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핵심 가치와 핵심 능력은 홍익과 공생
교육의 핵심 가치와 핵심 능력은 홍익과 공생
  • 이화영 계산공고 교사
  • k-spirit@naver.com
  • 승인 2021.05.25 11: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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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화영 교사 (계산공고)

홍익인간 이념을 교육기본법에서 삭제하는 법안이 철회되어 다행이다 싶었는데 교육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할 때 같이 발의한 학교민주시민교육촉진법 법안에 민주시민이 교육이념이라고 기재하여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당연히 학교민주시민교육촉진법 법안도 철회되거나 내용을 수정해야 합니다. 수정한다면 홍익민주시민을 교육이념으로 하는 것으로 변경해야 하고 핵심 가치와 핵심 능력도 바꾸어야 합니다.

이화영 교사(계산공고)
이화영 교사(계산공고)

학교민주시민교육촉진법안에 학교민주시민교육의 목표가 되는 핵심 가치로 정의, 자유, 평등, 평화, 관용, 존중, 연대를 제시하였는데, 여기에 ‘홍익’이 추가되어야 합니다. 또한 핵심 능력으로 비판적 사고능력, 합리적 판단 능력, 갈등조정 능력, 적극적 사회참여 능력, 타협할 수 있는 능력, 소수 의견을 존중하는 능력, 변혁적 능력을 제시하고 있는데 여기에 홍익의 핵심 가치인 공생 능력, 역지사지 능력, 공감 능력, 자기성찰 능력을 추가하는 것을 제안합니다.

핵심 가치 순서도 ‘홍익’을 가장 먼저 제시해서 ‘홍익, 정의, 자유, 평등, 평화, 관용, 존중, 연대’순으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모든 핵심 가치가 중요하지만 그중에서도 홍익이 교육의 본질적 가치를 나타내는 핵심 가치로 가장 적합하므로 가장 앞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핵심 능력 나열하는 순서도 공생 능력을 가장 먼저 제시해서 ‘공생 능력, 역지사지 능력, 공감 능력, 자기성찰 능력, 비판적 사고능력, 합리적 판단 능력, 갈등조정 능력, 적극적 사회참여 능력, 타협할 수 있는 능력, 소수 의견을 존중하는 능력, 변혁적 능력’순으로 나열되는 것이 좋습니다. 홍익의 핵심 가치와 가장 부합된 핵심 능력이 바로 공생 능력이므로 공생 능력을 가장 앞에 두어야 하고 역지사지 능력, 공감 능력, 자기성찰 능력도 홍익의 핵심 가치와 부합되는 핵심 능력이므로 공생 능력 다음으로 놓아야 합니다.

교육의 본질이 인성 계발에 있다는 것을 누구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인성 계발의 핵심 가치로 홍익, 사랑, 자비, 인(仁), 박애와 같은 가치를 빼놓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발의한 학교민주시민교육촉진법안에는 이런 핵심 가치가 빠져 있습니다. 이것은 교육의 본질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는 사랑을 석가모니는 자비를 공자는 인(仁)을 프랑스는 박애를 우리나라 국조 단군은 홍익을 인성 계발의 핵심 가치로 말했습니다. 서로 유사한 홍익, 사랑, 자비, 인(仁), 박애 가치 중에서 인성 계발 핵심 가치로 한 가지를 고른다면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홍익을 골라야 한국인의 정체성에 부합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번 홍익인간 이념을 교육기본법에서 삭제하는 개정안이 발의되고 학교민주시민교육촉진법안에도 홍익이 핵심 가치에서 빠지는 것을 보면서 한국인의 정체성 회복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2012년부터 ‘국사’교과서 명칭이 ‘한국사’로 변경되었는데 자국의 역사를 배우는 책을 ‘국사’라고 안하고 ‘한국사’로 명칭을 왜 변경했는지 그 당시에도 많은 사람이 의아해 했습니다. 당시에 신문에 보도된 한국현대사학회 권희영 회장 말을 인용하면 “우리나라의 국어를 다른 나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한국어로 표현해야 한다. 이처럼 국사도 그대로 사용할 수도 있지만 한국사가 좀 더 보편적인 명칭이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내용을 보면 국사를 한국사로 변경한 것이 우리 입장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 입장에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역사를 우리의 시각으로 안보고 다른 나라의 시각으로 보고 있는 것은 주인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노예의 눈으로 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홍익인간 이념을 교육기본법에서 삭제하는 개정법안이 발의되고 학교민주시민교육촉진법안에도 홍익이 핵심 가치에서 빠지는 사태도 국사를 한국사로 변경한 것 같이 주인의 눈으로 본 것이 아니라 노예의 눈으로 본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1925년 1월 2일자 동아일보에 쓴 글 ‘낭객의 신년만필’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석가(釋迦)가 들어오면 '조선(朝鮮)의 석가(釋迦)'가 되지 않고 '석가(釋迦)의 조선(朝鮮)'이 되며, 공자(孔子)가 들어오면 '조선(朝鮮)의 공자(孔子)'가 되지 않고 '공자(孔子)의 조선(朝鮮)'이 되며, 무슨 주의(主義)가 들어와도 '조선(朝鮮)의 주의(主義)'가 되지 않고 '주의(主義)의 조선(朝鮮)'이 되려 한다.” 지금 신채호 선생이 살아계셔서 작금의 사태를 보시면 어떤 호통을 칠지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 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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