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이 환갑還甲을 맞아 공직생활 41년을 마무리하며 은퇴준비를 하는 박금해 씨는 새로운 60세를 맞기 위한 활기가 넘친다. 지난 9월 말일 그는 국토교통부에서 재직하며 ‘여성 최초’라는 수많은 타이틀을 달고, 여성 최초 기관장까지 걸어온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자전적 에세이 ‘국토우먼 박금해, 길이 되다’를 출간했다.

지금은 매주 금요일 서울에서 KOP명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중이다. 이 과정을 마치면 공무원 강사협회에 등록하여 강사로 활약하게 된다. 2011년 국가공인 브레인트레이너 제1회 시험에 합격한 그는 평생 자신의 신념이었던 청렴과 홍익, 그리고 브레인트레이닝 분야의 콘텐츠를 개발해 명강사로 활동할 꿈에 가슴이 설렌다. 지난 7일 교육을 받기 위해 서울에 온 그를 만났다.

국토교통부에서 41년 4개월간 근무한 홍익공무원 박금해 전 영주국토관리사무소장은 국토부 첫 여성기관장으로 올해 연말 은퇴식을 하며 녹조근조훈장을 받는다. [사진=김경아 기자]
홍익공무원 박금해 전 영주국토관리사무소장은 국토교통부 첫 여성기관장으로 올해 연말 은퇴식을 하며 녹조근조훈장을 받는다. 그는 최근 출간한 자전적 에세이 '국토우먼 길이 되다'와 그에게 영향을 미친 책들에 관해 이야기를 했다. [사진=김경아 기자]

최근 자전적 에세이를 출간한 것을 축하드립니다. 출간 계기가 있었는지.

- 감사합니다. 은퇴가 하나의 매듭이기 때문에 잘 마무리하고 싶다는 마음에 2년 전부터 어떻게 하면 의미 있는 일을 할지, 도전해볼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했어요. 그러다 이승헌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총장께서 ‘나는 120살까지 살기로 했다’는 저서를 내고 출판기념회를 한다기에 참석했습니다. ‘아! 나를 위해 나온 책이구나.’라는 생각에 밤새 다 읽었어요. 그 중 4장 ‘전반기 인생을 성찰하고 후반기를 설계하라’가 가장 가슴에 와 닿았죠. 그 책 92~93페이지에 전반기를 적극적으로 성찰하기 위한 22개의 질문이 있었어요. 관사에서 매일 그 질문에 하나씩 하나씩 답을 하면서 에세이 출간을 생각하게 되었죠.

알아보니 지자체에서 65세 이상 어르신들이 자서전을 쓸 수 있도록 교육하는 프로그램도 있고 인터넷에 많은 정보가 있더군요. 주위에서는 “요즘 출판업계가 어려워 개인 자서전 같이 팔리지 않을 책을 찍지 않는다. 추억으로 생각해서 자비로 몇 권만 인쇄해라.”라는 조언을 들었어요. 저도 그러려고 했는데 출판사에서 읽어보고 대중에게 읽힐만한 출판가치가 있다고 하더군요. 덕분에 쑥스럽지만 출간하게 되었네요.

‘나는 120살까지 살기로 했다’라는 책이 특별히 와 닿았던 이유는.

- 저한테 120살은 상상할 수 없는 숫자였어요. ‘앞으로 60년을 더 산다고?’라는 게 큰 충격이었어요. 어머니가 49세에 돌아가셨기에 아무리 상상력을 발휘해 봐도 80세 이상은 그려지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이 책을 보니까 제가 빨리 죽을 것 같지 않은 거예요.(웃음) 지금처럼 건강관리를 하면 충분히 살 수 있겠구나 했죠. ‘오래 살면서 뭘 할 건지 꿈이 있어야 가치 있는 삶’이란 이야기를 들으면서 부모님께서 제게 들려주는 말 같았어요. “우리들이 오래 못 산 대신 네가 좀 오래 살면서 좋은 일을 해라.”하고 말씀하신 것 같았죠. 영주국토관리사무소장으로 근무하면서 관사 주위가 고요하고 명상하기 딱 좋은 환경이어서 22개 질문에 답할 수 있었죠.

국토교통부에서 9급 말단 서기보에서 첫 여성기관장인 영주국토관리사무소장까지 41년 4개월을 보냈다. 공직생활의 시작은 어땠는지.

