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각 자료 전문가들이 봉모당 자료를 해부하다
장서각 자료 전문가들이 봉모당 자료를 해부하다
  • 정유철 기자
  • npns@naver.com
  • 승인 2021.02.25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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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원, ‘조선 왕조 존각 봉모당의 자료 연구’ 발간

봉모당(奉謨堂)은 조선 왕조의 어제와 어필 등을 봉안하여 소장하던 존각으로 정조 즉위년인 1776년에 설치되었다. 정조는 창덕궁 후원에 규장각을 건립하면서 그 부속 건물로 봉모당을 지어 역대 국왕의 유물들을 보관하게 하였다. 1780년대에 작성된 『봉모당봉안어서총목록』에 의하면 봉모당에 보관한 자료는 역대 국왕의 어제, 어필, 어화, 고명, 유고, 선원보, 선원세보, 국조보감 등 총 5,439종에 이른다.

'조선 왕조 존각 봉모당의 자료 연구' 앞표지. [사진제공=한국학중앙연구원]
'조선 왕조 존각 봉모당의 자료 연구' 앞표지. [사진제공=한국학중앙연구원]

 

광복 이후 봉모당 소장 자료의 대부분은 1981년 문화재관리국에서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재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으로 이관하였다. 2018년에 수행된 장서각 소장 봉모당 자료 공동 연구에는 서지학, 역사학, 한문학, 미술사학 분야에서 총 7인의 연구자가 참여하였다.

이렇게 봉모당 자료를 장서각 자료 전문가들이 해부한 책이 나왔다. 한국학중앙연구원(원장 안병우)이 발간한 『조선 왕조 존각 봉모당의 자료 연구』(옥영정 외 지음, )이다. 이 책은 조선 왕실이 국가 중요 사업으로 봉모당을 지어 중요 유물과 자료를 보관한 과정과 이 봉모당에 소장된 자료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결과를 담았다.

국조보감, 열성지장통기, 영조대 어제훈서류, 어제집 편찬, 무안왕묘비의 어제어필, 지석류 탁본의 제작, ‘봉모당인’ 압인본의 현황과 자료군 분석 등을 주제로 봉모당 자료의 의미와 가치를 서지학, 역사학, 한문학, 미술사학 등 다양한 학문 영역에서 연구하여 소개한다.

책은 ▲『국조보감』의 편찬 간행과 봉안(옥영정) ▲조선 후기 왕실 전기(傳記) 자료의 편찬-「열성지장통기」와 실록부록을 중심으로(강문식) ▲영조 어제훈서류의 현황과 가치(이근호) ▲조선시대 어제집의 편찬(이종묵) ▲1785년 정조가 세운 무안왕묘비(武安王廟碑)(이완우) ▲봉모당 소장 지석류(誌石類) 탁본의 현황과 제작(윤진영) ▲봉모당인 압인본(押印本) 고찰(이재준)로 구성하였다.

'조선 왕조 존각 봉모당의 자료 연구' 앞표지. [사진제공=한국학중앙연구원]
'조선 왕조 존각 봉모당의 자료 연구' 앞표지. [사진제공=한국학중앙연구원]

 

저자 옥영정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는 정조연간 『국조보감』의 편간 과정을 사료를 통해 분석하고 금속활자를 응용하여 목판본을 간행하는 과정을 파악하였다. 세부적으로 는 인면(印面), 판각, 지질 등을 살펴봄으로써 조선 왕실의 인쇄문화의 정점에 있는 『국조보감』의 간행 의의를 살펴보았다. 또한 『봉모당 봉장서목』에 수록된 『국조보감』과 현존하는 자료의 관련성을 실증적으로 검토하였다.

저자 강문식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학예연구관은 장서각과 규장각에 소장된 『열성지장통기(列聖誌狀通紀)』의 내용과 숙종 대부터 고종 대까지 연대기 자료에 실린 기사들을 중심으로 그 편찬 및 간행 과정을 정리하였다. 숙종 대 처음 간행되면서 선왕들의 자료 수집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고, 영조 대에는 영조 이전 왕과 왕비 자료가 대부분 정리됐으며 편찬 범례의 정비도 이뤄졌음을 밝혀냈다. 정조 대에는 새로 편찬된 지장(誌狀)만 새로 인쇄하여 기존 자료에 추록하는 방식이 채택되었고, 왕대별 지장을 별도로 간행하여 이후 『열성지장통기』의 편찬과 간행의 전범이 되었다. 또한 『성종실록』부터 왕실의 전기 자료가 실록에 부록되었고, 인조 대 이후 정형화되면서 선왕의 업적을 파악할 수 있는 교육 자료로 활용되었음을 밝혔다.

