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는 왜 화성까지 가서 어머니 혜경궁 회갑연을 열었나
정조는 왜 화성까지 가서 어머니 혜경궁 회갑연을 열었나
  • 정유철 기자
  • npns@naver.com
  • 승인 2022-08-23 17: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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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KBS 의궤, 8일간의 축제 제작팀 "의궤, 8일간의 축제"(민음사 간)

조선 제22대 왕 정조의 을묘년(1795년) 화성 행차를 다룬 《의궤, 8일간의 축제》(KBS 의궤, 8일간의 축제 제작팀, 민음사, 2022)가 출간되었다. 의궤(儀軌)는 국가의 주요 행사를 글과 그림으로 정리한 도서이다.

이 책의 원작인 KBS 대기획 「의궤, 8일간의 축제」는 《원행을묘정리의궤》 속 화성 행차를 압도적 영상미와 충실한 고증으로 재현해 내 화제를 모았다. 2년의 제작 기간, 15억 원의 제작비, 3700여 명의 스태프. KBS가 제작 역량을 총동원해 만든 「의궤, 8일간의 축제」는 방영과 동시에 국내외의 찬사를 받았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의궤’, 그중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원행을묘정리의궤》를 제작팀은 최첨단 영상 기술과 다큐드라마 형식을 통해 생생하게 복원함으로써 과거의 메시지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큰 울림을 준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의궤, 8일간의 축제" 표지. [이미지 민음사]
"의궤, 8일간의 축제" 표지. [이미지 민음사]

휴스턴 국제영화제 대상,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대통령 표창 등 다수의 상을 받은 ‘명품 다큐’를 책으로 재구성한 《의궤, 8일간의 축제》는 방송 내용을 온전하게 옮겼을 뿐만 아니라 콘텐츠를 추가하고 최신 연구 성과까지 반영한 ‘결정판’이다.

1795년,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 회갑을 맞이하여 화성에서 잔치를 열기로 하고, 어머니를 모시고 한강을 건너 남쪽으로 향했다. 법도대로라면 왕의 거둥길에 왕실 여성은 참여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굳이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화성행궁(경기도 수원시)까지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간 까닭은 무엇일까?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와 어머니가 동갑이므로, 회갑 잔치를 생부가 묻힌 현륭원(경기도 화성시) 가까이에서 열어야 한다고 주장해 뜻을 관철했다.

6,000명에 달하는 수행원은 1킬로미터가 넘는 행렬을 이루었고, 그 안에 포함된 군사의 수는 도성 병력의 절반에 육박했다.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규모가 컸던 행차의 출발에서 귀환까지 총 8일간은 정조의 명으로 낱낱이 기록하여 책 《원행을묘정리의궤》에 담겼다. 《의궤, 8일간의 축제》는 《원행을묘정리의궤》를 바탕으로 정조의 여정을 준비 과정에서 후일담까지 시간순으로 한 편의 드라마처럼 펼쳐 낸다. 또한 조선의 기록 유산 중에서도 화려한 그림으로 이름난 의궤에 걸맞게 이 책의 본문에도 약 120컷의 컬러 이미지를 실어 보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의궤, 8일간의 축제》에서 다루는 《원행을묘정리의궤》는 ‘의궤 중의 의궤’로 불리는, 수많은 전문가가 최고로 꼽는 의궤다. 우선 다른 의궤들이 한두 권 분량인 데 비해, 여덟 권이나 된다. 또한 5~10부 정도 만들었던 관행과 달리 102부나 제작되어 널리 유포하였다. 완성도도 매우 높았는데, 기록은 혜경궁이 탄 가마의 제작법에서 기생의 복장과 막일꾼의 품삯까지 적을 정도로 상세했고, 그림은 원근법과 투시도법 같은 서양화 기법을 채택할 정도로 혁신적이었다.

《원행을묘정리의궤》의 그림들은 당대 최고의 화원들이 그렸다. 그중에서도 가장 압권인 작품은 「반차도」로, 화성으로 가는 수행원 1772명과 말 786필이 그려져 있다. 실제 행렬보다 압축되어 있다고는 하나, 그 엄청난 규모가 감탄을 자아낸다. 다만 당시 인쇄본의 특성상 채색이 되어 있지 않은데, 「의궤, 8일간의 축제」 제작팀은 전문가에게 의뢰해 본래에 가까운 색을 찾아 주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채색된 「반차도」는 그동안 영상으로만 볼 수 있었는데, 이번에 《의궤, 8일간의 축제》가 출간되면서 드디어 지면으로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 《의궤, 8일간의 축제》의 본문(40쪽~71쪽)에 총 32장으로 나누어 게재된 「반차도」를 보면 우의정 채제공과 병조판서 심환지 같은 조정 중신들도 눈에 띄지만, 훈련도감과 장용영의 군사들이 가장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림 속 군사들은 활기로 가득 차 실제로 움직일 것만 같다. 김홍도에 버금가는 풍속화가인 김득신 같은 화원들은 그림에 생동감을 불어넣었고, 「의궤, 8일간의 축제」 제작팀의 채색 복원은 현장감을 더했다.

정조의 을묘년 화성 행차는 정치적으로 중대한 의미를 지닌 사건이었다. 다만 그동안에는 학술적인 접근이 주가 되다 보니 그 중요성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18세기 말 조선의 복잡다단한 정국 속에서 정조가 꿈꾼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원행을묘정리의궤》를 통해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무엇일까? 220여 년 전으로부터 온,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이해하는 데 《의궤, 8일간의 축제》가 최고의 지침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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