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교육특성화 대학인 글로벌사이버대학교는 지난해 세계 최초로 ‘지구경영 융합전공’ 학사과정을 신설했다. 그리고 올해 첫 전공필수 〈지구경영 이해〉 교과목을 뇌교육의 글로벌 중추기구인 국제뇌교육협회와 공동 운영한다.

지구경영이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된 것은 2004년 국학원 개원식에서였다. 국학원 설립자인 이승헌 국제뇌교육협회장은 당시 개원식에서 국학원의 설립 이념을 ‘한민족의 새로운 탄생과 지구경영을 위하여’라고 밝혔다.

〈지구경영 이해〉 과목은 홍익정신의 현대적 조명을 통한 지구촌의 경제, 정치, 교육의 변화와 뇌교육을 활용한 지구경영 리더십 글로벌 사례를 소개한다. 그리고 마지막은 다시 그 출발점인 한민족의 홍익철학과 선도로 돌아온다.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선도문화학과 장영주 특임교수(사진 오른쪽)와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지구경영 이해' 과목 담당 교수인 김지인 박사가 ‘K스피릿과 지구경영’를 주제로 대담을 했다. 사진 김지인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선도문화학과 장영주 특임교수(사진 오른쪽)와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지구경영 이해' 과목 담당 교수인 김지인 박사가 ‘K스피릿과 지구경영’를 주제로 대담을 했다. 사진 김지인

과목 담당교수인 김지인 박사(국제뇌교육협회 국제협력실장)와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선도문화학과 장영주 특임교수(국학원 고문)가 ‘K스피릿과 지구경영’를 주제로 대담을 했다.

 

---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독립 운동가들이 새로운 국가의 국호를 정할 때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흥하자!”라고 하면서 황제가 주권자인 “대한제국”에서 국민이 주권자인 “대한민국”으로 바꾸었습니다. 왜 대한민국인가요? 한 민족의 독립과 번영을 넘어 지구경영의 관점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지 되새겨 보고 싶습니다.

장영주 교수 : ‘조선’ 대신 ‘대한제국(大韓帝國)'이란 국호는 황제가 통치하는 ‘대한’이란 의미로 1897년 8월 46세의 고종 황제가 명명합니다. 그러나 1910년 경술국치로 불과 4년 만에 ‘대한’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1919년, 삼일만세운동으로 탄생된 상해임시정부의 첫 의정원(1919년, 의장 석오 이동녕 石吾 李東寧)의 가장 중요한 안건은 '나라의 이름' 만들기였습니다.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흥하자”는 우창 신석우(于蒼 申錫雨)선생의 발의와 참석자들의 호응으로 드디어 국호가 ‘대한민국’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상해 임시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되었습니다.

대한민국(大韓民國)은 대한(大韓)과 민국(民國)을 합친 말입니다. 대한은 역사적으로는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을 통일 한 삼한일통(三韓一統)의 결과이고 지금은 한반도의 유일정권을 상징하는 국호가 되었습니다. 이상이 건국 당시의 국호 제정의 역사적 기록입니다만 중요한 키워드는 ‘한’이란 낱말에 있습니다. 우리는 ‘한’이라는 말을 일상에서 자주 씁니다. ‘한 개’에서 ‘한없이 많다.’ 또 ‘한사람이 한 아름 안고 간다.’라고도 합니다. 정서적으로는 ‘한이 깊이 서렸다.’ 또는 ‘한숨을 쉰다.’고 합니다. 웃을 때는 ‘하하’, ‘허허’, ‘호호’하며 웃고, 울 때는 ‘흑흑’ 흐느끼며 힘들 때는 ‘헉헉’거립니다. 수량으로는 알파요 오메가이며 정서적으로는 기쁨과 슬픔이라는 극과 극을 아우르는 ‘한민족’의 가장 친숙한 생활 낱말 중의 ‘하나’가 바로 ‘한’입니다. ‘한’없이 크고도 ‘무한’한 생명력이 ‘한가득’ 한 단어가 바로 ‘한’인 것입니다. 이것은 한 개인이나 한 국가만의 가치가 아니 글로벌한 지구적인 생명의 정의이고 가치입니다. 지구경영을 위한 가장 적합한 국호가 아닐 수 없습니다.