저자 이근호 충남대학교 국사학과 교수는 영조대 어제훈서의 현황과 가치를 정리하였다. 이 연구에서는 어제훈서가 편찬 주체인 영조의 국정 운영 철학이나 사상을 해명할 수 있는 자료로 제왕학 수립을 의도하였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훈서의 간행은 일차적으로 세자의 훈육이나 신민(臣民)에게 특정 사안에 대한 당위성을 알리는 한편, 1745년 『어제상훈』과 같은 훈서의 간행 과정에서 관원들과 논의를 거치거나 강론을 통해 새로운 제왕학 수립 과정과 통치의 지향점을 잘 보여준다. 특히 영조 대 이후 어제류 편찬 과정에서 편찬인이 명시되었고, 일부 어제훈서의 언해본 간행은 대민 소통의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저자 이종묵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역대 조선 국왕의 어제집 편찬을 조선 전기부터 후기까지 통시적으로 고찰하였다. 이 연구를 통해 세조대부터 어제집 편찬이 부분적으로 시행되었고, 인조대 태조부터 선조까지 폐위된 임금을 제외한 역대 국왕의 어제를 집성한 『열성어제』의 편찬이 본격화되었고, 숙종 이후 선왕의 어제집을 편찬하여 이를 기존의 『열성어제』와 합쳐 간행하는 것이 전례가 되었다. 『열성어제』는 1865년 마지막 간행되었고, 목록과 본집을 합하여 총 112권 58책으로 전한다. 『열성어제별편』은 영조대 숙종의 어제 별편을 따로 편찬한 관례에 따라 영조·정조·순조·익종의 별편이 편찬되었다. 또한 숙종의 『자신만고(紫宸漫稿)』를 시작으로 조선 국왕의 문집이 『열성어제』에 편입되는 전례가 계승되었음을 밝혔다.

조선 왕조 존각 봉모당의 자료 연구.  [이미지=K스피릿]
조선 왕조 존각 봉모당의 자료 연구. [이미지=K스피릿]

 

 

저자 이완우는 봉모당에 봉안되었던 역대 임금의 어제어필 비지(碑誌) 탑본(搨本) 가운데 1785년(정조 9) 11월 15일 도성 동남쪽의 관왕묘(關王廟)에 각각 세워진 숙종·영조와 경모궁(景慕宮, 사도세자)·정조 비문 2개에 대해 고찰하였다. 이 연구에서는 정조가 관왕묘비를 세우게 된 동기는 선대 임금들의 뜻을 계승하고 추모하기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이었음을 밝혔다. 특히 장헌세자[사도세자]가 쓴 〈무안왕 묘비명(武安王廟碑銘)〉이 정조에 의해 상당히 윤색되었을 개연성을 밝혀 주목된다.

저자 윤진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수석연구원은 국장 및 예장도감 관련 의궤 자료를 중심으로 장서각에 소장된 탁본 중 지석의 제작과 탁본 및 장황 방법을 의궤 기록과 상세하게 비교 고증하여 왕실 탁본 제작 과정을 파악하고 그 특징을 고찰하였다. 이 연구에서는 탁본의 제작 과정을 석재의 채취부터 탁본의 분아(分兒, 관리들에게 나누어주는 일)에 이르기까지 여덟 단계로 나누어 검토하였다. 즉 지석과 지석류 탁본의 제작에 들어간 물품, 장인과 관료들을 포함한 인력, 일정별 내역은 물론 석재의 채취, 마조(磨造, 모양내기), 서사(書寫, 비문 쓰기), 입각(入刻, 비문 세기기)까지 지석의 제작 과정을 의궤 기록과 상세히 비교 고찰한 점에서 의의가 있다.

조선 왕조 존각 봉모당의 자료 연구, '봉모당봉안어서총목' 표지. [사진제공=한국학중앙연구원]
조선 왕조 존각 봉모당의 자료 연구, '봉모당봉안어서총목' 표지. [사진제공=한국학중앙연구원]

 

저자 이재준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사서원은 장서각 소장 전적 중 ‘봉모당인(奉謨堂印)’이 찍힌 문헌을 대상으로 그 실체적 분석에 중점을 두었다. 연구에 의하면 ‘奉謨堂印’이 찍힌 225종 중에는 연잉군과 정조 개인의 수택본을 비롯하여 시강원·익위사· 이문원·춘추관 등이 소장하던 문헌들이 봉모당 장서에 편입된 것으로 파악되었다. 주제별로는 실록·의궤·책문·만장·갱진록 등의 국가 왕실 문헌이 봉모당 장서를 대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실록은 『영종대왕실록부록』 등 6종이 확인되었으며, 사료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9년 7월에 국보(제151-5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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