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로서 자신의 청춘을 뜨겁게 불태워봐야 하지 않겠어요?” 30대 IT업계 팀장이던 강태윤 씨는 2005년 제주 청년캠프에서 들었던 트레이너의 말이 가슴에 남아 인생의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다.

국가공인 브레인트레이너 강태윤 원장(단월드 창동센터)은 IT전문가였던 30대 시절 브레인명상을 통해 진짜 꿈을 찾았다. [사진=김경아 기자]
국가공인 브레인트레이너 강태윤 원장(단월드 창동센터)은 IT전문가였던 30대 시절 브레인명상을 통해 진짜 꿈을 찾았다. [사진=김경아 기자]

고등학생 때 과학을 잘 했고 좋아해서 과학자의 꿈을 안고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동기들이 이제 막 시작된 대한민국 IT업계로 진출했는데 1년 휴학을 한 그가 막상 취업할 때 외환위기(IMF)사태가 벌어져 한동안 보습학원 강사를 했다.

한참 후 친한 선배의 창업을 돕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IT업계에서 일했고, 열정을 다 바친 회사가 정상궤도에 올랐다. 그러자 회사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이유로 동종업계 베테랑 조직을 사내로 들여 기존 직원조직과 경쟁하게 했다.

강태윤씨는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강하고, 한 달간 공들인 프로젝트를 실수로 다시 해야 하는 업무성격 탓에, 쉽게 예민해지고, 회사 내 팀별 경쟁으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었다고 한다. “하루 종일 뇌가 멈추질 않았죠. 새벽5~6시까지 정신이 말똥말똥하니 불면증에,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로 일어났어요. 낮에는 커피로 긴장감을 유지하니 소화도 되지 않고 두통은 끊이질 않더군요. 나중에는 요통으로 허리가 끊어질 듯 했어요.”

같은 증상을 겪던 친구가 자신은 단월드에서 새벽 브레인명상을 하고 출근하는데 건강해졌다고 그에게 계속 권했다. 그 권유를 흘려듣고 2년이 지났을 때 그는 정형외과, 한의원을 전전하게 되었다. 노량진에 있는 3대가 한의사로 있는 한의원을 찾았다. 할아버지 한의사는 “몸이 워낙 차고 순환이 안 돼서 연쇄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그것이 오랫동안 쌓여 침을 맞거나 한약을 먹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약은 지어주겠지만 단전호흡과 명상을 해봐라.”라고 했을 때 비로소 친구의 조언이 떠올랐다.

단월드에 찾아간 그는 새벽6시 정규시간에 꼬박꼬박 나가면서 한 달 반 만에 점차 몸이 정상으로 돌아왔고 “브레인명상을 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10분 만에 잠이 들어 한 번도 깨지 않고 아침에 눈을 떴는데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어요.”

심성교육, 지금은 힐러교육 과정으로 전환된 당시 NHS교육 등을 받으면서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여 자신의 내면 목소리를 들어주고 진심으로 사랑하는 법을 익혔다.

“제가 잘 해야만 된다는 강박증에 사로잡힌 원인도 알게 되더군요. 부모님이 딸 셋을 낳고 아들, 그리고 딸을 낳았죠. 제가 셋째 딸인데 증조할머니가 ‘남동생 먹을 젖을 빼앗아 먹는다.’고 그렇게 혼내셨대요. 호랑이 같은 분이어서 부모님은 거역할 수 없었고, 잠시 한 달 간 할머니와 함께 친척집에 가게 되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잘 해야 한다는 불안감이 항상 있었어요.”

그는 계속 브레인명상을 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찾고 스스로 원하는 삶으로 바꿀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뇌교육 지도자에 관해 관심을 가졌다. “해보고도 싶지만 힘들게 유지하는 지금의 성과를 놓치고 싶지 않아 망설였죠. 돈을 많이 벌어 후원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브레인명상을 하던 그는 내면에서 ‘더 이상 지금처럼 살고 싶지 않아.’라는 내면의 목소리에 통곡처럼 울음이 터져 나왔다.

국가공인 브레인트레이너인 강태윤 원장(단월드 창동센터)은 “자신이 잘하고 좋아한다고 그게 바로 꿈은 아니더군요. 과학자가 제 꿈인 줄 알았는데 브레인명상을 하면서 비로소 사람들과 교류하고 사람들에게 좋은 변화를 이끌어주고, 세상에 가치 있는 사람이 되는 걸 제가 정말 원하고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강태윤 씨는 자신에게 본격적인 변화의 계기를 준 청년캠프에서 뇌교육을 창시한 이승헌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총장을 만났다. 그때 뇌교육의 시초가 된 주민대상 공원 지도를 해보라는 미션을 그는 실천했다.

