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정신과 국혼 부활 : 대한이 살았다
3·1정신과 국혼 부활 : 대한이 살았다
  • 민성욱 박사
  • k-spiriit@naver.com
  • 승인 2022-03-07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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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민성욱 박사

“대한이 살았다 대한이 살았다

산천이 동하고 바다가 끓는다

에헤이 데헤이 에헤이 데헤이

대한이 살았다 대한이 살았다”

1919년 3·1운동으로 서대문형무소 여옥사 8호실에 함께 수감된 7명의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옥중에서도 만세 운동을 하며 조국 독립의 염원을 담아 지어 부른 노래, ‘대한이 살았다’의 가사 중 일부이다. 작곡가 정재일은 참혹한 절망 속에서도 내일의 조국 독립을 염원하며 노래했던 그들을 대한민국 모두가 잊지 않도록, 또 모두 기억할 수 있도록 남겨진 노랫말에 선율을 입혔다고 한다.

서울 서대문구에 건립된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개관과 함께 3·1절 기념식이 개최되었다. 이어진 ‘대한이 살았다’ 3·1절 기념 공연에서 일명 ‘8호 감방의 노래’인 ‘대한이 살아있다’가 방송 전파를 타면서 ‘대한의 혼’을 소리에 담아 대한민국 국민에게 전했다.

독립선언서에 명시한 독립운동 목적

3·1독립선언서에서 선열들은, 독립운동의 목적이 "풍부한 독창성을 발휘하여 빛나는 민족문화를 맺고", "세계 문화에 이바지할 기회"를 갖는 데 있다고 밝혔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 백범 김구 선생도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라고 하셨다. 까마득한 꿈처럼 느껴졌던 일이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해내고 있다. 우리 문화예술은 전통과 현대 문화를 한국이라는 그릇에 함께 담아 새롭게 변화시켰다. 한 세기 전, 선열들이 바랐던 꿈을 이루어 내고 세계를 감동시키고 있는 것이다. K-POP으로 대표되는 한류가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BTS 열풍을 두고 〈포브스〉는 "새로운 표준"이라고 했다. 영화 〈기생충〉은 칸과 아카데미를 석권했다. 게임, 웹툰, 애니메이션이 세계의 사랑을 받고 〈오징어 게임〉 등 우리 드라마가 세계인들로부터 각광받고 있고, 서양 클래식 음악과 발레 같은 분야에서도 한국인들의 재능이 세계의 격찬을 받고 있다. 이것은 각 분야 문화예술인들의 열정과 혼이 어우러진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평범함이 이룬 위대한 대한민국

우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약한 분들을 임정 요인이라 불러왔다. 임정 요인이라는 단어에는 우리 후손들의 존경이 담겨 있다. 지금까지 우리 국민 모두는 경제발전과 민주주의의 주역으로 활약했고, 각자의 자리에서 소중한 사람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선도국가라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향해 출발했다. 그 길에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임정 요인과 같다. 모두가 선구자이며, 모두가 중요한 사명을 갖고 있다. 이제 누구도 대한민국을 흔들 수 없다. 이제 누구도 국민주권을 빼앗을 수 없다. 이제 누구도 한 사람의 삶을 소홀히 대할 수 없다.

이곳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은 평범함이 이룬 위대한 대한민국을 기억할 것이며, 국민에게 언제나 용기와 희망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독립의 열기로 뜨겁게 타올랐던 1919년의 봄, 고난과 영광의 길을 당당히 걸어가 마침내 우리 모두의 위대한 역사가 된 선열들께 깊은 존경의 마음을 바친다.

7명 대한의 소리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의 기초되었다

서대문형무소 8호 감방에 유관순 열사와 같이 수감됐던 심영식(세례명 심명철) 애국지사가 있었다. 시각장애인 전도사였던 심영식 애국지사님을 포함한 8호 감방의 일곱 여성 독립투사들이 서로 위로하며 불렀던 '8호 감방의 노래'가 있었는데, 그 자손인 문수일 님이 어릴 때 어머니가 부르던 노래의 가사를 받아 적어 둔 것이 노래가사 바탕이 된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권애라, 어윤희, 신관빈, 심명철(이상 개성 출신), 임명애(파주), 김향화(수원), 유관순(천안), 이분들이 서대문형무소 여옥사 8호 감방 구성원이다.

