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와 이육사 시인의 친필 원고, 문화재로 등록됐다
윤동주와 이육사 시인의 친필 원고, 문화재로 등록됐다
  • 김민석 기자
  • arisoo9909@naver.com
  • 승인 2018.05.08 17: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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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임시의원정 문서 포함 6건 문화재로 등록, 전남대 의대 구 본관 등 등록 예고

윤동주 시인과 이육사 시인의 친필원고가 문화재로 등록됐다.

문화재청(청장 김종진)은 ‘대한민국임시의정원 문서’ ‘윤동주 친필원고’‘이육사 친필원고’ 등 총 6건을 문화재로 등록하고,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구 본관’을 포함한 총 2건은 문화재로 등록 예고하였다.

이번에 등록된 문화재는 항일독립 문화유산인 ‘대한민국임시의정원 문서’, ‘조일관계사료집’, ‘윤동주 친필원고’, ‘이육사 친필원고, 편복(蝙蝠)’, ‘장효근 일기’ 5건과 근대 건축유산으로서 가치가 있는 ‘부산 우암동 소막마을 주택’ 1건을 포함하여 모두 6건이다.

등록문화재 제712호 윤동주 친필원고. [사진=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712호 윤동주 친필원고. [사진=문화재청]

‘윤동주 친필원고’(등록문화재 제712호)는 시인 윤동주(1917~1945)의 유일한 친필원고이다. 개작(改作) 등을 비롯하여 시 144편과 산문 4편이 포함된 ‘윤동주 친필원고’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와 같이 개별 원고를 하나로 묶은 시집 3책과 산문집 1책, 낱장 원고로 되어있다. 광복직후 북간도에서 서울로 와, 형의 자취와 행적을 찾아다니던 동생 윤일주에게 고인의 유고와 유품을 보관하던 친지들이 전해주었고, 시인의 여동생 윤혜원이 고향을 떠나며 가지고 온 것이 더해졌다. 이렇게 모인 유품을 60년가량 윤일주(1985년 작고) 가족이 보관하고 있다가 2013년 2월 연세대학교에 기증하였다.

등록문화제 제713호 이육사 친필원고, 편복. [사진=문화재청]
등록문화제 제713호 이육사 친필원고, 편복. [사진=문화재청]

‘이육사 친필원고, 편복(蝙蝠)’(등록문화재 제713호)은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이육사(본명 이원록, 1904 ~1944)가 남긴 시 ‘편복’의 친필원고로, 동굴에 매달려 살아가는 박쥐에 빗대어 대일항쟁기 우리 민족의 현실을 형상화하였다. 당시 ‘편복’은 일제의 사전 검열에 걸려 발표되지 못했으나, 해방 후인 1956년 ‘육사시집’에 처음 수록되어 일반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육사의 시 중에서 가장 중량 있고 훌륭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편복’의 친필원고는 유족이 소장해오다 경북 안동에 있는 이육사문학관에 기증했다.

등록문화재 제710호 대한민국임시의정원 문서. [사진=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710호 대한민국임시의정원 문서. [사진=문화재청]

‘대한민국임시의정원 문서’(등록문화재 제710호)는 3.1운동 직후인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 설립된 대한민국임시의정원이 1945년 8월 17일까지 개최한 정기회와 임시회의 회의록 등이 포함된 자료이다. 임시의정원 의장을 네 차례 역임한 홍진(1877~1946)이 광복 후 1945년 12월 1일 환국할 때 이 자료를 국내로 가지고 왔고, 홍진이 별세한 이후 유족이 보관하다 1967년 국회도서관에 기증하였다. 이 문서는 임시의정원이 생산한 기록물 중 현존하는 귀중한 원본 자료이다. 임시의정원뿐만 아니라 임시정부의 활동내역과 변천 과정 등을 알 수 있어 매우 중요한 사료이다.

등록문화재 제711호 조일관계사료집. [사진=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711호 조일관계사료집. [사진=문화재청]

‘조일관계사료집’(등록문화재 제711호)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편찬한 최초이자 유일한 역사서로, 조선총독부 등에서 발간하는 일제의 선전물이 식민통치의 실상을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국제연맹에 우리 민족의 독립을 요구하기 위해 만들었다. 100질을 만들었는데, 현재 국내에서 완질로 전하는 것은 독립기념관 소장본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효근 일기’(등록문화재 제714호)는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인 장효근(1867~1946)이 1916년부터 1945년 광복을 맞이할 때까지 거의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기록한 한문체의 일기이다. 장효근은 3.1운동이 추진되던 1919년 2월 27일 천도교에서 운영하던 인쇄소 보성사(普成社)에서 독립선언서 2만여 매를 인쇄하여 배포한 혐의로 5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유족들이 독립기념관에 기증한 그의 일기에는 일제강점기 사회상과 국내외 정세, 독립운동에 관한 사실을 기록하여, 역사적 가치가 높게 평가되고 있다.

등록문화재 제715호 ‘부산 우암동 소막마을 주택’(등록문화재 제715호)은 해방 이후 귀환 동포와 한국전쟁 중 부산으로 밀려드는 피란민의 거주 공간 확보를 위해 ‘소(牛) 막사(幕舍)’를 주거시설로 변용(變容)한 것으로 당시 피난민의 삶을 잘 보여준다.

한편, 이번에 등록 예고된 문화재는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구 본관’, ‘천주교 광주대교구청–본관, 헨리관, 식당동’ 총 2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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