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근정전에는 상상의 동물 청룡·백호·주작·현무기 동서남북을 지킨다. 또한 시간과 방향을 나타내고 지키는 12지신 가운데 쥐·소·호랑이·토끼·뱀·말·양·원숭이·닭 등을 볼 수 있다. 그런데 12지 동물 가운데, 개와 돼지는 보이지 않는다. 근정전 12지 동물 가운데 이 두 동물만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의 동물상징' 표지. [사진제공=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의 동물상징' 표지. [사진제공=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원장 안병우)은 우리 한국인에게 친숙한 역사 속의 동물과 그 상징을 연구한 『한국의 동물상징』을 발간했다.

저자는 이강한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인문학부 교수, 우정연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글로벌한국학부 부교수, 이상해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국민대학교 석좌교수, 이창일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 김성혜 가톨릭관동대학교 교양과 교수.

한국의 역사와 문화 속에는 여러 동물들이 다양한 이미지로 나타난다. 신화와 전설에도 동물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그리고 각각의 동물들은 다양한 것들을 상징한다. 이러한 것들은 십이간지, 건축 조형, 도자기, 의복, 가구의 문양 등에 나타나 지금까지 우리의 문화와 정신 속에 흐르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책은 동물과 거기에 포함된 상징을 중심으로 고대부터 현대까지 전 시대를 다루고 있다.

한국의 동물상징을 살펴보는 것은 실은 한국인과 문명의 내면을 발견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한국의 긴 역사와 문화 속에서 동물이 어떻게 표현되고 묘사돼왔는지를 살폈다. 역사, 철학, 고고학, 건축 등 각 분야의 학자들이 고대, 고려·조선, 근·현대의 동물 문양과 동물 조형 사례를 수집·분석함으로써 역사와 문화 속에 면면히 존재했던 다채로운 동물 인식, 그것이 보여주는 각 동물들의 상징하는 바를 조명했다. 한국사 전 기간을 관통하는 보편적 추세의 진단, 직종과 처지와 지향의 차이를 넘어 한국인들이 공통적으로 보였던 동물인식 및 상징, 사고방식과 정서를 추적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우리 한국인에게 친숙한 역사 속의 동물과 그 상징을 연구한 "한국의 동물상징"을 발간했다. [사진제공=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우리 한국인에게 친숙한 역사 속의 동물과 그 상징을 연구한 "한국의 동물상징"을 발간했다. [사진제공=한국학중앙연구원]

 

이 책은 총론에 이어 ▲신라의 동물상징(우정연)▲청자와 백자의 동물묘사(이강한)▲전통사찰의 동물문양(이상해)▲음양오행 사상과 한국의 동물상징(이창일)▲한국 근대 왕조 건축물의 동물상징(김성혜)으로 구성하였다.

고대사회의 동물상징

먼저 ‘토우’라는 물질자료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라는 문헌자료에 나타나는 동물을 비교하여 한국 고대사회 중에서도 특히 신라사회에서 동물이 지녔던 의미를 고찰했다. 이를 통해 신라인이 장제용 또는 의례용으로 제작한 토우와 고려의 유학자 김부식과 승려 일연이 기록으로 남긴 신라인들의 삶에 등장하는 여러 동물의 의미를 토우의 제작 배경 그리고 사서의 편찬 배경을 고려하여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삼국시대는 현대의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한국문화’의 근간이 상당 부분 형성된 시기로서, 그처럼 친숙한 것이 친숙한 것으로 자리 잡게 되는 과정 그리고 때로는 그 이전의 다소 낯선 모습까지도 볼 수 있는 시대이다. 기존 신라토우의 조형적 특성이나 사서에 등장하는 동물 상징 연구에서 더 나아가 그 양자를 체계적으로 비교·분석하여 신라의 동물상징을 전체적·입체적으로 조명했다.

'한국의 동물상징' 표지. [이미지=k스피릿]
'한국의 동물상징' 표지. [이미지=k스피릿]

 

 

청자와 백자의 동물묘사

한국 중세 자기의 양 축인 고려청자와 조선백자에 관한 연구는 고고학계와 미술사학계에서 이미 활발히 진행돼왔으나, 문헌사적 접근은 아직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미술사’와 ‘문헌사’를 결합하는 시도가 시급하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한국 자기의 동물문양 및 그 표현 방식을 중국자기 및 한반도 내 여타 유물인 직물과 대조한 후, 중세문헌의 동물 기록과 대조하여 사상적·철학적·정서적 의미를 가늠했다. 먼저 고려청자와 『고려사』 「오행지」, 송·원대 청백자 및 고려 불복장(佛腹藏) 유물을 비교했고, 그다음 조선백자와 조선왕조실록, 원·명·청대 청화백자(靑畫白磁) 및 조선의 양반가문 직물을 비교했다. 공적(公的) 기록의 인식과 민간 예술가들의 시각, 한국과 중국 자기 제작자들 각각의 선택, 한반도 내 자기 및 직물 생산자들 나름의 기호 등 세 영역에서 상호 부응하거나 엇갈리는 양상들을 검토함으로써, 도자기를 통해 한반도 중세사회에서 특정 동물이 지녔던 의미와 상징성을 헤아렸다.

한국의 동물상징. [이미지=k스피릿]
한국의 동물상징. [이미지=k스피릿]

 

 

음양오행 사상과 한국의 동물상징

십이지 사상의 근거가 되는 음양오행의 철학적 연원을 제시한 후 십이지의 구현태를 살펴보았다. 또한 특정 의례나 의전 분야에서의 십이지와 더불어 여러 상서로운 동물의 형상화 양상도 함께 검토했다. 십이지의 동물은 일반적인 동물이라기보다 이미 신성한 상징적 지위를 부여받은 신수(神獸)나 서수(瑞獸)로 불리는 ‘상서로운 동물’이다. 따라서 음양오행의 기원, 특히 천간과 지지의 기원을 살피고 시간을 나타냈던 열두 띠 동물의 표상이 이와 결합되는 과정을 짚어보았다. 그리고 시대마다 십이지의 동물들이 우리 전통 문화에서 어떤 모습으로 출현했는지 살폈다.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십이지의 동물들은 당시의 사상의 영향을 받으면서 개성 있는 모습으로 변화했고, 이러한 변화 양식은 현재에도 여러 방면으로 현대인의 심성과 조화를 이루어가는 일정한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그 외에도 동물상징이 시각적으로 잘 드러나며, 현재 대부분의 유물을 확인할 수 있는 의장기의 동물문양에 주목했다. 여러 고전을 통해 이들 문양에 숨겨져 있는 맥락을 추적하며 풀이했고, 도저히 해독이 불가한 상징들은 음양오행과 밀접한 역학적 사유를 통해서 과감한 해석을 시도했다.

저자인 이강한 교수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 속에 나타난 여러 동물에 대한 다양한 묘사방식, 그 이면에 숨은 다채로운 동물인식, 그것이 보여주는 동물들이 상징하는 바를 있는 그대로 제시하였다”고 말하고, “이러한 동물의 상징과 다변성을 독자들이 즐겼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