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은 고래(古來)로 선도(현묘지도·풍류도)라는 민족 고유 사상에 기반한 문화(선도문화)를 누리고 살아왔다. ‘밝음(光明:생명)’을 이상시하는 선도문화(밝문화)를 누리는 중국의 동북방, 신선향(神仙鄕)에는 군자국(君子國)・불사지국(不死之國)・대인국(大人國) 등이 있다고 여겨졌고, 《삼국유사》에는 선도문화(신선문화)의 내용적 실체가 ‘홍익인간(弘益人間)・재세이화(在世理化)’ 또는 ‘광명이세(光明理世)’로 적시되어 있다.

1980년대 이후 중국 동북지역 상고문화 등장, 중국의 동북공정, 동북지역 상고문화에 대한 한국 학계의 인식 진전 등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민족사상・민족문화의 내용적 실체가 선도사상・선도문화임이 분명해졌기에, 한국 민족사학의 원형인 선도사학에 대한 연구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유교의 나라 조선에서 어렵사리 유통되는 과정에서 생긴 탈루(脫漏)・착간(錯簡)・첨입(添入)・오사(誤寫) 등의 문제로 인해 위서 시비에 걸려있던 선도사서들도 이제 ‘역사학’ 무대에 재등장하게 되었다.

민족사학에서는 고유의 신선사상을 민족종교로, 만주를 민족사의 중심무대로, 민족사의 연원을 단군으로 삼고 있다. 1980년대 이래 중국 동북지역에서 발굴된 고고학 성과로 인해 요서지역 청구문화(홍산문화)와 요동지역 천평문화를 두 중심으로 하는 배달국이 단군조선 선행문화임이 밝혀졌으므로, 고대사인 단군조선 역사는 물론 상고사인 배달국 역사까지도 다루고 있는 선도사학을 민족사학의 ‘원형’이라고 표현하였다. 또한 생명을 존중하고 조화・평화・공생을 속성으로 하는 선도적 세계관인 홍익주의에 기반한 역사인식을 ‘홍익사관’이라고 명명하였다.

한국선도의 존재론과 역사인식을 연동하여 보여주고 있는 《요정징심록연의(要正澄心錄演義)》 「부도지(符都誌)」에서는 존재의 본질인 일(一:밝음・생명(氣)・양심)을 ‘천부(天符)’라 하여 물질(현상)계를 구성하는 4대 원소인 공기(氣)・불(火)・물(水)・흙(土)을 조화시키는 중심점으로 설정하였다. 한민족은 고래(古來)로 물질세계인 현상을 바라볼 때 현상만 보지 않고 본질을 함께 바라보는 인식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인식체계를 한국선도 경전인 《천부경》, 《삼일신고》에서는 ‘일・삼・구(一・三・九)’로 표현하였고, 선도사서 「부도지」에서는 ‘기・화・수・토・천부(氣・火・水・土・天符)’로 표현하였다. 본질과 현상을 함께 인식하는 한민족 고유의 사유체계는 천부를 중심으로 하는 ‘삼원오행론(三元五行論)’으로 개념화된다.

일기・삼기(一氣・三氣)는 여율(呂律:음(陰)・양(陽)의 한국선도적 표현) 이원적 분화과정, 곧 ‘1기(3기)→2기→4기→8기’의 과정을 거쳐 물질화된다. 물질(현상)은 음・양 이원의 원리에 의해 작동하므로 ‘분리와 대립’이라는 속성을 지니게 되는데, 물질(현상)의 이면에 자리한 본질인 일기(삼기:천부)는 분별과 치우침이 없는 ‘무선악(無善惡:무아(無我)・무(無)・공(空))’ 또는 공(公:전체(全體) 의식)의 속성을 발현함으로써 물질(현상)의 ‘분리와 대립’을 ‘조화’시켜가게 된다. 천부가 조화점(調和點)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한국선도 전통에서 인간은 자신 안에 존재의 본질인 ʻ밝음・생명(氣)・양심ʼ을 지니고 있으며, 수행을 통하여 이러한 존재의 본질과 같은 상태에 도달 가능한 존재이다. 그 깨달음이 개인 차원(성통:性通)에 머무르지 않고 확대되어 사회적인 차원으로 실천(공완:功完)되었을 때 누구나 그러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본다는 점에서 인간은 대등하고 평등한 존재이다.

