지만 두 번째 침입 때는 도망치지 않았고 당당히 맞서게 되는데 당시 세계 최강이었던 거란의 군대를 맞이하여 청야(淸野)전술로 주변을 비우고 개경성에서 버텼다. 보급로가 끊긴 거란군은 개경성 공략에 실패하고 퇴각하게 되는데, 이때 그 유명한 강감찬 장군의 귀주대첩이 있었다. 이때 거란군은 거의 전멸하게 되고 거란과의 전쟁에 승리함으로써 고려 위상은 달라졌으며 그 이후 몽골이 쳐들어 올 때까지 120년 동안 그 누구도 고려를 넘볼 수 없었고 그의 세 아들(덕종, 정종, 문종)이 차례대로 왕위에 올라 고려의 르네상스 시대를 이끌었다. 한 동안 고려는 천하의 중심으로 그 전성기를 맞이하였으며 백성들은 태평성대를 누렸다.

역사는 과거를 통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도록 해준다. 또한 때로는 한 사람의 선택이 어떻게 역사를 바꿔왔는지도 보여 준다. 그래서 과거는 오래된 미래라고 한다. 오늘은 그 기준점이 된다. 오늘 이전이 과거이고 오늘 이후가 미래가 되기 때문이다.

2020년 오늘을 사는 우리는 어떠한 선택을 해야 될 것인가?

개구리가 점프하기 전에 온 에너지를 모아 잔뜩 웅크렸다가 한 번에 크게 점프를 한다. 어쩌면 2019년까지는 그런 시기였다. 그래서 힘들었던 것이다. 힘이 비축되려면 힘들 수밖에 없다. 이제 광명의 세상을 맞이하기 위하여 온 인류가 의식의 점프를 해야 할 때이다.

완성의 숫자 2020, 진정한 완성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고 무엇으로 완성할 것인가? 이미 해답은 우리 역사 속에 있다. 한민족의 역사에서 면면히 이어져 왔던 ‘홍익정신’이 이제 ‘Korean Spirit’으로 세계화되고 있다.

Open your eyes, Open your mind, Open your brain

눈을 열고 보면 눈이 밝아지고 환해지며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이게 된다. 마음을 열고나면 가슴이 편안해 지고 숨길이 고르게 되며 그 누구라도 포용할 수 있게 되고 그 무엇과도 하나가 될 수 있게 된다. 이때부터 삶의 희망이 생기게 되고 원대하고 거룩한 꿈을 가슴 속에 품게 된다. 이렇게 되면 뇌가 저절로 깨어나게 된다.

2020년 두 번째 날에 어머니가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 너무 오래되어 수술을 해도 시력회복을 장담할 수 없다는 의사의 말에 가슴이 철렁하였다. 그저 괜찮다고 하는 부모의 말씀은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됨을 이번에 깨달았다. 너무 무심했던 내 자신을 책망하기도 하였다. 그 동안 잘 안 보였을 텐데 어떻게 참으셨을까. 대개 자기가 겪는 일이 아니면 그 심각성을 잘 모른다. 수술은 잘되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2020년은 어머니도 분명 광명의 세상을 맞이하실 것이다. 어머니는 수술 후 온 세상이 낯설다고 하셨다. 어머님 눈을 통해서 본 2020년은 또 그렇게 광명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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