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70세를 넘은 화가로 창조의 지평을 새롭게 열어줄 여행 버킷리스트 4곳을 정했다. 1)뉴욕 2)파리 3)몽골 4)도쿄이다. 71세가 된 2017년은 뉴욕, 2018년은 파리, 2019년인 올해는 몽골을 다녀왔다. 올해 새로운 여권으로 교체하고 처음 다녀온 몽골은 새로운 시간과 공간, 생명과의 만남으로 나의 한계를 넘게 해주었다. ‘몽골에서 꾸는 -이바요- 의 꿈’이 총체적인 인상기였다면 속속들이 그간의 여정을 공부하고 밝혀 늘 그랬던 것처럼 나의 여행이 모두의 경험이 되면 보람이 있겠다. 이번 여행은 몽골의 거친 땅 서쪽의 고비사막 쪽을 향한 발걸음이었고 다음에는 몽골의 북동쪽이 될 것이다.

바람의 고향, 몽골에서

가족의 배웅을 받으며 12시에 인천국제공항 3층 L17에 도착하였다. 약 1시간에 걸쳐 짐을 부치고 일행 셋이서 간단한 점심 식사를 한다. 동행하는 초면의 ‘ㄱ’ 님은 나의 평생의 동료 ‘ㅎ’님의 친구로 세계여행을 매우 자주 다닌 치밀하고 멋진 사진 마니아였다. 많은 경험담을 재미있게 듣고 배울 수 있을 터로 기대가 크다. 몽골 항공기는 14시 20분 출발로 비행은 3시간 30분이 소요되고 시차는 몽골이 한 시간이 빠르다. 몽골의 비행기와 여승무원들은 서비스가 화려하고 기민하지는 않으나 모두 큼직하고 순박하다.

우리나라 강릉 비행장 정도의 ‘울란바타르’(Ulaanbaator) 국제 비행장에 내리니 ‘ㅂ’ 님이 차를 몰고 나와 기다린다. 십여 년 만에 만났지만 여전히 에너지가 넘친다. 우리가 도착하기 직전에는 폭우가 내렸다며 몽골에서는 비가 내리는 것은 축복으로 여긴다는 덕담으로 반긴다.

그는 ‘울란 바토르’는 일본식 발음이며 바른 발음은 ‘울란 바타르’라고 교정해 준다. 'Ulaan(울란, 붉다) + Baatar(바타르, 영웅)'이니 ‘붉은 영웅’이라는 뜻이다. 그들은 한국을 ‘솔롱고(무지개)’, 한국인을 ‘솔롱고스’라고 하면서 형제처럼 반간다고 하는데 이 역시 정확한 발음은 ‘설렁거스’이다. ‘그게 그거지 뭐’ 하며 넘어갔지만 나중에 그 큰 땅을 보고 나니 일본식의 발음은 작게 들리고 몽골 현지의 발음은 크게 느껴진다는 큰 차이를 알게 된다. 우리말도 ‘호호’와 ‘하하’는 그 밝기와 크기가 다르다. ‘살랑살랑’ 이나 ‘찰랑찰랑’보다는 ‘설렁설렁’, ‘철렁철렁’의 움직임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당연히 ‘울란바토르’와 ‘울란 바타르’, ‘솔롱고스’와 ‘설렁거스’의 차이는 부르고 듣는 사람들의 마음의 크기와 상태에 따라 다르게 각인된다.