산 중턱에 있는 시민공원에서 자신이 배운 체조와 기공을 지도했다. 에어로빅반, 생활체조반, 배드민턴반 등 여러 그룹이 있었는데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그가 지도하는 기체조반 주민들이 공원을 꽉 채울 만큼 늘었다. 그때 새로운 가능성의 자신을 발견했고, 세상에 가치 있는 존재로서 우뚝 선 기분이었다고 한다.

지난해 회원들과 함께 한 야외명상. 강태윤 원장은 코로나19상황이 종식되어 회원들과 자연을 마음껏 누릴 때를 기다린다고 했다. [사진=본인제공]
지난해 회원들과 함께 한 야외명상. 강태윤 원장은 코로나19상황이 종식되어 회원들과 자연을 마음껏 누릴 때를 기다린다고 했다. [사진=본인제공]

뇌교육지도자 교육을 마친 후 부원장으로 발령을 받아 원장님과 치열하게 노력해 회원으로 북적이는 센터를 만드는 일을 했다. 한번은 발령난 센터에서 성장해 주민센터 국학기공반 수련지도를 하던 회원이 사정상 하지 못하게 되었다. 국학기공 강사 자격이 있던 그가 센터 정규수련이 없는 시간대에 나가 주민들과의 약속을 지켰다.

10여 명 안팎이던 회원은 40여 명으로 늘었고, 국학기공반 반장님은 앞장서서 기공과 명상에 대한 주변의 편견을 나서서 깨주었다. 당시 행정기구 재편으로 동이 통합되면서 국학기공반을 폐쇄하기로 했다. “회원이던 할머님들이 국학기공반을 없애면 주민센터 어느 프로그램도 하지 않겠다고 강경하게 나서셨어요. 동장님도 곧 받아들여주어 유지하게 되었죠. 그렇게 신뢰를 보내준 어르신들은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강태윤 원장은
강태윤 원장은 "회원들의 성장과 함께 하며 자신도 성장하고 있다"라며 회원들에게 엄지 척 포즈를 했다. [사진=김경아 기자]

그가 원장 발령을 받을 순간이 왔다. 그때 여러 사정으로 자신이 부원장으로 있던 센터가 아니라 구미 인동센터로 가게 되었다. “연고가 없는 곳에 가게 되어 두렵고 눈물을 나더군요. '잘하지 못해서 여기로 왔나? 힘든 센터로 왜 내가 왔지?'라는 저에 대한 부정, 인정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저를 이끌어주던 원장님이 ‘네가 처음부터 대형센터를 맡으면 아무리 잘해도 빛이 나지 않고 오히려 부담감 때문에 실패할 수 있다. 네가 쌓아놓은 크레딧이 아직 부족하다. 네가 그만한 경영능력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저의 인식을 바꾸어 주셨고, 그 때 저는 오히려 감사함이 들었고,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인식으로 바꾸었어요”

인동센터는 회원출석이 많지 않았다. 새벽에 회원들과 명상을 하고, 21일간 1천배 절명상을 하면서 간절하게 사람들의 온기가 가득한 센터를 바랐고 그 마음으로 움직였다. 그의 정성은 회원들에게 통했고 회원이 회원을 도우며 성장하는 경험을 했다. 서울에서 근무할 때 잠깐 만난 적이 있던 사범님이 그를 돕기도 했다. 군 장성대상 기공수업을 하고 센터 내에서 강사를 양성했다. 보건소 등에 국학기공과 뇌교육을 알리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쁨을 얻었다.

그는 자신이 일한 도시에서 생활체육관련 기금을 지원하는 데도 행정적 준비가 부족했던 지역 국학기공협회의 일을 실질적으로 지원하기도 했다. “여러 상황을 겪으면서 얻은 것도 많은데 제가 인재를 성장시키는 과정이 촘촘하지 못하다는 걸 느꼈어요. 그런 시냅스가 제 뇌에 만들어지지 않아서 멘토를 찾았어요. 그랬더니 베테랑 부지역 대표님을 만나 회원성장의 감각을 터득하고 인재양성 과정을 운영하며 신나게 일했어요.”

강태윤 원장이 회원들과 지구사랑 인간사랑을 실천하는 지구시민운동에 참여한 모습. [사진=본인 제공]
강태윤 원장이 회원들과 지구사랑 인간사랑을 실천하는 지구시민운동에 참여한 모습. [사진=본인 제공]

그러다 어느 순간 매너리즘에 빠졌음을 느꼈다. “제가 한계에 갇혀있다는 걸 느꼈어요. 이미 심성 트레이너, PBM트레이너였지만 뇌교육 분야의 완전 전문가가 되고 싶은데 부족한 느낌이어서 저를 이끌 분을 찾았습니다.”