 

---드라마와 대중음악에서 시작된 한류가 한국화 전반에 대한 관심과 열광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문화를 깊이 알고 싶은 열망이 한글 공부까지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한글, 문화적 관점에서 이러한 전 세계인의 관심을 어떻게 보시나요?

 

장영주 교수 : 먼저 우리 역사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고구려는 옛 조선의 자랑스러운 단군의 가르침을 물려받고자 나라의 건국이념을 ‘다물’로 정하였습니다. 옛 조선의 정신과 땅을 ‘다물(多勿)’려 받고자 혼신의 노력을 한 고구려의 을밀 조의선인(乙密 皁衣仙人)이 지은 ‘다물흥방가(多勿興邦歌)’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간 것은 법(法)이 되고 뒤에 오는 것은 위(上)가 되는 도다. 법은 나지도 죽지도 않고 위는 귀함도 천함도 없도다.(先去者爲法 後來爲上 故不生不滅 故無貴無賤)”. 지난 과거와 다가올 미래를 똑같이 귀하게 본다는 약 천오백 년 전 한민족의 정신이요 가르치심입니다. 다물흥방가 역시 조의선인들이 합창하던 옛날의 K-팝이었습니다. 고구려의 정신과 땅을 다물하고자 한 잇고자 한 발해 대조영의 후손이며 제삼대 왕 대문예 시대에는 “----백성들에게 천경신고(천부경과 삼일신고)를 가르치니 이로써 홍익인간 정신이 이웃 나라까지 흡족하게 번졌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아마도 최초의 본격적인 한류이었을 겁니다.

현대에는 매일 매순간 지구촌으로 번지는 한류의 덕으로 세계인들이 우리 문화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에서는 미국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를 위시해서 많은 유, 무명인들이 '싸이의 말춤'을 추면서 무대에 등장하기도 하고 개인 SNS에 영상을 올리기도 하였습니다. 최근에는 BTS가 더욱 거세게 세계를 휩쓴 바 있습니다. 주지하는 바대로 BTS 인원 7명 중에서 6명이 글로벌 사이버 대학교의 출신입니다. ‘겨울연가’부터 ‘이태원 클라쓰’ 까지 K-드라마의 한류는 일본을 완전히 점령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한국말과 한글을 익히는 외국 청소년들이 많아졌고 그것은 한글의 확산을 가속화하는 효과를 가지고 오고 있습니다. 세계의 알파벳 중에서 지은이의 이름이 전해 오는 것은 한글이 유일합니다.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께서는 최만리 같은 신하들을 압도하는 탁월한 언어학자였습니다. 국가 브레인트러스트라고 할 수 있는 조선국의 천재집단인 집현전 학자들도 훈민정음 창제에 투입되었습니다. 집현전 학사 시절 신숙주는 훈민정음 창제에 참가하여 명나라를 수없이 왕래하였습니다. 또 다른 천재인 성삼문과 함께 당시 요동으로 유배와 있던 명나라 학자 황찬(黃瓚)을 열 차례 이상 찾아가 자문을 구하였습니다. 당시 황찬은 신숙주의 이해력이 비상함을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세종의 관심과 신숙주, 성삼문를 비롯한 집현전 학자들의 노력은 1446년(세종 28) 훈민정음을 반포하여 조선뿐 아니라 미래의 지구 전체에 영향을 끼칠 역사적인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훈민정음은 제작 연대와 과정, 작성자를 알 수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문자입니다. 세종대왕께서도 ‘이미 존재하던 글자를 참고’하였다는 기록이 있듯이 단군시대 이전부터 녹도문, 옛 전서 등 많은 문자를 가지고 있던 우리 선조들이 공덕도 참고가 된 범인류적인 역사이었습니다.