- 사범대학 진학을 꿈꾸던 19살 때 집안형편이 어려워지고 아버지가 암으로 투병을 하셨어요. 그래서 9급 공무원 시험을 봐서 처음 광주국토관리사무소 서기보로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공무원 비율이 남녀 반반정도인데 당시는 공채 여성공무원이 5%미만이고, 특히 국토교통부는 2~3%정도였죠. 첫 근무지에서도 시험으로 들어온 여성공직자가 저 혼자였죠. 그리고 공직생활 첫해에 간병하던 어머니에 이어 아버지가 돌아가셨죠.

국토교통부 첫 여성 기관장이란 타이틀을 받은 박금해 씨가 영주국토관리소장으로 취임식을 하고, 산하 7개 시군 도로 및 터널, 교량 관리 등 업무에서 직원들과 함께 하는 모습. [사진=본인 제공]
국토교통부 첫 여성 기관장이란 타이틀을 받은 박금해 씨가 영주국토관리소장으로 취임식을 하고, 산하 7개 시군 도로 및 터널, 교량 관리 등 업무에서 직원들과 함께 하는 모습. [사진=본인 제공]

첫 기관장까지 여성공직자로서 입지전적이라고 들었습니다.

- 당시는 그랬죠. 최초의 여성보상계장,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첫 여성조사관, 첫 국토관리소장까지 항상 처음이란 타이틀을 받았습니다. 승진에서는 늘 후순위였지만, 꿈을 갖고 뛰었던 것 같습니다. 2017년 12월 5일 영주국토관리소장으로 발령이 나서 관내 7개 시‧군의 600km 도로와 교량, 터널 관리 등을 맡았죠. 100여 개의 현장관리를 하며 안전과 인명관리 등 책임이 막중한 자리이고, 공사발주 등 계약이 많아 유혹도 많은 곳이어서 ‘나부터 조직전체까지 청렴의 아이콘이 되자’고 마음먹었죠.

그동안 일선에서도 20년 근무하면서 개선하고 싶었던 것을 1년 동안 다 해보면서 마음껏 역량을 펼쳤던 것 같습니다. 직원들의 직종이 다양해서 조화로운 분위기를 이루기 어려운 편이었죠. 그래서 매월 생일을 챙기고, 겨울철 도로정비를 나갈 때 배웅하고, 제 사무실 한 켠에는 늘 따뜻한 차를 마실 수 있게 하여 누구나 찾아올 수 있도록 했어요. 처음 한 일은 호칭을 통한 존중이었습니다. 다 고향 선후배이고 늘 부대끼다보니, ‘00야! 예, 선배’라고들 했죠. “안전사고의 위험과 직면하기 때문에 서로 보호해줘야 한다. 예의는 지키되 고운 정을 쌓자”고 강조하며, 한명 한명에게 설득해서 바꿔나갔습니다.

국가공인 브레인트레이너인데 그 분야에 관심가진 계기는 무엇인지.

- 국학기공을 하면서 뇌교육 명상을 접하게 된 게 계기였죠.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 조사관으로 파견 나갔을 때, 그곳에서 국학기공 동호회원을 모집하더군요. 상임위원장께서 참여하고, 파견 조사관을 환영한다기에 갔죠. 몸 쓰는 게 익숙하지 않아 잘 따라가지 못했는데, 강사님이 늘 “실수 오케이!”라며, 남들과 다른 동작을 해도 “창조적으로 잘 하고 계신다.”고 격려해주셨죠. 그게 그렇게 좋았습니다. 그때 뇌교육 명상도 하고, 심성교육도 받았죠. 그때부터 스스로 가치를 찾고 뇌를 창조적이고 평화적으로 활용하는 데 관심을 두었죠. 첫 국가공인 시험이 있었을 때 도전해서 자격을 취득했어요.

뇌교육과 브레인트레이닝이 공직생활에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요.

-뇌교육은 제가 공직생활을 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어요. 무엇보다 긍정적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첫 기관장 도전도 그중 하나죠. 전에는 기관장 발령을 영예라고 선호했는데, 요즘은 무한책임을 지는 자리라 부담감 때문에 꺼리는 경우도 많죠. 그래도 저는 한 조직을 이끄는 경영자로서 그동안 일선에서 바꾸고 싶던 일들을 다 해보고 싶었습니다.