서울 강북지역 공릉센터에 발령받으면서 PBM마스터 트레이너인 지역대표를 만났다. 회원교육을 위해 PBM교육 과정에 참석할 때마다 한동안 긴장했다.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깨어나는 걸 돕는 조 트레이너로서 놓치는 부분이 없도록 마스터트레이너는 원리가 자각될 때까지 철저하게 트레이닝을 시켰다. 어느새 마스터트레이너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금방 알아차릴 정도가 되었다.

강태윤 원장은 “제가 만난 팀장 중에는 역량이 뛰어나셔서 제가 그걸 복사할 때도 있었고, 여러 사정으로 센터 내부 회원관리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 제가 직접 한 명 한 명 만나면서 방법을 창조해야 할 때도 있었어요. 단월드의 전체적인 흐름에 맞춰가야 하는데 그런 가운데서 찾아보면 제가 마음껏 역량을 발휘하고 영역을 넓힐 수 있는 분야가 많습니다.”라고 했다.

기자가 센터 경영에 관한 신념을 묻자 강 원장은 “뇌교육의 기반은 홍익정신입니다.홍익정신을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 저와 함께 홍익을 실천할 인재를 만들려면 신입회원이 들어와야 하고, 회원들의 건강부터 정신적 성장까지 이끈 다음에는 활동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센터 경영자인 원장의 역할이라고 봅니다.”라고 소신을 밝혔다.

그는 “성장한 회원들이 외부에 나가 에너지를 확산할 수 있는 활동 기회를 만들어 주고, 그 사람들이 다시 홍익활동을 통해 새로운 성장 리더들을 만들어 내면 자연스럽게 센터가 커지게 됩니다. 그래서 지도자의 역할은 회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활동의 장을 연결하고, 활기찬 에너지를 펼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라고 했다.

현재 창동센터로 발령받았을 때 여러 분야에서 뇌교육을 펼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강태윤 원장은 공교육분야에 뇌교육을 접목하고자 하는 뇌교육 교사 등 활동가들과 활발하게 구상을 하고 있다. “뇌교육은 학교, 직장, 문화센터는 물론 다양한 분야에 접목할 수 있고 활동영역은 무궁무진합니다. 그것을 개척하면서 회원들과 함께 성장하고 있죠.”

그는 “회원의 성장 하나하나가 제 성장의 기회가 됩니다. 회원과 소통하면서 코칭에 대한 자신감이 커지죠. 물론 시행착오도 있습니다. 체득한 뇌교육 원리로 코칭을 하면 성공하는데 충분한 자신감 없이 코칭을 하면 여지없이 실패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또한 외면하지 않고 성장을 위한 경험으로 만듭니다.”라고 솔직한 체험을 전했다.

강태윤 원장은
강태윤 원장은 "60대까지 단월드에서 뇌교육전문가로 활동하고, 그 이후 120세 인생 컨설턴트가 되겠다"고 자신의 꿈을 밝혔다. [사진=김경아 기자]

강태윤 원장은 자신의 경험에 관해 “저는 좋은 환경이 사람을 성장시키고, 성공하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경험해 왔습니다. 회원들의 건강과 성장을 위해 정성을 다하면 그것은 마치 저축하는 것과 같아서, 언젠가는 돌아온다는 경험을 통해, 지금, 현재, 이곳에서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 신념이 되었습니다. 한 센터에서 정말 정성을 다해 성장을 도왔던 회원이 있었는데, 제가 인사이동을 한 이후에 그 회원의 가족을 소개시켜주었고, 그 분의 성장을 도왔던 일도 있었죠. 그런 경험을 가끔 제 후배 지도자들에게 이렇게 얘기해주곤 합니다. 당장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지금 있는 그곳에서 최선을 다하면, 그 회원이 당신을 기억할 것’이라고 이야기 하곤 합니다. 자신이 있는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창조하라고 하고 싶습니다. ”라고 했다.

그의 꿈은 무엇일까? 강태윤 원장은 “끊임없이 브레인트레이닝을 하며 성장하여 자유롭고 틀이 없는 품이 넓은 지도자가 되고자 합니다. 60대까지는 단월드 원장을 하려고 하고요. 그 이후에는 120세 인생 컨설턴트가 되고 싶습니다. 아이 교육부터 직업컨설팅, 노후 컨설팅까지 코칭하고 돕는 일을 하고자 합니다.”라며 자신이 찾은 진짜 꿈을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