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강한 한민족과 홍익 DNA
위기에 강한 한민족과 홍익 DNA
  • 이화영 교사 (인천 계산공고)
  • k-spirit@naver.com
  • 승인 2020.04.16 08: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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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화영 교사(계산공고)

몽골제국은 정복한 나라의 왕조들을 모두 무너뜨리고 직접 통치했는데 단 하나 예외가 고려입니다. 13세기 칭기즈칸이 25년간 정복한 땅은 로마제국이 400년간 정복한 땅보다 넓었습니다. 칭기즈칸과 그 후계자들은 강력한 기마병을 앞세워 유럽과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침략했습니다. 순식간에 중앙아사아를 휩쓸고 이란을 거쳐 바그다드를 정복하였고, 금나라와 남송을 무너뜨리고 중국을 차지하였습니다. 그리고 유럽까지 쳐들어간 몽고군은 러시아를 거쳐 헝가리와 폴란드까지 짓밟았습니다. 그런데 몽골제국에 30여 년을 끈질기게 저항한 고려는 멸망하지 않고 피정복 뒤에도 왕조를 유지한 유일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화영 교사(계산공고)
이화영 교사(계산공고)

『고려사』 103권에 귀주성을 공략한 뒤 칠순이 넘은 몽골의 한 장군이 한 말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수많은 전쟁을 겪었어도 이렇게 마지막까지 투항하지 않고 완강하게 싸우는 군민은 처음 본다.” 이 기록에서 보듯이 고려는 유례없는 저항의 대가로 독립성과 자주성을 약속받을 수 있었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군에 의해 불과 2주 만에 한양이 함락되고 조선 임금 선조는 의주로 피난을 가고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처해집니다. 그러자 각지에서 의병과 승병이 일어났는데, 유생을 비롯해서 승려, 농민, 심지어 천민계급까지 온 백성이 왜적과 싸웠습니다. 조선에 상륙한 왜군이 가장 당황한 것이 조선 의병의 존재였습니다. 일본에서 벌어진 전쟁은 영주가 다스리던 성을 점령하면 백성은 승리한 영주에게 순응하였기에 왜군 수뇌부는 성을 점령하면 조선 백성도 자국민들처럼 순순히 순응할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의 백성은 성이 함락되어도 조선의 수도인 한양이 점령당해도 굴하지 않고, 의병이 되어 게릴라 전법으로 왜군 보급로를 차단하는 것뿐만 아니라 빼앗겼던 성까지 수복하는 상황에 이르니 왜군 입장에서는 매우 괴롭게 되었습니다. 결국 육지에서 의병들의 활약과 바다에서 이순신 장군의 활약으로 왜군을 물리치고 나라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자 1919년 3월 1일 온 백성이 궐기하여 삼일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이에 영향을 받아 1919년 4월 11일 상하이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되어 본격적인 독립운동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삼일 만세운동은 중국 5.4운동, 인도와 이집트, 인도차이나, 필리핀 독립운동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1997년 7월 태국에서 시작되어 아시아 각국으로 연쇄 확산된 금융위기는 한국에도 심각한 타격을 가해서 나라 빚은 1,500억 달러가 넘는데, 외환보유고는 40억 달러도 채 되지 않아서 국가부도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한국 정부는 IMF의 굴욕적이고도 가혹한 구조조정 요구를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구제 금융을 받게 되었습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또다시 국민이 나서서 제2의 국채보상운동인 금 모으기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에 대한제국이 일본에 진 막대한 부채를 갚기 위해 기부금을 모으는 활동으로 많은 백성이 담배와 술을 끊고 모은 돈과 귀금속을 거두어 나라 빚을 갚는 데 써 달라고 기탁했던 운동입니다.

외환위기로 나라가 어려워지자 다시 한번 제2의 국채보상운동을 벌이는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우리 국민은 금 모으기 운동으로 두 달 만에 350만 명이 참여하여 227톤의 금을 모았습니다. 금 모으기 운동으로 약 21억 달러의 외화부채를 갚았고 4년 만에 IMF지원을 조기 졸업하고 신용등급 A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2007년 태안 유조선 사고로 태안 바닷가가 기름 범벅이 된 지 16일 만에 기름을 닦기 위해 모여든 자원봉사자가 3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일본이 자랑하던 후쿠이현 미쿠니 유조선 사고 때의 3개월간 자원봉사자 30만 명 기록을 불과 16일 만에 깨고 이어 3개월 동안 미쿠니의 4배인 123만명을 기록했습니다.

2020년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각 나라에서 혼란이 일어날 때 우리나라는 초기에 약간의 혼란과 당황스러움이 있었으나 곧 이어서 성숙한 시민 의식을 발휘하여 질서와 안정을 되찾았고 세계로부터 코로나19에 성공리에 대처하는 모델국가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우리 민족은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한마음이 되어 위기를 극복해왔습니다. 왜 우리 민족은 위기에 강할까요? 왜 우리 민족은 어려울 때 성숙한 시민 의식이 살아날까요? 그 이유는 우리에게는 반만년 동안 이어온 홍익의 DNA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찍이 단군조선시기에 빛나던 홍익의 DNA, 그 홍익의 DNA가 지금 또다시 깨어나고 있습니다. 이번에 깨어나는 홍익의 DNA는 과거에 잠시 깨어났다가 다시 잠드는 그런 것이 아니라 홍익의 DNA가 영원히 깨어나서 홍익민주주의, 홍익자본주의, 홍익교육, 홍익종교로 인류의 모델국가가 되길 바랍니다.

 

* 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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