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락을 마실 때 '고시례'를 하는 몽골인
아이락을 마실 때 '고시례'를 하는 몽골인
  • 장영주 국학원 상임고문
  • k-spirit@naver.com
  • 승인 2019.08.30 08: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고] 바람의 고향, 몽골에서3

 고시례~!

이름 모를 마을에서 점심을 하고 또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아스팔트 길이지만 울란 바타르에서 멀어질수록 비포장이 자주, 길게 나와 심하게 흔들리니 허리가 불편한 ‘ㄱ’님은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워낙 여행을 좋아하니 허리시술을 한 지 일주일만에 참가했다. 눈치 빠른 가이드 겸 운전사인 바타 씨가 자주 쉬어가기로 하고 간이식당 게르에 들렀다. 게르 안에는 실로 처음 맡는 냄새가 가득하다. 탁월한 방한재로 게르의 벽에 둘러 넣은 양털 냄새인데 몽골인도 그 냄새만큼은 싫어한다고 한다.

양고기가 가득 든 만두를 기름에 튀긴 ‘보즈’를 주문하였다. 이 보즈는 특히 외지에 있는 자녀가 가장 원하는 집밥으로 잊을 수 없는 어머니의 손맛이다. 몽골의 어머니는 외지에 나간 자녀의 귀가에 맞춰 며칠간을 우리네 어머니들이 송편을 빚듯이 미리 보즈를 빚으면서 자녀를 기다린다. 그러나 기름에 튀긴 어른 손바닥만 한 양고기 만두는 너무 느끼하여 어지간한 나도 반쯤 먹다가 슬며시 남겼다.

게르를 비추는 달, 수채. 장영주 작.
게르를 비추는 달, 수채. 장영주 작.

속을 달랠 겸 따끈한 마유주(馬乳酒) ‘아이락’을 한 사발을 들이켰다. 몽골의 아이들도 마시는 ‘아이락’은 알코올 도수가 3% 내외인 발효 유제품으로 중앙아시아에서는 ‘크므즈’라고 부른다. 꼭 우리 막걸리와 비슷하여 반갑다며 호기롭게 마시고는 큰 결과를 감수해야 했다. 가뜩이나 차가 덜컹거리는데 아랫배는 연신 강한 연동작용을 한다. 알고 보니 아이락은 변비에 특효일 정도로 장 청소에 탁월한 효과가 있어 대부분 한 번은 설사를 한다고 한다. 나도 예외가 아니어서 참고 참다가 망망한 고비사막 한쪽에 급한 흔적을 남겼다. 변비가 심한 분들이나 숙변을 제거 하고 싶은 분들은 따끈한 아이락을 꼭 한 번 마셔 보시라. 다만 반나절 뒤의 곤란한 상황은 미리 염두에 두시라.

아이락을 마실 때는 반드시 약지로 그 액을 찍어 하늘, 땅, 생명에게 세 번의 고시례를 한다. 그들은 '차잘'이라고 부른데, 여하튼 몽골인들이 우리처럼 고시례를 하다니!

그들과 우리의 공통 문화인 고시례(高矢禮)는 무엇인가? 우리의 고대사에서 ‘고시’는 지금의 농림부장관 쯤 되는 세습전문직이다. ‘치우(蚩尤)’ 가문이 세습국방장관인 것과 같다. <신시본기> 제3편에는 “B.C. 3898년에 한웅천왕께서 신시를 여시고 ‘고시’로 하여금 먹여 살리는 임무를 담당하도록 하시고 주곡(主穀)이라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고시의 집안은 한웅천왕 때부터 단군왕검에 이르기까지 신시, 청구, 조선을 거치는 약 1,600년 동안 농사를 관장해 온 셈이다. 농사법을 잘 지도하여 주곡을 먹고 살 게 해준 농사의 신과 같은 고시 씨들에게 예의를 드리는 것이 ‘고시례’이다.

다시 한없이 흔들리며 달린 후 잠시 머문 간이 게르 상점에서 대낮에 술 취한 몽골 남자에게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하였더니 돈을 달라고 한다. 바타 씨도 같은 몽골 인으로서 언짢은지 돌려보낸다. 잠시 뒤에는 오토바이에 한 가족 5명이 타고 나타난다. 아버지와 고만고만한 아이들로 아버지가 지폐를 한 닢씩 나누어 주니 제비 새끼 입 벌리듯이 아이들 손이 활짝 벌어진다. 각자 맛있는 걸 사먹으라는 것 같아 익숙하고 정겹다. 가지고 있던 과자를 주고 그 귀여운 얼굴들과 사진을 찍었다.

꼬박 저녁 무렵까지 달리고 달려 차강스와라가의 게르 캠프에 닿았다. 저녁을 먹고 유명한 몽골의 밤하늘 별을 보려고 목을 빼고 기다린다. 마침 보름 무렵인지 크고 휘황한 달이 뜨더니 별이 자취를 감춘다. 해가 뜨면 달이 숨고, 달이 뜨면 별이 숨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밤하늘을 꼭 찍겠다는 ‘ㅎ’님과 함께 밤이 이슥하도록 고개를 빼고 하늘만 보다가 게르로 들어가 잠을 청한다. 피곤한지 바타 씨의 코고는 소리가 장쾌하다.

