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동해안 감시초소(GP) 문화재 된다
고성 동해안 감시초소(GP) 문화재 된다
  • 김민석 기자
  • arisoo9909@naver.com
  • 승인 2019.04.08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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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냉전 시대의 아픔과 평화의 염원을 담은 ‘고성 동해안 감시초소(GP)’와 항일 유산인 ‘대한민국 임시정부 환국기념 23인 필묵’ 등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또한, ‘만해 한용운 심우장’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했으며, ‘이봉창 의사 선서문’ 등 2건을 문화재로 등록했다.

고성 동해안 감시초소(GP)‘는 지난 1953년 군사정전협정 체결 직후, 남측 지역에 설치된 최초의 감시초소로, 북측 감시초소와 최단 거리에 자리한 만큼 역사성과 상징성 등에서 의미가 크다. 또한, 남북 분단 이후 남북 화합의 상징성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시설로 활용가치가 매우 높다.
 

이번에 문화재로 등록 예고 된 고성 동해안 감시초소(GP). [사진=문화재청]
이번에 문화재로 등록 예고 된 고성 동해안 감시초소(GP). [사진=문화재청]

‘대한민국 임시정부 환국기념 23인 필묵’은 김구, 이시영 등 대한민국 임시정부 관계자 23인이 광복 이후 환국 하루 전인 1945년 11월 4일 저녁에 중국 충칭에서 자신들의 감회와 포부, 이념 등을 필적으로 남긴 것이다.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들이 조국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 각자 품고 있던 뜻과 의지, 사상을 살펴볼 수 있으며, 나아가 우리 현대사의 특수성과 그 시대상까지 동시에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이번에 등록을 예고한 ‘고성 동해안 감시초소(GP)’, ‘대한민국 임시정부 환국기념 23인 필묵’은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의견을 수렴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 등록될 예정이다.

사적 제550호로 지정된 ‘만해 한용운 심우장’은 승려이자 독립운동가였던 만해 한용운 선생이 1933년에 직접 건립해 거주한 곳이다. 독립운동 관련 활동과 애국지사들과의 교류 등에 대한 흔적이 남아있는 곳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큰 곳이다. 집의 방향을 당시 조선총독부가 있는 쪽을 피해 동북방향으로 잡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승려이자 독립운동가인 만해 한용운 선생이 건립하여 거주한 곳인 '만해 한용운 심우장'은 이번에 국가지적문화재 사적 제550호로 지정되었다. [사진=문화재청]
승려이자 독립운동가인 만해 한용운 선생이 건립하여 거주한 곳인 '만해 한용운 심우장'은 이번에 국가지적문화재 사적 제550호로 지정되었다. [사진=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745-1호인 ‘이봉창 의사 선서문’은 이봉창 의사가 일왕을 저격하고자 하는 결의를 기록한 국한문 혼용의 선서문으로 이봉창 의사의 대표적인 항일투쟁 유물이다. 이 선서문은 1931년 12월 13일에 김구 선생이 이봉창 의사를 안중근 의사의 아우인 안공근 선생 집으로 데려가서 선서식을 거행하고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745-2호로 지정된 ‘이봉창 의사 친필 편지, 봉투 및 의거자금 송금증서’는 이봉창 의사가 김구 선생에게 의거자금을 요청하는 편지와 이에 대한 회신으로 김구 선생이 의거자금을 송금한 증서이다. 1931년 12월 24일에 동경에 있는 이봉창 의사가 상해의 김구 선생에게 의거 자금을 요청한 것으로, 의거실행을 ‘물품이 팔린다’는 대체 용어로 약속하여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이봉창 의사 선서문과 친필 편지, 봉투는 그의 의거 전개 과정과 항일독립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또한, 이봉창 의사의 유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점에서도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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