마침 토요일이기에 여행 중 오지에서 소소하게 쓸 100달러를 몽골 돈인 ‘투그륵’으로 급히 환전하였다. ‘투그륵’은 대개 한국 원화의 반 수준으로 한 끼 식사가 1만 투그릭이라면 우리 돈으로는 5천원이 되는 셈이다. 크고 든든하게 생긴 호남형의 몽골인 가이드 ‘바타’ 씨를 만났다. 4성급 ‘선진호텔’에 짐을 풀고 시내를 관통하여 흐르는 풀골 강변의 ‘리버사이드’ 식당으로 간다. 두 군데 모두 한국인이 주인이었다. 선진호텔에는 룸 하나에 큰 침대 두 개와 임시로 작은 침대 하나를 놓았다. 늘 훈련이 된 대로 얼른 작은 침대는 내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이로서 모두 여행이 끝날 때까지 아주 편해졌다. 리버사이드 식당의 메뉴는 염소탕으로 몽골 염소고기라 양이 많고 맛도 있었다. 한국산 소주도 한 잔 곁들였는데 몽골인들의 주량은 실로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징기스칸 동상의 야경. 징기스칸 광장에는 큰 징기스칸의 동상이 조명을 받고 아래를 굽어보고 있다. [사진=장영주]
징기스칸 동상의 야경. 징기스칸 광장에는 큰 징기스칸의 동상이 조명을 받고 아래를 굽어보고 있다. [사진=장영주]

 

늦은 밤이지만 ‘ㅂ’님의 안내로 시내 중심가에 있는 징기스칸 광장의 야경을 보러 나갔다. 매우 큰 징기스칸의 동상이 조명을 받고 아래를 굽어보고 있다. 원래는 ‘수흐바타르 광장’으로 부른 곳으로 ‘담디니 수흐바토르(Damdinï Suhbator. 1893~1923)’는 청나라로부터 독립운동을 이끈 지도자였다. 곧바로 레닌의 전술지도와 원조로 세계에서 소련 다음으로 최초의 공산국가를 세운 국민 영웅이다. 그러나 지금은 러시아의 간섭으로 부터 벗어나려고 노력하기에 이름을 바꾸었다. 징기스칸 광장을 중심으로 대통령 집무실, 정부종합청사, 역사박물관, 중앙 우체국, 외무부, 울란바토르 호텔, 국립오페라하우스, 몽골 국립대학교, 자연사박물관 등이 있다.

웅장한 광장 건설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대통령 후보의 아버지가 외국을 다니면서 당당하게 “내 아들이 몽골의 대통령에 후보인데 돈을 좀 주시오.” 라고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아랍권 등에서는 선선히 돈을 주고 당선되면 대통령 아버지는 또 다시 아들의 당선 선물을 요구하는데 그렇게 하여 지어진 것인 지금의 징기스칸 광장이라는 것이다. 약탈문화의 전통이 남아 있는 것인가? 요구하는 품세가 당당하다. 호텔은 핸드폰 충전이 가능하였고, 샤워와 부대시설, 조식도 그런대로 정갈하고 편리하다. 몽골에서의 첫 밤이 지나간다.

 

 드디어 그들을 만나다

몽골(Mongolia)과 몽고(蒙古)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중국인들은 자신들만은 중앙의 꽃으로 중화(中華)같은 민족이며 주변을 남만, 북적, 동이 등처럼 모두 오랑캐라고 불렀다. 지나 한족의 중화 갑질의 못된 짓거리가 아닐 수 없다. ‘몽고’는 말 그대로 ‘예로부터 몽매한 족속’이라는 의미이다. 그런 만큼 이제는 몽고가 아닌 ‘몽골’이라고 불러야 한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7시 기상한다. 모두 새벽잠이 없다. 조찬을 마치고 7시 45분, 곧바로 고비사막으로 출발한다. 가이드 겸 통역 겸 다양한 역할을 할 몽골 사내 ‘바타’ 씨가 운전대를 잡는다. 그가 몰고 온 차는 일제 혼다 SUV로 운전대가 오른쪽에 있었다. 계약서에는 사막과 산악지역에서도 튼튼한 일제 ‘랜드크루즈’ 라고 했는데....