흰 음식, 빨간 음식

게르의 조식에는 대개 약간 시큼한 요구르트가 나온다. 몽골의 음료로는 우유로 만든 차인 수테차, 요구르트격인 코우미스(koumiss)가 있다. 그들이 좋아하는 술은 러시아산 보드카인 스미르노프와 몽골 보드카인 칭기즈칸이 있는데 40도에 이르는 독한 술로 상당히 좋은 편이다. 말젖 발효주인 아이락은 집집이 담는 가양주로 3도에서 7도까지 다양하다. 아르히는 가축의 젖으로 만든 요구르트를 끓여 증발시키 증류주이다. 15도 정도의 투명한 청주와 비슷하지만 젖 냄새가 나며 은근한 고급술이다. 몽골군대가 서방으로 진군하면서 얻어 온 양조기술로 알코올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우리의 안동소주도 증류주로 지금도 안동에서는 진한 주정을 ‘아래기’ 라고 한다. (이동수 안동 문화원장 증언). 알코홀, 아르히, 아래기는 오랜 시간, 여러 공간을 거쳤지만 같은 뜻으로 추정된다.

게르 캠프의 식사는 아침부터 또다시 고기의 향연이다. 몽골의 전통 요리는 흰 음식과 빨간 음식으로 나뉜다. 하얀 음식은 여름에서 가을까지 짠 가축의 젖으로 만든 각종 유제품으로 1년 내내 먹는 보존식이다. 목초지가 풍성해진 여름부터는 가축에서 나오는 유제품으로 고기를 대신한다. 우유를 발효하여 만든 몽골식 치즈 어름과 마유주 아이락, 7, 8월에만 마실 수 있는 멀(mori 말)젖과 허느(honi 양), 얌아(yamaa 염소), 우헬(uher 소), 살락(sarlag 야크), 템에(teme 낙타)의 젖이 대표적인 하얀 음식이다. 초원에 유제품을 말리기 위한 받침대를 마련하기도 하고, 새의 피해를 막기 위해 죽은 까치를 매달기도 한다.

버덕 구이. [사진=바타 제공]
버덕 구이. [사진=바타 제공]

 

빨간 음식은 가축을 도축하여 얻는 육류로 가을에 살찐 가축을 잡아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혹한기를 대비한다. 이 또한 모든 가축이 주는 선물로 양고기는 덩어리 째 보존하고, 소는 대부분 육포처럼 찢어 말려 ‘보르츠’로 만든다. 보르츠를 갈아 만든 가루같은 덩어리는 간편한 휴대식량이 된다. 고기는 약이 되는 쓸개를 빼고 내장 하나도 버리지 않고 부위에 따라 가공된다. 빨간 음식의 지방질은 혹독한 겨울을 나는 중요한 칼로리 공급원이므로 몽골에서는 부의 상징이다.

농경사회인 우리나라에 ‘보릿고개’란 말이 있듯이 몽골에서도 ‘젖 고개’가 있다. 이른 봄 새끼를 낳은 어미들은 젖을 물려야 하므로 사람이 먹을 젖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철이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가 아무리 기근이 들어도 씨감자나 씨 옥수수를 먹지 않는 것처럼 유목민들은 봄에는 절대 가축을 잡지 않는다. 겨우 내내 바짝 마른 데다 새끼도 낳아야 하기 때문이다. 늦가을 살이 통통하게 올랐을 때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잡아 소금만 약간 뿌려서 게르에 매달아 불을 피운 가마 위에서 훈제한다. 이렇게 말린 고기는 전혀 가공이 되지 않아 자연의 깊은 맛이 있다. 바타 씨에게 한국에서 가져간 육포를 주었더니 한 입 먹고는 냄새가 싫다며 다시는 먹지 않는다. ‘징기스칸’ 요리는 병사들이 쇠 냄비에 갖은 채소를 넣고 익혀 먹은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전골과 비슷하며 일본에서는 ‘샤브샤브’라 부른다. 팔팔 끓는 국물에 얇게 썬 쇠고기를 살짝 데쳐먹는데 돼지고기, 꿩고기 등 다양한 식재료를 이용할 수 있다.

초원에서 최고의 접대요리는 ‘슈우스’로 양을 통째로 잡아 여덟 개 부위로 해체하여 삶은 후, 살아 있을 때와 비슷한 모습으로 그릇에 담아 내놓는다. 그러나 몽골 사람들이 정작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버덕’이다. ‘프레리 도그’라고도 불리는 초원의 다람쥐 ‘마모트’구이로 몽골의 대표요리 허르헉은 버덕의 양 버전이다. 몽골의 하얀 음식은 청렴과 진심을, 빨간 음식은 풍성함을 상징한다.

그러고 보니 푸른 음식이 없다.

아, 그리운 열무 겉 저리여.

 

3
0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