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매천 황현의 기록, 문화재 지정 예고
독립운동가 매천 황현의 기록, 문화재 지정 예고
  • 김민석 기자
  • arisoo9909@naver.com
  • 승인 2019.03.11 15: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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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독립운동가 윤희순 '의병가사집', 서울 한양대학교 구 본관도 함께 지정 돼

문화재청은 ‘매천야록(梅泉野錄)’ 등 경술국치 직후 순절(殉節)한 매천 황현과 관련 있는 문화유산과 독립운동가 윤희순의 ‘의병가사집’ 등 항일독립 유산과 ‘서울 한양대학교 구 본관’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매천야록’은 대한제국의 역사가이자 시인이며, 독립운동가였던 매천 황현이 1864년 흥선대원군 집정부터 1910년 경술국치까지 약 47년의 역사 등을 기록한 친필 원본으로 한국 근대사 연구에 중대한 가치를 지닌 사료이다. 이 책에는 한말에 세상을 어지럽게 했던 위정자의 사적인 비리와 비행, 그리고 일제의 침략상을 낱낱이 드러나 있으며, 이에 대한 우리 민족의 끈질긴 저항 등이 담겨 있다.
 

이번에 문화재로 지정 예고된 '매천야록'. 대한제국의 역사가이자 시인이며, 독립운동가였던 매천 황현이 1864년 흥선대원군 집정부터 1910년 경술국치까지 약 47년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사진=문화재청]
이번에 문화재로 지정 예고된 '매천야록'. 대한제국의 역사가이자 시인이며, 독립운동가였던 매천 황현이 1864년 흥선대원군 집정부터 1910년 경술국치까지 약 47년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사진=문화재청]

아울러 이번에 문화재로 등록 예고된 ‘오하기문(梧下記聞)’은 황현이 저술한 친필 원본 7책으로, 자유로운 방식으로 당시의 역사를 보고 들은 대로 기록하였으며, ‘매천야록’의 저본으로 추정된다. 19세기 후반부터 1910년까지 역사적 사실과 의병항쟁 등을 비롯한 항일활동을 상세하게 전함으로써 한국 근대사 연구에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매천야록과 함께 문화재로 지정된 매천 황현의 '오하기문'. 19세기 후반부터 1910년까지 역사적 사실과 의병항쟁 등을 비롯한 항일활동을 상세하게 전함으로써 한국 근대사 연구에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사진=문화재청]
매천야록과 함께 문화재로 지정된 매천 황현의 '오하기문'. 19세기 후반부터 1910년까지 역사적 사실과 의병항쟁 등을 비롯한 항일활동을 상세하게 전함으로써 한국 근대사 연구에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사진=문화재청]

경술국치가 있었던 1910년 8월 29일, 다음 달인 9월에 황현이 지은 절명시(絶命詩) 4수가 담겨있는 첩인 ‘대월헌절필첩(待月軒絶筆帖)’도 문화재로 지정 예고되었다. 황현이 남긴 유고와 자료들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국가적 위기와 사회 상황, 지식인들의 동향을 살필 수 있는 희귀한 자료이다. 황현은 절명시를 남기고 사랑채였던 대월헌(待月軒)에서 순절하였고, 정부에서는 고인의 충절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매천 황현이 지은 절명시(絶命詩) 4수가 담겨있는 첩인 ‘대월헌절필첩(待月軒絶筆帖)’. [사진=문화재청]
매천 황현이 지은 절명시(絶命詩) 4수가 담겨있는 첩인 ‘대월헌절필첩(待月軒絶筆帖)’. [사진=문화재청]

여성 독립운동가인 윤희순이 의병들의 사기를 복 돋기 위해 지은 낱장의 친필 가사들을 절첩(折帖)본 형태로 이어붙인 순 한글 가사집인 ‘의병가사집’ 역시 문화재로 지정 예고되었다. 여성 독립운동가의 문집이라는 점에서 희소성이 크고, 근대 가사와 한글 표기 방식 등 국어학·국문학 연구 등의 중요 기록 자료로도 가치가 크다.
 

여성 독립운동가인 윤희순이 의병들의 사기를 복 돋기 위해 지은 낱장의 친필 가사들을 절첩(折帖)본 형태로 이어붙인 순 한글 가사집인 ‘의병가사집’. [사진=문화재청]
여성 독립운동가인 윤희순이 의병들의 사기를 복 돋기 위해 지은 낱장의 친필 가사들을 절첩(折帖)본 형태로 이어붙인 순 한글 가사집인 ‘의병가사집’. [사진=문화재청]

윤희순은 ‘안사람 의병가’, ‘의병군가’ 등을 작사·작곡하여 부르게 하고, 군자금을 모금하는 등 의병운동을 고취(鼓吹)하고 지원하였다. 또한, 대한독립단에서 활동하고 학교를 설립하여 민족교육을 하는 등 치열한 항일운동을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지난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서울 한양대학교 구 본관은 한국전쟁 직후, 한양대학교 캠퍼스를 조성하면서 1956년 대학 본부로 처음 건립되었다. 외관을 석재로 마감하고 정면 중앙부에 열주랑(列柱廊)을 세우는 등 신고전주의 양식의 디자인적인 요소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공학을 모태로 성장한 대학으로 경제 개발기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기술 인력을 배출한 한양대학교의 역사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번에 문화재로 지정된 한양대학교 구 본관. 한국전쟁 직후, 한양대학교 캠퍼스를 조성하면서 1956년 대학 본부로 처음 건립되었다. [사진=문화재청]
이번에 문화재로 지정된 한양대학교 구 본관. 한국전쟁 직후, 한양대학교 캠퍼스를 조성하면서 1956년 대학 본부로 처음 건립되었다. [사진=문화재청]

이번에 등록 예고한 문화재들은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의견을 수렴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 등록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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