한류는 결코 몇 가지 노래와 춤이 세계적으로 유행을 탄 단발성 이벤트가 아닙니다. 어마어마한 세월과 노력이 켜켜이 쌓인 한민족의 집단지성이며 한문화의 결정체입니다. 한류는 ‘공든 탑이 쉽게 무너지지 않듯’이 결코 한 순간에 태어나고 순식간에 무너져 사라질 존재가 아닙니다.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약 20년 전에 미국전역을 혼자 다니면서 미국인들에게 천부경을 강연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의 영어실력은 생존영어수준이었으니 철학적이고도 극히 함축적인 천부경을 미국 청중에게 설명하기란 아무리 생각해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는 대성공을 하여 한류 확산에 일조를 하였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인간 본연의 본성을 일깨우는 한민족 발 천부경의 정체성입니다.

최근 한강 씨의 노벨 문학상 수상도 보이지는 않지만 역사가 이루어놓은 와 한류의 숙성 덕분이 분명합니다. K-드라마, K-팝, K-푸드, K-컬쳐 등으로 촉발된 예능 한류가 고급 정신한류, 철학 한류로 진화하여 더욱 큰 생명력을 가지려면 철학, 문화, 역사라는 한민족의 정체성에 관한 바른 정보가 전 지구차원으로 유통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서는 우리 정부의 대통령 이하 장관들, 지도층은 물론 국민과 청소년까지도 외국인들에게 "한국문화의 저력은 홍익인간 이화세계라는 우리 민족의 건국 철학 속에 있습니다. 이 철학으로 세계평화와 인류번영에 기여하겠습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바탕 위에 한국어 교육이 병행하면 상생효과가 크게 생성 될 것입니다. 그런 교육능력과 열정을 길러주는 곳이 바로 글로벌 사이버 대학교입니다.

--- 이 과목 중에 한민족의 정신문화의 원형을 담고 있는 경전으로 <천부경>과 <삼일신고>를 짧게 소개되었는데요. 지금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선도문화학과에서 강의하고 계신데,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과 같은 한민족의 경전이 현 시대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장영주 교수 : 흔히 <천부경>은 조화경, <삼일신고>는 교화경, <참전계경>은 치화경이라고 합니다. 조화경은 하늘 곧 우주의 시작도 끝도 없는 무시무종(無始無終)의 끝없는 순환체계를 주로 숫자로 망라하고 있습니다. 불변의 진리를 형용할 수 있는 가장 근접한 전달 도구는 숫자가 유일합니다.

변화하되 변하지 않는 우주의 시스템을 과연 무엇으로 전할 수 있겠습니까? 진리를 과연 무엇으로 전달 할 수 있을까요. 모두가 부처님의 염화시중의 ‘길 없는 길’을 주장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말이나 글로써 전달될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감정, 정서, 지성 등 인간적인 감각과 그것을 담은 언어나 글은 당연히 변질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발명한 기호 중에 숫자는 가장 변화하지 않는 표현 도구입니다. 한민족은 이 해답을 숫자에서 발견합니다. 국수주의자가 아니라 객관적인 우리 한민족의 위대함입니다.

숫자로 이루어진 천부경이 정확하고도 쉽게 세계인들에게 전달되면 될수록 인류는 더욱 빨리 전체 완성을 향하여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왜냐하면 탈무드처럼 민족적 차별이나 우열을 가리는 요소가 하나도 없고, 더구나 숫자를 모르거나 다르게 해석하는 인종은 없기 때문입니다.

--- 현대의 인류가 개인의 이익이나 인종, 국가, 종교 등 대립하는 상대적 가치를 뛰어넘어 지구를 중심으로 하는 공생의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의식 확장이 굉장히 중요한데요. <삼일신고>에서는 이러한 인간 의식의 성장과 완성에 대해 어떻게 제시하고 있는지요?

