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윤범모)이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과 공동주최하여 2021년 11월 11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고 있는 화가 박수근의 예술세계를 새롭게 조명하는 대규모 회고전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이 오는 3월 1일까지 열린다.

곧 폐막을 앞둔 회고전을 2월 18일 오전 다시 찾아 관람했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이래 첫 박수근 개인전으로 한국적·토속적 미감 대표작가 박수근과 그의 시대를 재조명했다. 유화, 수채화, 드로잉, 삽화 등 총 174점, 역대 최다 작품과 자료를 전시하여 우리의 눈을 황홀하게 하였다. 화집, 스크랩북, 스케치, 엽서 등 박수근의 그림 공부 자료 100여 점을 통해 박수근이 어떻게 독학으로 화가가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박수근의 회화에 더하여 박완서의 소설, 한영수의 사진과 함께 전후 서울 풍경을 조명하여, 그 시대로 되돌아가게 하였다.

화가 박수근의 예술세계를 새롭게 조명하는 대규모 회고전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이 오는 3월 1일까지 열린다.[사진=김경아 기자]
화가 박수근의 예술세계를 새롭게 조명하는 대규모 회고전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이 오는 3월 1일까지 열린다.[사진=김경아 기자]

 이번 전시를 관람할 때는 그간 알고 있던 화가 박수근을 잊고 그의 삶과 작품과 각종 자료를 통해 새롭게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가 살았던 전후(戰後) 시대상에 주목하면 궁핍한 시대,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예술혼을 불태운 화가를 만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김예진 학예연구사는 기획의 글 ‘박수근과 나목’에서 “그가 살았던 1950-1960년대 한국의 소박한 환경, 그리고 전통 탐구와 현대화의 경계에서 만들어낸 모던한 화풍에 주목하길 권한다”며 “한국전쟁 후 불우한 시대를 묵묵히 견뎌낸 화가가 기록한 시대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독학’, ‘전후(戰後) 화단’, ‘서민’, ‘한국미’네 가지 전시 키워드를 염두에 두고 1부 〈밀레를 사랑한 소년〉, 2부 〈미군과 전람회〉, 3부 〈창신동 사람들〉, 4부 〈봄을 기다리는 나목〉 순으로 관람하면 화가 박수근이 더욱 친근하게 다가올 것이다.

박수근은 아이 업은 소녀, 절구질하는 여인 등 당시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대상을 즐겨 그렸다. [사진=김경아 기자]
박수근은 아이 업은 소녀, 절구질하는 여인 등 당시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대상을 즐겨 그렸다. [사진=김경아 기자]

 1부 〈밀레를 사랑한 소년〉에서 소년 박수근이 화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밀레와 같이 훌륭한 화가’가 되고 싶었던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집안이 기울어 전문적인 미술 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 게다가 병으로 어머니마저 사망했다. 제자의 재능을 알아본 초등학교 담임인 오득영 선생님의 격려로 박수근은 독학으로 그림 공부를 시작하여 18세에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선했다. 밀레의 그림을 찍은 사진을 모아 만든 화집, 조선의 풍속을 담은 그림엽서, 미술 잡지 등에서 독학하는 화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다양한 미술 정보를 섭렵하며 화가로 성장하며 화풍을 완성하는 과정과 박수근 예술의 원천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박수근은 여러 기업과 단체의 사보의 표지화, 삽화를 많이 그리기도 하였다. 그렇게 인쇄된 삽화를 일일이 오려서 만든 삽화집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절구질하는 여인〉 〈멧돌질하는 여인〉 〈기름장수〉 〈노상에서〉 〈빨랫터〉 등의 작품은 당시 풍속을 한국적인 색깔로 표현해 그 시절을 우리 앞에 소환한다.

2부 〈미군과 전람회〉에 들어서면 1953년 제2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특선 수상작 〈집〉이 우리를 맞이한다. 이 특선 수상으로 박수근은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여 국전, 대한미술협회전, 현대작가초대미술전 등 주요 전람회에 참여하며 중견화가의 반열에 올랐다. 독학으로 미술을 배우고, 당시 유행하는 그림도 그리지 않았지만 평론가들은 그를 인정하였던 것이다.

