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0일은 도산 안창호(島山 安昌浩) 선생 서거 84주기이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일제의 침략과 지배 속에 고통받는 민족과 나라를 되찾고자 노력한 독립운동의 큰 지도자였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는 안창호 선생을 기리는 도산공원과 '도산 안창호 기념관'이 있다. 

[사진=김경아 기자]
도산 안창호 기념관 [사진=김경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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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안창호 기념관 입구 [사진=김경아 기자]

도산 안창호 선생은 1878년 11월 9일에 평안남도 강서에서 출생했다. 그는 일평생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국계몽운동을 펼친 교육자였으나, 해방을 보지 못한 채 1938년 3월 10일 60세의 나이로 서거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의회는 "안창호 선생은 국내는 물론 해외의 모든 한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애국지사 중 한 명으로 존경을 받는 인물"이라며, 2018년에 11월 9일을 '도산 안창호의 날'로 제정했다. 11월 9일은 안창호 선생의 탄생일이다. 

도산 안창호 기념관 [사진=김경아 기자]
도산 안창호 기념관 [사진=김경아 기자]
흥사단 약법기초안 (1913) [사진=김경아 기자]
흥사단 약법기초안 (1913) [사진=김경아 기자]
대한민국임시정부 위임장(1925. 3. 10). 대한인국민회에 미주와 멕시코의 재정 징수를 위임한다는 내용이다 [사진=김경아 기자]
대한민국임시정부 위임장(1925. 3. 10). 대한인국민회에 미주와 멕시코의 재정 징수를 위임한다는 내용이다 [사진=김경아 기자]

도산 선생은 1902년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가 한인친목회를 지도하고 공립협회를 조직했다. 1907년에는 비밀결사인 신민회를 조직하여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했으며, 대성학교를 설립해 인재를 양성했다. 1910년 일제의 강제 병합을 앞두고 망명하여 러시아령 연해주와 북만주 일대를 순회하며 재외 한인사회의 민족운동을 지도했다.

미국으로 돌아간 선생은 1913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흥사단을 창설하여 민족운동을 담당할 인재를 양성한다. 또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비와 조직을 위해 중국 상해에 도착하여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서리에 취임해 임시정부의 초석을 다졌다.

안창호 선생의 수첩 [사진=김경아 기자]
안창호 선생의 수첩 [사진=김경아 기자]
안창호 선생의 일기. 대한민국임시정부 노동국총판으로 활동하던 시기 중에서 8개월 분량의 일기다 [사진=김경아 기자]
안창호 선생의 일기. 대한민국임시정부 노동국총판으로 활동하던 시기 중에서 8개월 분량의 일기다 [사진=김경아 기자]

나 하나를 건전한 인격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 민족을 건전하게 하는 유일한 길이다. 
- 도산 안창호 선생 - 

안창호 선생과 부인 이혜련 여사의 합장묘 [사진=김경아 기자]
도산 안창호 선생과 부인 이혜련 여사의 합장묘 [사진=김경아 기자]
도산 안창호 선생의 동상 [사진=김경아 기자]
도산 안창호 선생의 동상 [사진=김경아 기자]

도산공원의 정확한 명칭은 '도산근린공원'이며 우리나라의 자주독립을 위해 평생을 살다간 안창호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조성되었다. '도산 안창호 기념관'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1월 1일과 설날, 추석은 휴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