다시 돌아온 3·1절, 올해로 103번째 맞이하였다. 민족 대표 33인이 있었지만 정작 파고다 공원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주인공은 평범한 청년이었다. 그리고 그때 모여든 이들은 평범한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이셨다. 그렇게 시작한 독립운동은 전국적으로 이어졌고 심지어 해외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그 결과,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될 수 있었다.

3·1정신과 철학

민족의 저항정신과 빛나는 얼로 나라의 독립을 염원하며 ‘대한독립 만세’를 부르짖었던 날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 날을 기억해야만 하는 이유와 중국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응해야만 하는 이유는 같을 것이다. 삼일정신은 우리 민족 고유의 사상인 천지인 사상에서 비롯되었으며, 한민족의 삼대경전인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에 수록된 고유한 사유체계이기도 하다. 결국 모두 하나라는 홍익인간의 정신을 계승한 것이 3·1정신이자 철학이다.

억압과 탄압 속에서 피어난 독립정신

일본의 침략기도와 외세의 간섭에 맞서 추진된 국권회복운동과 개혁정책은 일본의 무력적인 강압에 의해 무산되어 결국 경술국치(1910. 8. 29.)를 가져왔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것을 당연시하거나 변화된 환경에 순응하며 살지 않았다. 그 때문에 일본은 한반도를 강제 병합시킨 후 총칼에 의한 무단통치를 실시해 한국인들의 항일투쟁을 원칙적으로 봉쇄하였다. 일본의 무단통치는 한국인들의 행동과 활동을 억압하고 경제 수탈과 착취를 위한 기반을 구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식민 상황에 억눌려 지낸 국내의 한국인들은 구한말부터 지속해 온 항일민족의식마저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항일비밀결사 단체들이 생겨났고 대일항쟁 활동을 이어갔다.

국내의 가혹한 무단통치와는 달리 비교적 자유롭게 활동한 1910년대 국외의 독립운동은 독립군기지 건설과 독립군 양성을 통해 독립전쟁을 위한 실력을 쌓았다. 이처럼 1910년 국내외에서 용광로처럼 뜨겁게 끓고 있던 강인한 독립정신은 결국 거족적인 3·1항쟁으로 분출되었다.

일제의 민족말살정책

일제는 강화도 조약을 체결한 그 순간부터 우리 민족을 가혹하게 약탈하고 탄압했다. 우리 민족은 결코 일제의 식민 통치를 용인한 적이 없었고, 따라서 일제가 스스로 물러가지 않는다면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서 싸울 수밖에 없었다. 우리 민족의 무장투쟁은 일제의 한민족 말살 정책에 대한 결연한 맞대응이기도 했다. 일제는 우리 민족 자체를 역사 속에서 말살하려고 했고, 1937년 중일 전쟁을 도발한 뒤 전시체제에 돌입, 황국 신민화를 강요했다. 일선동조론과 내선일체를 날조하고, 신사 참배를 강요했으며, 황국 신민의 서사를 제창토록 하고, 창씨개명을 강요했다.

또한 그들의 침략전쟁에 우리 민족을 끌어들여 인적ㆍ물적 자원을 강제로 동원하고 수탈하면서 민족의 역량을 소진시켰다. 민족을 말살하기 위해서는 말과 역사부터 탄압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민족 말살 정책을 추진하던 일제에게는 한국어의 연구와 보급에 노력하는 조선어 학회가 걸림돌이 되었고 결국 1942년 조선어학회를 독립운동 단체로 규정하여 탄압 및 강제해산시켰다. 이를 조선어 학회 사건이라고 한다. 일제는 민족 말살을 위하여 역사까지 왜곡했다. 말과 역사는 민족을 지탱하는 두 버팀목이었다. 애국 계몽 운동 때부터 한국사를 연구해 온 박은식과 신채호는 지속적으로 민족 사학을 발전시켰다.