또한 〈樂〉, 〈농악〉, 〈소와 유동(遊童)〉 등 농촌을 소재한 그림, 〈노인〉, 〈할아버지와 손자〉 등의 작품도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박수근의 대표작 〈나무와 두 여인〉을 의자에 앉아서 감상할 수 있다. 낙엽을 모두 떨구고 벌거벗은 채로 겨울 찬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나무 사이로 아이를 업은 여인이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바삐 가는 여인에게 뭔가를 말하는 듯하다.

창신동 시절 박수근 가족. [사진=김경아 기자]
창신동 시절 박수근 가족. [사진=김경아 기자]

이어 박수근의 미군 PX 초상화가 시절과 용산미군부대(SAC) 도서실에서 열린 박수근 개인전(1962)을 소개한다. 개인전에 출품한 〈실직〉, 박수근이 직접 작성한 이력서 등을 볼 수 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박완서의 소설 《나목》을 매개로 박수근이 견뎌낸 참혹한 시대를 공감할 수 있는데, 박완서는 전쟁 후에는 미군부대 내 PX에서 일하면서 그곳에서 초상화를 그리던 박수근을 만났다. 박완서는 나중에 박수근을 모델로 한 소설 《나목》으로 소설가로 등단했다. 《나목》에는 박수근의 그림 〈나무와 두 여인〉을 묘사한 내용이 들어있다. 이곳에서는 박완서의 소설책 《나목》 등을 볼 수 있다.

3부 〈창신동 사람들〉은 박수근이 정착한 창신동을 중심으로 가족, 이웃, 시장의 상인 등 그가 날마다 마주친 풍경을 담은 작품들을 소개한다. 박수근은 1952년 10월 무렵부터 1963년 11월까지 창신동에 살았다. 창신동은 동대문시장에서 가까워 일찍부터 서민들이 모여 살았고, 전쟁 후에는 피난민들도 정착하여 함께 살았던 곳이다. 작업실이 따로 없는 박수근은 마루에서 작업을 했고, 가족뿐만 아니라 집을 나서면 마주치는 이들을 화폭에 담았다. 〈행인〉 〈시장의 사람들〉 〈노점의 행상〉 〈귀로〉 등 당시 사회상을 볼 수 있는 작품이 많다.

박수근의 그림과 함께 당시 시대상을 담은 한영수의 사진이 전시되어, 역사상 가장 가난했던 1950-60년대를 살았던 한국인을 따스한 시선과 모던한 감각으로 표현한 예술가의 미덕을 발견할 수 있다.

박수근의 그림이 인기리에 매매된 곳이 반도화랑이었다. [사진=김경아 기자]
박수근의 그림이 인기리에 매매된 곳이 반도화랑이었다. [사진=김경아 기자]

 4부 〈봄을 기다리는 나무〉에서는 박수근이 완성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찾아본다. 박수근이 평생 여성과 나무를 즐겨 그렸다. 농악, 할아버지 등을 소재로 하여 그가 그린 작품이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그의 그림에서 여성들은 일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 모습에서 강인한 생명력이 품어져 나온다. 고단한 노동을 하는 여성과 잎사귀를 다 떨군 나목은‘추운’시대를 맨몸으로 견뎌낸 한국인의 자화상일 것이다. 아무리 혹독한 추위가 몰아쳐도 결국에는 봄이 온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곳에서는 박수근의 그림이 인기리에 매매된 반도화랑과 그의 그림을 수집한 외국인들을 볼 수 있다. 외국인들은 반도화랑에서 박수근의 그림을 구입하여 귀국했다. 그 뿐만 아니라 물감과 캔버스를 사주거나 그림 판매를 주선하고 해외 전시를 열어주기도 했다. 박수근이 전업작가로 활동할 수 있게 해준 이들이었다.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 전시 광경. [사진=김경아 기자]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 전시 광경. [사진=김경아 기자]

 

 

전시 관람을 마치면 밖에서 보여주는 영상자료는 박수근을 좀더 깊이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오는 3월 1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리는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 회고전은 다시 보아도 감동과 긴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