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남원을 임나일본부 기문국으로 유네스코 등재하는 것을 반대하는 국민청원이 올라와 있습니다. 우리 국민 대부분은 이게 무슨 소리인지 의아해 할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가야사 복원 사업을 국정과제로 선정하고 1조 2천 억 원의 예산을 들인 프로젝트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가야사 복원 사업 내용을 들여다보니 일본이 주장하는 가야가 “임나(任那)”라는 학설을 지지하는 내용이 있어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화영 교사
이화영 교사

일본은 대일항쟁기에 조선사편수회에서 식민사학을 만들면서 조선 역사의 시작이 한반도 북쪽은 한사군 지배로 중국의 식민지였고 남쪽은 임나일본부로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역사 왜곡을 하여 식민지 지배에 역사적 당위성을 부여하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일본이 만든 논리를 중국이 이용하여 고조선, 고구려, 발해, 심지어는 백제 역사까지 중국의 역사라고 우기는 동북공정을 만들었습니다. 한국학자들이 중국의 동북공정에 제대로 대응을 못하는 있는 것도 분통이 터지는데 이번에는 남원이 “임나(任那)”라고 설명하는 자료를 우리 손으로 만들어서 유네스코에 등재하려는 어이가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가야사 복원 사업 일환으로 가야 고분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를 추진하면서 가야 고분군 대부분은 가야 지명으로 했지만 남원과 합천은 《일본서기》 임나의 지명인 ‘기문국’과 ‘다라국’으로 해설하여 등재를 시도하고 있어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기문국이 한국 가야사의 지명이 아니라 《일본서기》에 나오는 지명이라는 점입니다. 남원이 《일본서기》에 나오는 기문국이라고 주장한 사람은 한국 상고사를 중국의 식민지(위만조선, 한사군), 일본의 식민지(임나일본부)로 시작했다고 조작한 조선사편수회의 핵심인물인 이마니시류(今西龍)입니다.

임나일본부설은 문자적으로는 ‘임나(任那)에 있었던 일본의 부(府), 즉 관청’이라는 말입니다. 일본이 4세기 후반에 한반도 남부 지역에 진출하여 백제·신라·가야를 지배하고, 특히 가야에는 일본부(日本府)라는 기관을 두어 6세기 중엽까지 약 200년간 직접 지배하였다는 설이 임나일본부설입니다. 일본 제국주의는 임나일본부설을 만들어서 한반도 침략 행위를 정당화하려 했습니다. 한마디로 조선을 병합하는 것은 고대 영토를 되찾는 것이지 침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일본 교과서에는 ‘가야=임나’라고 명시하면서 역사 왜곡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서기》에 임나의 위치를 나타내는 구절이 있습니다.(《일본서기》 스진 65년 조, 서기전33년)

任那者(임나자) 去築紫國(거축자국) 二千餘里(이천여리) 北阻海以在鷄林之西南(북조해이재계림지서남) “임나는 쓰꾸시(기타큐슈)국에서 2,000여 리 떨어져 있는데 북쪽은 바다로 막혀 있고 계림의 서남쪽에 있다.” 일본의 주장대로 ‘가야 = 임나’가 성립되려면 가야의 북쪽은 바다로 막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가야 지역에는 북쪽이 바다로 막힌 곳이 없습니다.

오히려 이런 조건에 부합되는 지역은 대마도(쓰시마섬)입니다. 쓰꾸시(기타큐슈)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북쪽이 바다로 막혀 있으니까 임나는 바로 대마도이거나 대마도의 어느 지역을 말하는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입니다. 임나가 대마도라고 주장하는 학자는 부산대 이병선 교수, 단국대 윤내현 교수, 고려대 최재석 교수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분들의 의견이 소수파에 해당하기에 남원과 합천을 《일본서기》의 임나 지명인 기문국과 다라국으로 유네스코에 등재하려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환단고기》 중 ‘태백일사(太白逸史)’ 고구려국본기(高句麗國本紀)에도 임나의 위치를 나타내는 구절이 있습니다.

任那者(임나자)는 本在對馬島西北界(본재대마도서북계)하니 北阻海(북조해)하고 有治曰國尾城(유치왈국미성)이오. 임나는 본래 대마도의 서북 경계에 위치하여 북쪽은 바다에 막혀 있으며, 다스리는 곳을 국미성(國尾城)이라 했다. 《환단고기》가 위서 논란으로 강단 사학계에서 인정 안 하지만, 《일본서기》 내용과 《환단고기》 내용을 비교해서 보면 대마도가 임나일 가능성이 높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강단 사학계는 일제 식민사학자 3인방 가운데 한 사람인 쓰다 쏘우키치(津田左右吉)가 주창한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정설로 하고 있습니다. 《삼국사기》 초기기록은 김부식이 허위로 창작한 것이지 역사적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는 내용이 《삼국사기》 초기 불신론입니다. 쓰다 소키치가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부인하는 이유는 《삼국사기》에 임나일본부가 기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신공황후(神功皇后)의 정벌군이 서기 369년에 신라를 공격하여 가라(加羅) 7국을 평정하고 그 자리에 임나(任那)를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삼국사기》에는 임나일본부가 나오지 않을 뿐더러 《삼국사기》 기록처럼 3-4세기에 한반도 중남부에 강력한 고대국가인 신라와 백제가 존재했다면 임나일본부가 존재할 수 없기에 《삼국사기》를 부정했던 것입니다.

이런 쓰다 쏘우키치의 주장을 식민사학을 이어받은 이병도(李丙燾)가 받아들이면서 정설로 둔갑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국사 교과서를 보면 고구려는 2세기 태조왕부터, 백제는 3세기 고이왕부터 신라는 4세기 내물왕부터 진정한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 이전 역사는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삼국사기》 초기 불신론과 임나일본부설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강단 사학계가 우리의 역사서인 《삼국사기》 기록보다 《일본서기》 역사기록을 더 신뢰하여 남원과 합천이 《일본서기》 임나의 지명인 ‘기문국’과 ‘다라국’으로 설명하는 내용을 유네스코 등재자료에 올린다면 일본은 쌍수를 들고 환영을 할 것이고 우리 스스로 임나일본부를 인정하는 빌미를 주었기에 향후에는 일본이 더욱 더 강력하게 임나일본부를 주장하게 될 것입니다.

존 카터 코벨이라는 미국인 학자의 저서 “한국문화의 뿌리를 찾아서”에서 이분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일본 미술사를 공부하던 중 일본 고대 문화가 한국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물론 한국인 학자들까지 사실을 거꾸로 말한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지금의 나이든 (한국)학자들은 과거 일본 사람 밑에서 공부했기에……그러는 것인가? 아직 서른이 안 된 젊은 학도들은 누구에게도 빚진 것 없을 테니까 박차고 일어나 진실을 밝혀서 케케묵은 주장들을 일소해 버렸으면 한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존 카터 코벨 박사가 1981년에 이런 말을 했는데 40년이 지난 지금에도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동북공정에 대항하는 자료를 만들라고 동북아역사재단을 만들었더니 국가예산으로 동북공정을 옹호하는 동북아역사지도를 만들어서 시민단체들의 항의로 동북아역사지도가 폐기되었습니다. 이번에는 국가예산으로 일본이 주장하는 임나일본부를 옹호하는 듯한 자료를 만들어 유네스코에 등재하려는 사태가 벌어지고 또다시 시민단체들의 항의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이런 한심한 일들이 반복되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보다 많은 시민이 우리 역사 특히 고대사와 우리의 뿌리 정신인 국학에 관심을 갖고 깨어나야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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