중국의 동북공정

최근 중국 베이징 동계 올림픽 개막식 때, 조선족 소녀가 입고 나온 한복이 문제였다. 그런가 하면 김치도 중국의 음식문화로 둔갑하고, 심지어는 축구선수인 손흥민을 손오공의 후손으로 묘사하여 그 뿌리가 중국에 있음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중국인들은 역사공정은 이미 완료하였고, 이제 문화공정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그들은 왜 그러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될까? 그 답은 우리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다. 한민족의 창세기인 마고성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신입합일과 율려문화로 하늘의 소리를 능히 들을 수 있었고 하늘의 이치와 섭리대로 살았다. 하지만 자재율이 무너지면서 마고성을 나가게 되면서 현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상실한 천성을 회복하고자 복본의 맹세를 했던 우리 조상들은 황궁, 유인, 환인, 환웅시대를 거쳐 단군조선이 탄생하면서 마고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신인합일과 율려문화, 천지인 사상에 바탕을 둔 홍익인간의 정신을 건국 및 통치이념으로 삼았다. 그 이후의 역사도 이러한 홍익의 가치를 실현하는 역사였다.

인류 4대 문명보다 더 이른 시기에 등장한 요하문명(홍산문화와 하가점하층문화)은 지금의 요서지역 에서 요동지역에 이르는 지역에서 꽃을 피웠다. 기원전 4,000년에 지금의 요서지역에 고대문명을 창조할 수 있는 집단은 문헌 기록들로 볼 때 한민족 말고는 없다. 한민족의 생성과 함께 고대 문명은 시작되었고 민족과 인류 대시원의 역사가 이로써 시작된 것이다. 그 이후 요서지역에서 문명을 일으킨 집단인 비파형 동검인들은 요동지역의 고인돌을 사용하는 집단과 함께 한반도로 들어오게 된다. 그러니 지금의 중국 영토에서 문명을 일으킨 집단의 뿌리는 한반도 내에 있으며, 그들이 다시 일본으로 문화를 전달하였다. 중국은 영토만 존재하고, 일본은 문화만 남아 있으니 그들은 끊임없이 역사 및 문화의 침탈과 왜곡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3·1정신의 뿌리가 복본 문화에 있다. 복본의 서약을 이행할 때 우리의 민족혼이 되살아 날 것이다. 결국 대한사람이 대한으로 길이 보존할 정신과 혼이 우리 민족에게 있는 것이다.

삼일운동을 삼일항쟁으로

기미년(1919년) 3월 1일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시작으로 울려퍼진 항쟁의 기세는 장엄했다. 기록에 따르면, 3월 1일에 시작한 반제 항일 민족항쟁은 4월말까지 이어졌다. 항쟁은 전국으로 확대되어 연 1500회의 시위 항쟁에 참가한 인원은 200만에 이르렀고, 사망자만도 7509명이었다. 부상자가 1만6000명에다, 피검자도 4만6900명이었다. 조선 독립을 위한 싸움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우리 겨레의 얼이 묻어 있는 증거다. 그 항쟁 속에서 침략 억압의 첨병인 경찰 헌병관서의 습격이 159회, 일반관서 습격이 120회, 일본관헌 사망자도 166명이었다. 그야말로 피나는 투쟁이었다. 동학농민항쟁을 능가하는 대항쟁이었다. 이를 ‘3·1운동’ 정도로 표기하는 것이 바로 식민사관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1919년 이후 1945년 8월15일까지의 26년 동안은 식민통치 기간이라 그렇다 쳐도 일제 패망 후 70년이 지나는 동안에도 3.1운동이라는 표기가 문제로 제기되지 못했다는 사실은 이 나라가 얼마나 식민사관에 물들어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최근에 고인이 되신 민족의 지성, 고 이어령 교수는 생전에 경영은 살리는 것이라고 하였다. 우리말에 ‘살림살이’ 라는 말이 있다. 기업이든 나라든 그 경영의 목적이 살리는 것이다. 결국 사람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고, 자연을 살리는 것이 진정한 경영이며, 그 경영철학이 바로 홍익이다. 또한 지구를 살리는 것은 지구경영이고 뇌를 살리는 뇌경영이 될 것이다. 103년 전에도 대한이 살았고 현재도 대한이 살고 있다. 다시 맞이하는 3·1절, 우리는 3·1정신을 계승하여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존할 정신과 혼을 부활시켜야 할 것이다.

 

*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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