그러고 보니 몽골에서는 모든 차의 운전대가 왼쪽, 오른쪽 뒤섞여 있다. 바타 씨의 집에도 차가 두 대인데 운전대의 좌우 위치가 각각 다르다고 한다. ‘ㅂ’씨는 ‘몽골 사람들은 차를 말 몰듯이 한다며 쓴웃음을 짓는다. 말은 깜빡이도, 크락션도 없기에 순식간에 끼어드는 소위 ‘칼치기’가 심하고 말 경주처럼 좀체 양보도 없다고 한다. 그리고 절대로 상대방 운전자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 양보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차마다 운전대가 다르고 차를 모는 습관도 속도에 있어서는 경쟁적이기에 사고가 많다고 한다. 어쨌거나 고비사막까지는 편도로도 꼬박 3일이 걸린다. 오늘은 서쪽의 ‘차강스와라가’ 까지 450km를 약 6시간 동안 가볍게 달릴 예정이다.

약 한 시간을 달리자 자유롭게 들판을 다니는 말과 양이 나타난다. 드디어 진짜 몽골말을 보았다. 이동식 원형 텐트인 게르(ger)가 나타나면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분주하게 말을 타거나 오토바이를 내달리면서 말과 양을 모으고 있다. 지금은 방학 중이라 도시로 나갔던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와 부모의 일을 돕는 가족들이었다. 몽골의 여름방학은 ‘나담 축제’에 이어 3개월(6, 7, 8월)이고 겨울방학은 1주일이다. 날이 좋을 때는 야외에서 놀거나 일하고 추울 때는 공부하라는 뜻이다.

잠시 멈추어 스케치하고 사진을 찍자고 하였다. 바타 씨가 거침없이 게르로 들어가 주인아주머니께 뭐라고 하자 아주머니가 옆 게르에 또 뭐라고 소리를 지른다. 작은 소녀가 나와 가죽 주머니에서 걸쭉한 액체를 한 사발씩 떠준다. 하도 무표정하여 ‘예쁘다'고 하니 급 방끗 웃으며 자기는 초등학교 5학년이라고 한다. 말 젖을 가죽주머니에 넣고 저으면 시큼한 요구르트가 되는데 바로 발효유 ‘아이락’이다. 바타 씨는 어려서 할아버지께 ‘왼손으로 300번, 오른손으로 300번’을 저으라는 분부를 날마다 듣고 자랐다면서 시범을 보인다.

그들은 이렇게 말 젖을 휘저어 발효유(요구르트)로 만들고, 요구르트를 흔들어 버터를, 버터를 가열해 버터기름을 만든다. 버터를 만들고 남은 버터 밀크를 끓여 말린 딱딱한 치즈는 보관하여 간식처럼 수시로 먹는다. 이것이 몽골전사들의 활력원인 것이다. 살림도구가 많은 게르를 나와 말에게 다가가서 몽골말을 유심히 보면서 처음 스케치한다. 제주말보다 확실히 크고 뚜렷하며 강인하다. 몽골말은 8마리 중에 대장 말이 한 마리 있고 암컷이 있다고 한다. 대장 말과 그의 암컷은 멀리서 보아도 금세 알아 볼 수 있다.

몽골말. [그림=장영주]
몽골말. [그림=장영주]

나는 아주 어려서부터 말을 즐겨 그렸다. 내가 좋아하는 말은 고기를 제공하는 사육마도, 평생 밭을 가는 노동마도, 수레를 끄는 말이 아니고 들판에서 제멋대로 살아가는 야생마 무스탕도 아니다. 때로는 야생으로, 때로는 자연으로 살다가 사람과 긴밀하게 교류하고 살면서, 전장에서는 주인과 생사를 함께 하는 영리하고도 힘이 넘치는 말을 좋아 한다.

늘 대자연에서 펄펄 살아 뛰는 몽골말을 그리기를 강렬하게 원해왔다. 투레소리, 발굽소리, 말 내음을 맡으며 몽골의 초원에서 생생하고 힘찬 말을 그리다니.

드디어 그들을 만난 것이다.
지금, 여기가 바로 그곳이며 그때이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스케치북을 꺼내 즉시 말을 그리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