뎀에(낙타)의 눈물

몽골인이 세계적으로 자랑하는 ‘흐미’라는 노래는 피리보다 맑고 높은음과 목이 쉰 듯한 낮고 탁한 음을 한 사람이 동시에 발성한다. 마치 여자 소프라노 가수와 남자 판소리 명인을 한 사람으로 섞은 듯하다. 초원에서 멀리, 넓게 가축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발달된 것이 아닌가 짐작한다. 흐미 가수들은 자연의 소리를 흉내 내어 인간의 소리로 재현하는 것이라며 자긍심이 대단하다. 워낙 힘이 들어 나이가 좀 들면 할 수 없다고 한다.

몽골 유목민은 모두 마두금(馬頭琴)이라는 전통 악기를 연주한다. 악기의 위쪽에 어김없이 말 머리를 조각하여 마두금이라 부르는 단지 두 줄뿐인 현악기다. 해금, 첼로, 바이올린 소리와 비슷하나 섬세하면서도 자연처럼 투명하여 현악기 특유의 예민함 없이 바람처럼 구름처럼 가슴을 열어 준다. 충성스러운 말이 죽으면서 주인에게 자신의 주검으로 악기를 만들어 달라는 전설이 내려온다. 머리로는 울림통을, 뼈로는 대를, 털로는 줄을 만들어 켜면 영혼들의 아픈 상처를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 전해온다.

소녀와 뎀에. [사진=장영주]
소녀와 뎀에. [사진=장영주]

영혼은 무엇인가? 영(靈)은 정보이고 혼(魂)은 정보를 사용하는 주인이다. 정보가 얼룩지거나 왜곡되면 혼이 상처를 받았다고 여기기 쉽다. 진실은 그 어떤 것에도 결코 흠결 날 수 없는 것이 혼이지만 상처 받은 것으로 착각하면서 몸도 난조에 빠진다. 그 오염된 정보를 바로 잡아 몸과 마음을 고치는 것을 ‘치유’(힐링)라고 하고 지식을 활용한 인위적인 힐링과 자연환경을 활용하는 자연 힐링이 있다.

사람과 같이 사는 뎀에는 자연히 희로애락도 사람과 함께 하고 있다. 몇 해 전 TV에서는 ‘낙타의 눈물’이 방영된 적이 있다. 오랜 난산을 치른 어미 뎀에가 막 출산한 새끼를 외면하고 젖을 물리길 거부하고 있는데 새끼로 인해 자신의 목숨을 위협을 받았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유목민은 젖을 짜 먹고, 짐도 나르고, 교통수단으로 뎀에에게 두루 의존하는데 그런 뎀에가 천신만고 끝에 출산하였으나 새끼의 목숨이 위태롭다. 어미 뎀에의 마음을 치유하는 방법은 없는 걸까?

마을에는 뎀에를 치유하는 경험 많은 노인들이 있다. 치유를 맡은 노인과 아들은 넓은 초원에 나가 상처받은 뎀에에게 마두금을 연주해 준다. 아들이 마두금을 연주하는 동안 노인은 어미 뎀에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한참 위로의 말을 한다. 잠시 후 어미 뎀에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아기 뎀에를 받아들이고 젖을 물린다. 두 다리 사이에 끼고 활로 긁어 소리를 내는 소박한 마두금의 소리와 노인의 뜻 모를 위로의 소리가 과연 어떻게 어미 뎀에의 마음을 치료했을까.

음악과 춤, 음성, 행동뿐 만이 아니라 생각의 파장이 에너지가 되어 모든 존재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원리가 다름 아닌 우리 한민족의 철학에 있다. 바로 율려(律呂)사상이다. 율려는 만물을 감싸면서 고동치는, 생명의 온기를 가진 의식이다. 율려는 모든 생명의 심장을 뛰게 하고, 지구를 돌게 하고, 태양을 빛나게 하는 근원적 에너지이다. 우주의 생명현상을 율려라고 볼 때, 율려가 아닌 것은 없다. 율려를 회복한 상태는 하늘과 땅과 인간이 조화된 상태이다. 이런 조화의 상태가 평화이고 행복이며 절대적 기쁨이다.

어미 뎀에가 아들이 켜는 마두금의 악보를 알까? 노인의 몽골말을 알아들을까?
물론 아니다. 언어와 가사 이전에 마두금과 음성의 생명의 파동이 이미 율려로써 하나로 어울려지면서 자연적인 치유의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생명예술의 힘이다.
인생을 짧고 예술은 길다.
현상은 잠깐이고 율려는 영원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