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부"라고 왜곡한 존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법대 교수의 논문이 큰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학중앙연구원(원장 안병우, 이하 한중연)이 “서구 주요 언론 매체에서 바라본 전시 일본군 위안부의 여성인권 문제”를 분석했다.

3월 31일 한국학중앙연구원은 한국학 분야의 대표 영문학술지 『Korea Journal』을 통해, 일제강점기 위안부의 여성 인권 문제를 미국 및 주요 유럽 국가의 언론에서 어떻게 인식하고 이해하고 있는지 분석하는 “서구 주요 언론 매체에서 바라본 전시 일본군 위안부의 여성인권 문제” 특집호를 발간했다.

『Korea Journal』의 이번 특집호에서는 미국, 프랑스, 독일, 영국 언론에서 각각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분석하고 이들의 관점에서 초국적 역사 인식의 가능성을 찾고자 했다.

2021년 봄호 특집 표지 [이미지 제공=한국학중앙연구원]
2021년 봄호 특집 표지 [이미지 제공=한국학중앙연구원]

 

한·중·일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에서는 이미 다양한 사료를 바탕으로 일본군 위안부 관련 연구가 광범위하게 진행되어 왔다. 하지만 민족주의적 서사의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였는데, 이는 동아시아 각국이 직접적인 이해관계자로서 사실 분석 단계에서부터 상호 비판적인 경향을 드러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위안부 문제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시각이 될 수 있다.

먼저 충북대학교 이찬행 교수의 “Can the Comfort Women Speak?: Mainstream US Media Representations of the Japanese Military Sex Slaves”에서는 탈냉전을 배경으로 본격적으로 대두하기 시작한 미국 언론매체의 위안부 표상이 인권담론, 민족주의적 갈등담론, 안보담론에 의해 결정되었다고 조명하였다. 특히 미국 언론매체의 위안부 담론은 위안부에 관한 이야기를 담기보다는 미국 언론매체만의 담론 안에서 주체-위치를 지니지 못한 채 결국 스스로에 대해 말할 수 없었던 서발턴(Subaltern)으로 남고 말았다고 지적한다.

서발턴(Subaltern)은 탈식민주의 이론의 개념어로 하층민, 하위주체, 종속계급 등으로 번역된다. 피지배자나 민중처럼 피억압자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담론의 측면을 보다 강조하며 계급뿐만 아니라 젠더나 인종 등 다양한 억압의 축을 보다 진지하게 고려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경희대학교 민유기 교수는 논문 “The Butterfly Effect on Human Rights and Democracy: Perceptions of the Comfort Women Issue in French Journalism”에서는 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일본 정부를 비판하는 프랑스 언론을 다룬다. 프랑스 언론은 일본 정치의 우경화를 우려하며, 그 책임이 냉전을 구실로 일본의 전쟁 범죄를 제대로 처리 못한 미국에 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부정적 역사를 감추거나 미화하는 것은 반민주적이며, 과거에 대한 기억상실에서 벗어나는 것에 일본 민주주의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전망하는데, 민유기 교수는 프랑스 언론의 이런 담론이 위안부 문제를 인권의 측면과 동시에 민주주의 발전의 측면에서 사유하도록 해준다고 분석한다.

영문학술지 'Korea Journal' 2021년 봄 특집호.  [이미지=k스피릿]
영문학술지 'Korea Journal' 2021년 봄 특집호. [이미지=k스피릿]

 

 

춘천교육대학교의 정용숙 교수는 논문 “Limits of Reflective Memory Culture: The German Media’s Understanding of the Japanese Military Comfort Women Issue, 1990–2019”에서 독일의 저널리스트들을 분석한다. 그들은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위해 역사 화해가 필요하며, 여기에 ‘독일 모델’이 참고가 된다고 믿는다. 독일이 과거의 잘못에 대한 책임 인정과 사과를 통해 유럽통합에 기여한 것처럼, 일본도 역사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함으로써 동아시아 평화에 기여하고 경제적 실익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독일 언론의 시각은 대체로 자유주의적이며, 전후 독일 사회가 확립해 온 성찰적 기억 문화에 충실하다.

그러나 정용숙 교수는 그들이 전시 성폭력으로서의 ‘위안부’ 문제를 제3세계 비교사례들과만 연결할 뿐, 나치 강제성매매 등 자신의 과거와는 적극적으로 연결시키려고 하지 않는다고 분석한다.

경희대 염운옥 연구교수는 논문 “Going Selective? British Media’s Coverage of the Comfort Women”에서 1990년대부터 2019년까지 영국 주요 언론의 ‘위안부’ 보도를 분석한다. 염운옥 교수는 영국 언론의 태도는 다방향적인 동시에 선택적이었으며, 인권의 수호자와 냉정한 방관자 사이를 오갔다고 말한다. 위안부 보도는 1990년대 초 유고 내전 시기 성폭력, 그리고 태평양 전쟁기 영국군 포로들이 일본을 상대로 한 배상 요구와 관련해 나오기 시작했다. 2000년대 이후 영국 언론은 일본의 우경화와 고조되는 양국의 민족주의를 비판하고 보편적 여성 인권의 차원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했지만, 이들 역시 영국 식민주의 과거에 대한 반성과 연결 짓지는 않는 태도를 보인다고 지적한다.

1990년대 초 국내에서 위안부 문제가 등장한 이후 240명의 피해자가 스스로 목소리를 내었지만 2021년 현재 15명만이 생존하고 있으며,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 금전적 배상 및 책임자 처벌 등은 곧 불가능해진다. 하지만 진상 규명을 통한 명확한 교과서 기술과 희생자 기념비 및 역사박물관 건립 등, 피해자가 생존하지 않더라도 인권과 공공의 역사를 위한 시민운동 차원의 논의와 관련 연구는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도 전시에서 자행된 여성 인권 탄압의 대표 사례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번 특집은 전시에 희생된 여성 피해자들에 대한 역사 연구에 도움이 되고자 기획 되었으며, 이는 지금도 인권과 민주주의의 증진을 모색하는 모든 이들에게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Korea Journal』은 1961년 창간된 한국학 분야 국내 최초의 영문 학술지로 연 4회 한국학 전 분야의 최신 연구성과를 반영한 논문을 게재하고 있으며, 예술과 인문학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인용 색인 데이터베이스인 A&HCI(Arts and Humanities Citation Index)에 지난 2001년부터 등재되어 전 세계적으로 원문이 배포되고 있다.

특집호(2021년 봄호)는 3월 31일부터 한중연 공식 누리집(www.aks.ac.kr)에 공식 게재되었으며, 출판·자료→ Korea Journal로 접속하면 원문을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