국토관리소장에 응모하려면 입사동기부터 비전서, 계획서 등 두 달 가까이 준비를 해야 하는데, 같이 승진한 17명 중 유일하게 혼자 도전했고 첫 도전에서는 낙방했죠. 다들 “4급 서기관이 늦게 되었으니, 네 차례까지 오지 않는다. 안정적으로 있다가 정년퇴직을 하면 된다. 누가 여성기관장을 시켜주겠나?”라고 했어요. 그래도 저는 이미 서류는 다 준비했으니 기회가 오면 또 도전하면 된다고 마음먹고, 기관장으로서 활약하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브레인스크린에 그렸습니다. 취임사를 써서 보여주니, 주위에서 ‘아이고, 무슨 취임사냐?’며 비웃었는데, 같은 국학기공 동아리 후배는 “도전하는 모습이 정말 멋지다.”고 응원을 보냈습니다.

고향인 광주로 가고 싶은 마음도 비우고 어디든지 갈 수 있다고 마음먹자, 영주국토관리사무소장으로 임명되었죠. 그리고 브레인스크린에 그린 것을 다 했어요. 청렴 공모전도 하고 여러 가지 개선도 하면서, 가천마을 명예이장으로도 위촉받고 감사패도 받았습니다. 최근 감사 인사를 다녔더니 간부들이 ‘여성 장관이어서 여성기관장을 발령낸 거지, 어디 잘 하겠나?’라고 우려했다더군요. 제가 가자마자 준비했던 취임사를 시작으로, 마음먹은 일들을 척척 추진해 성과를 내자 많이 놀랐다고 합니다. 이처럼 브레인트레이닝은 모든 정보를 제게 필요한 방향으로 전환하고 도전할 용기를 주었습니다.

공직생활을 마무리하는 감회가 남다르겠네요. 은퇴식에서 녹조근조훈장을 받는다고 들었습니다. 가장 보람있는 경험은 무엇인지

- 천직이라 여긴 공직을 마치며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한 느낌’입니다. 12월 31일 은퇴식에서 녹조근조훈장을 받습니다. 33년 이상 근무한 공직자로서 음주사고나 금품수수 등 비위가 없어야지요. 제가 징계나 경고 한번 없이 공직생활을 보내게 되어 감사했습니다. 보람이라고 하면 그동안 평창올림픽성화 봉송주자로 뛴 것도 꼽을 수 있고, 기관장 첫 임무로 2018 평창올림픽과 패럴림픽이 개최되는 동절기 직원들과 합심해서 제설작업을 해낸 일, 청렴문화 조성 등 많은데요.

그중에도 2003년 당시 직장협의회 부위원장으로 교육업무를 맡으면서, 국학원에서 국토교통부 청렴교육을 진행한 것이 가장 보람 있습니다. 그때 국토교통부가 청렴지수가 낮아 꼴찌를 해서 부패로 낙인찍혔죠. 4,500명 중 10명만 비리를 저질러도 전부 그렇게 보이니까요. 천안 국학원에서 교육기업인 유답(YOU 答)의 혁신교육과 국학원 민족혼 교육을 결합한 청렴교육을 처음 시도했습니다. 반응이 좋아 매 차수 200명 씩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국토교통부가 청렴도 우수기관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시계방향으로) 박금해 씨가 평창올림픽 성화봉송주자로 뛰는 모습, 벤자민인성영재학교 멘토로서 꿈토크콘서트에 참석한 모습, 직원들과 함께 국학기공 체조를 하는 모습, 국토교통부 국학기공동아리 '힐링명상동호회' 회원들과 대회에 출전한 모습. [사진=본인제공]
(시계방향으로) 박금해 씨가 평창올림픽 성화봉송주자로 뛰는 모습, 벤자민인성영재학교 멘토로서 꿈토크콘서트에 참석한 모습, 직원들과 함께 국학기공 체조를 하는 모습, 국토교통부 국학기공동아리 '힐링명상동호회' 회원들과 대회에 출전한 모습. [사진=본인제공]

직장 내에서 국학기공 동아리를 운영하셨다고.

