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버스를 타고 양재역 정류장에서 경기도 과천으로 넘어가면 조용한 동네 한 켠에 '추사박물관'이 있다. 불의에 타협하지 않으며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추사체'와 '세한도'를 탄생시킨 추사 김정희 선생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추사와 과천은 인연이 깊다. 추사는 북청 유배에서 풀려나 별세할 때까지 4년간 말년을 이곳 과지초당(瓜地草堂)에 머물며 학문과 예술의 절정기를 보냈다. 과지초당은 그의 생부 유당 김노경이 한성판윤 시절 청계산 북쪽 옥녀봉 아래에 마련한 곳이다. 과천시는 당시 유적지를 조사해 부지를 매입하고 과지초당을 복원하며 박물관을 건립했다.

[사진=김경아 기자]
2013년 6월 개관한 경기도 과천시 추사박물관 [사진=김경아 기자]

추사박물관은 2층, 1층, 지하 1층의 순서로 관람하는 것이 좋다. 2층은 추사의 삶을 시기별로 나누어 그의 생애를 살펴 볼 수 있다. 1층은 추사의 학문과 예술을 주제별로 구분하고, 교류한 인물들과의 사연들을 전시한다. 지하 1층은 추사 연구자였던 후지츠카 부자의 추사 관련 유물의 기증을 기념하는 후지츠카 기증실이 있다. 야외에는 복원된 과지초당(瓜地草堂)과 독단지를 묻어서 우물을 만들었던 독우물이 있다. 

추사가 서자 김상우를 위해 또박또박한 해서로 쓴 학습교재 '동몽선습' [사진=김경아 기자]
추사가 서자 김상우를 위해 또박또박한 해서로 쓴 학습교재 '동몽선습' [사진=김경아 기자]
[사진=김경아 기자]
추사가 예안이씨 부인에게 보낸 한글 편지 [사진=김경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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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살에 쓴 추사 최후의 예서 대련작품, '촌노의 가장 큰 즐거움' [사진=김경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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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가 세상을 뜨기 3일 전에 쓴 서울 강남 봉은사의 '판전(板展)' 현판 [사진=김경아 기자]
[사진=김경아 기자]
추사는 금석고증학의 대가다. 대표 업적은 북한산의 무학대사의 순수비로 알려져 있던 것을 '진흥왕순수비'로 바로 잡은 것이다 [사진=김경아 기자]
추사의 종가에 대대로 내려오는 유물인 '추사인장(秋史印章)'  [사진=김경아 기자]
추사의 종가에 대대로 내려오는 유물인 '추사인장(秋史印章)'  [사진=김경아 기자]
[사진=후지츠카 영인본]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 원본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으며 사진은 후지츠카 영인본이다 [사진제공=추사박물관]

국보 제180호인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는 제주도 유배 생활 중 그린 그림이다. 유배 생활 중인 자신을 잊지 않고, 청나라 연경에서 귀한 책들을 구해서 보내준 제자 이상적에게 답례의 마음으로 그려주었다. 논어에 나오는 '세한'은 '추운 겨울이 지난 뒤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는 뜻이다. '세한도'는 조선 후기의 선비정신을 담은 문인화의 정수이자, 값을 매길 수 없는 귀한 보물이라는 의미로 ‘무가지보(無價之寶)’라 불린다.

'황조경세문편(皇朝經世文編)'. 역관 이상적이 북경에서 구해 제주도에서 유배 생활 중인 추사에게 보내준 책 [사진=김경아 기자]
'황조경세문편(皇朝經世文編)'. 역관 이상적이 북경에서 구해 제주도 유배 중인 추사에게 보내준 책 [사진=김경아 기자]
추사 김정희 선생이 서거하기 전, 약 4년 간 동안 머물며 학문과 예술에 몰두한 '과지초당(瓜地草堂)' [사진=김경아 기자]
추사가 별세 전까지 머물며 학문과 예술에 몰두했던 곳, '과지초당(瓜地草堂)' [사진=김경아 기자]
예산 추사고택 뒤편의 사당에 봉안된 '추사영정(秋史影幀)'. 1857년 이한철 그림 [사진=김경아 기자]
예산 추사고택 뒤편 사당에 봉안된 '추사영정(秋史影幀)'. 1857년 이한철 그림 [사진=김경아 기자]
박물관 외벽에 그려져 있는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 세한도와 더불어 추사의 대표작이다 [사진=김경아 기자]
박물관 외벽에 그려져 있는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 세한도와 더불어 추사의 대표작 [사진=김경아 기자]

추사박물관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유료로 관람할 수 있다.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 설날, 추석(연휴 포함)은 휴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