선도수행 본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제천(祭天)의례는 국중대회(國中大會)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제천의례는 환웅천왕의 신시배달국에서 단군조선에 이르기까지 풍속으로 연면히 이어졌다. 이후 부여의 영고, 예의 무천, 한(韓)의 제천, 고구려의 동맹, 백제의 제천, 신라의 대・중・소사(小祀)를 거쳐 고려의 팔관회로 이어졌다. 유교국가인 조선에서는 그 위상이 현저히 약화되어 유교 산천제로 변이되었고, 지금도 마을제의 형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선도적 역사인식과 실천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사람속의 밝음・생명(氣)・양심이 온전하게 발현되어(성통・신인합일・인내천) 공동체 전체의 밝음・생명(氣)・양심이 발현된 평화롭고 조화롭게 공생하는 지속가능한 세상을 만드는 것(공완・홍익인간・재세이화)이었다. 이는 선진문물을 지닌 환웅족이 가르침을 받으러 온 웅족을 지배・통제하지 않고 개명(開明)하도록 도와주고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차후 단군조선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열어 나아간 역사적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생명을 존중하고 평화롭고 조화롭게 공생하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홍익주의는 국수주의와 패권적 영토주의를 근원적으로 배격한다. ‘홍익’이라는 용어 자체에서도 ‘조화・평화・공생’ 이미지가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홍익사관에 입각한 선도사학을 전승한 민족사학이 국수주의・패권주의로 매도되는 것이 부당한 이유이다. 민족사학이 부당하고 근거 없는 비난으로 ‘국수주의・영토주의’로 매도되는 것은 나중에 살펴보겠다. 

유사(有史) 이래 기록된 대부분 역사는 우승열패 기록이며 침략・정복・지배의 기록이다. 고대국가는 군사형 국가였으며, 세계 모든 지역에서 한 손에는 검(무력)을 들고 다른 손에는 덕화(농경・신앙)를 들면서 여러 부족들을 연맹시켜 고대국가를 건국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배달국과 단군조선의 건국 사실을 담은 단군사화(실상은 환웅사화(桓雄史話))는 조화・평화・공생을 속성으로 하는 홍익주의가 현실에서 구현된, 인류사에서는 극히 예외적인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록이다.

《삼국유사》에서 인용한 《고기(古記)》 기록은 내용 대부분이 단군조선에 관한 것이 아니라 환웅의 신시고국에 관한 것이니 단군신화가 아닌 ‘환웅신화’로 일컬어야 함이 마땅하다. 또한 요서지역 청구문화와 요동지역 천평문화는 서기전 4000년부터 요동・요서를 아우르는 선도제천문화를 지닌 배달국의 두 중심이었음이 고고학과의 융합 연구로 입증되었으므로 단군사화가 아닌, ‘환웅사화’라고 표현하였다.

단군조선은 하(夏)와 상(商)의 정전제인 공법(貢法)이나 조법(助法)의 10분의 1세보다 훨씬 낮은 세금인 20분의 1세를 걷었다. 이는 《맹자》에서도 확인되는 내용이다. 가족이 함께 연좌되어 책임을 졌던 중원지역과는 달리 연좌제를 적용하지 않고 백성들 의견까지 들으면서 통치를 하였다. 내면의 밝음・양심이 사회적으로 발현되는 복본(復本: 홍익인간・이화세계의 공동체 구현)의 홍익주의를 패권주의로 대체하여 지배・통제하려는 시도에는 단호히 징치(懲治)하기도 하였다. 홍익주의를 패권주의로 대치하려는 요를 징치하기 위한 단군조선과 요순(堯舜)의 1차 전쟁, 우(禹)의 아들 계(啓)와의 2차 전쟁은 영토를 획득하기 위해 벌인 침략전쟁이 아니라 진리를 놓고 벌인 유혈 문화전쟁이자 이념전쟁이었다. 이러한 기록들은 인간(생명)을 존중하고 조화롭게 공생하는 홍익주의가 실천되었던 단군조선의 실상을 잘 보여준다.

평화롭게 공생하는 홍익주의 실천은 배달국 안에서의 일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환웅천왕은 배달국 건립 이후 높고 낮음이 없이 사해가 평등하고 모든 종족들이 스스로 행하는 부도의 법(조화롭고 이상적인 공동체를 만드는 것)과 문명을 각지로 전파하였다. 천웅도를 설립하여 배를 타고 사해를 순방하면서 근본을 잊지말 것을 호소하고 인간세상을 이롭게 하는 홍익실천을 한 것이다. 단군왕검 역시 부도를 건설하여 사해 제족(諸族)에게 천부의 이치를 전했으며, 교역을 왕성하게 하여 천하가 넉넉하게 하였다. 현실에서 실천되는 홍익주의는 한 국가나 한 민족에 국한되지 않고 사해동포와 함께 누리는 사상이었던 것이다. 9년 홍수로 중원지역이 물난리를 겪던 시기 하우(夏禹)를 만난 단군왕검의 태자 부루는 치수법을 전수하여 사해동포주의인 홍익주의를 실천하기도 하였다. 이는 선도사서인 《단군세기》는 물론, 중국 기록인 《오월춘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