- 2002년 국토교통부에 ‘힐링명상동호회’라고 동호회가 생겨 15년간 총무로 활약했고 지난해 총무직을 물려주었습니다. 인사혁신처 주관으로 중앙부처 국학기공대회를 개최하는데, 매년 출전해서 ‘홍익하는 공무원이 되자’고 뜻을 모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여러 활동을 했습니다.

우리나라 첫 자유학년제 대안학교인 벤자민인성영재학교의 멘토활동도 하셨죠?

- 뇌교육을 기반으로 청소년들이 꿈과 진로를 찾아 1년간 도전하며 경험을 쌓는 학교입니다. 저는 2014년 1기생부터 멘토를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처음 입학할 때는 대부분 움츠리고 자신없어하고 무기력한 모습이죠. 하지만 3~6개월이 지나 점차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프로젝트를 정해서 그 일을 완성해가는 모습을 보면 순수한 열정과 에너지가 넘치죠.

벤자민인성영재학교(이하 벤자민학교) 대전학습관 학생들을 세종청사로 초대하여 세종청사에서 근무하는 멘토들과 옥상정원에서 토론했던 적이 있었어요. 어찌나 눈이 초롱초롱 빛나던 지요. 한 학생이 숲 치유사가 되고 싶다고 해서 산림청 과장님을 소개해서 멘토로 결연을 맺어 주었죠. 그후 학생이 고용노동부가 지원하는 교육과정을 마치고, 화훼장식기능사 자격증을 땄다고 알려 왔을 때 정말 기뻤습니다.

박금해 브레인트레이너는
박금해 브레인트레이너는 "뇌교육과 브레인트레이닝이 공직생활에 큰 영향을 미쳤고, 긍정적으로 뇌를 활용할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다."고 했다. [사진=김경아 기자]

최근 출간된 ‘대한민국에 이런 학교가 있었어?’라는 책을 500권 기증하기로 했다고.

- 벤자민학교 학생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입니다. 11월 말 벤자민학교 멘토단이 송년회를 겸해 ‘대한민국에 이런 학교가 있었어?’란 책 출간을 기념하는 자리를 마련했는데, 그 자리에서 500권 기증을 선언했죠. 벤자민학교를 선택한 아이들이 저마다의 속도로 변화하며 꿈을 찾고 성장하는 모습에서 저는 우리 사회의 희망을 보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올해 8월에는 뉴질랜드 명상여행을 다녀오셨는데 어떤 체험을 하셨는지요?

- 공직에서 마지막 휴가로 뉴질랜드 명상여행을 떠났죠. 일반 여행과는 다르게 그동안 알던 내가 아니라 새로운 나, 생각과 감정 너머 깊이 숨어있던 진짜 나를 느끼고 성장할 수 있도록 촘촘하게 구성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꼭 가보고 싶던 특별한 장소인 북섬 케리케리 얼스빌리지 숲속에서 원시림에 둘러싸인 ‘영혼 완성의 120세 계단’도 갔습니다. 한 계단씩 올라가며 120세 시대의 새로운 삶을 설계하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어떤 인생계획을 하고 계신지요?

- 지금이 시작하기 가장 좋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홍익의 마음으로 지금까지 쌓은 경험과 지혜를 사회에 환원하려는 꿈을 찾았기 때문이죠. 어떤 곳에서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떤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살아가든지 이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합니다. 현재 명강사에 도전하고 있으니 좋은 콘텐츠를 세상과 공유하며 풍요롭게 할 수 있도록 탐색하고 성장해야죠.

김형석 교수님이 ‘백세를 살아보니’라는 책을 내셨는데, 저도 60년 후에 ‘120세를 살아보니’라고 책을 발간하는 것도 상상해봅니다. 120세까지 꿈을 이루며 건강하게 사는 장생모델이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노인이나 늙은이로 불리는 게 아니라, 어르신으로서 살고 싶습니다. 고령화 시대에 맞춰 사랑방 문화도 만들고 공원에서 어르신 기체조도 지도하고 싶고, 대한노인회장도 생각 중입니다. 대한어르신회로 명칭을 바꾸고 싶어서요.(웃음)

또 하나는 통일대사입니다.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에서 ‘홍익인간사상, 남북통일 그리고 평화’를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썼습니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급물살을 타고 있는 남북관계에서 홍익정신을 토대로 평화통일의 준비를 적극적으로 돕고 참여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