 

장영주 교수 : 삶의 목표 인간완성이란 세 단계를 약술하면 자아발견, 자아실현, 자아완성이니 곧 성통공완입니다. 여기까지는 다른 민족에서 탄생 된 사랑, 인, 자비와도 일맥상통합니다만 다른 문화권에서 탄생 된 구원에는 목표는 있지만 목표에 닿는 방법론이 없습니다. 사랑하라, 인자해라, 자비를 베풀라, 음란하지 말라고 등등의 도덕률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감정이라는 것이 마음대로 제어가 됩니까. 그걸 위하여 불교는 한평생을 명상에 바치고 기독교는 늘 죄인이라고 용서를 갈구합니다. 한민족은 선도 수련을 통하여 능히 욕망을 이겨내고 조절하는 몸이 되는 방법론을 제시하는데 그것이 가장 위대한 점이라는 것입니다.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선도문화학과 장영주 특임교수(사진 오른쪽)와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지구경영 이해' 과목 담당 교수인 김지인 박사가 ‘K스피릿과 지구경영’를 주제로 대담을 했다. 사진 김지인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선도문화학과 장영주 특임교수(사진 오른쪽)와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지구경영 이해' 과목 담당 교수인 김지인 박사가 ‘K스피릿과 지구경영’를 주제로 대담을 했다. 사진 김지인

감정을 제어(지감)하려면, 우선 숨을 조절(조식)하고, 감각으로 접하는 정보를 차단(금촉)하여야 한다. 이것은 거꾸로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평소에도 ‘호흡을 조절’하면 ‘감정이 날뛰지 않고’, 감각의 반응을 금할 수 있어서 ‘어떤 자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인류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문제 해결력을 가장 극대화할 수 있는 ‘선도단학’이라는 수련체계가 살아있다는 점이 타 종교나 문화와는 확연히 다른 점입니다.

지감, 조식, 금촉이 제시된 진리 체계인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이 서로를 보완하며 진리로 교화되는 이화세계를 만들어 가는 민족적인 크고 밝은 목표가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그것이 현대화, 세계화된 수련법이 바로 맹렬하게 지구 전체로 펼쳐지고 있는 뇌교육이고 브레인트레이닝입니다.

--- 개인이나 집단, 국가의 이기심이 아닌 공생을 추구하는 새로운 문화, 문명으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그러한 변화를 이끌어갈 새로운 인간관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에게 “성공을 추구하는 삶에서 완성을 추구하는 삶”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삶과 죽음을 잇는 생사관은 그 민족의 정신문화를 대변하기도 합니다. 한민족 선도의 생사관을 공생이란 관점에서 바라볼 때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장영주 : 생사관은 삶고 죽음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우리의 문화는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는 생사여일(生死如一)로 일관합니다. 삶은 완성을 위한 과정이고 죽음은 완성을 이루는 꼭짓점이라고 믿어왔습니다. <천부경>과 <삼일신고>가 완성을 위한 깨달음을 설파한다면 <참전계경>은 생활, 곧 생명 활동 속에서 깨달음을 완성하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평범한 삶 속에서 완성을 이루는 사람들이 진정한 신선(神仙)이지 산속에 은거하면서 바람 타고 날아다닌다는 존재가 신선이 아닙니다. 진정한 신선은 산속에서 도를 닦다가도 나라의 부름이 있으면 달려 나가고, 세상의 위기가 있으면 몸을 던지는 삶의 소유자들입니다. 이것이 개인의 장수를 추구하는 중국 신선술과 다른 한민족의 선도입니다.

우리는 생기를 ‘풀’ 사기를 ‘죽’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풀이 죽었다’는 우리말은 ‘생기가 사라지고 죽음이 찾아왔다’라는 뜻입니다. 생기가 살아나면 ‘생명’이고 사라지면 ‘죽음’입니다. 참된 삶과 죽음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지침서가 곧 <참전계경>입니다. 몸이 살아있어도 전체, 곧 하나(一)를 위한 삶이 아니면 죽음이고, 몸이 죽어도 전체를 위한 죽음이면 영생한다는 깨달음이 한민족의 선도적 생사관입니다. 완성된 최고의 브레인 가치입니다.

전체를 위해 삶과 죽음을 일관하여 효, 충, 도를 아우르며 실천하는 삶이 곧 홍익의 마음과 행동입니다. ‘사람’을 살려 또 다른 생명체인 ‘지구’를 살려 그 위에 터 잡은 생명 모두가 함께해야 할 공생을 위한 공간과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곧 홍익의 지혜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