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는 꿈이 없었어요. 30대 때에야 비로소 한의사가 되어 낙후된 시골에서 남들을 돕고 싶었죠. 그때는 할 수 없는 상황이라 포기했는데 환갑일 때 제가 간절하게 바라던 걸 하고 나니 홍익하고 싶은 꿈을 새로 갖게 되었네요.”

이분순 씨는 브레인명상을 하면서 자신의 꿈을 찾았다고 한다. [사진=김경아 기자]
이분순 씨는 브레인명상을 하면서 자신의 꿈을 찾았다고 한다. [사진=김경아 기자]

포근하고 넉넉한 품을 가진 교감선생님과 같은 인상을 가진 이분순(64) 씨. 그는 브레인명상을 하면서 조급했던 성격도 느긋해지고 어떤 일을 시작할 때 두려움이 없어졌다고 한다.

“예전에 성격이 무척 급한 편이었죠. 특히 운전을 하면서 ‘욱’하고 화가 치밀 때가 있는데 남편이 그만 하라고 호통을 친 적도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PBM(파워브레인메소드) 교육을 갖다온 후에는 누가 차 앞에 끼어달라는 신호를 하면 ‘얼마나 급한 일이 있으면 저럴까’라고 이해가 되고 기꺼이 양보하게 되더라고요. 감정조절도 잘 되고요. 저도 제가 변한 모습에 깜짝 놀랄 때가 있어요.”

이분순 씨는 어린 시절 가난한 살림에 맞벌이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어린 동생들을 모두 챙기며 공부하고 직장을 다녀야 했다. 동생들에게 ‘빨리 빨리’를 외치며 살다보니 마음은 늘 조급하고 여유라곤 없었다. 그러다 보니 꿈을 생각할 틈조차 없었다.

남편도 부모님을 일찍 여의어서 결혼할 당시 그와 남편은 거의 맨손으로 시작한 것과 다름없었다. 정육점을 운영했는데 잘 될 때는 일주일에 돼지 18마리가 들어올 때도 있었다. “요즘은 다 부위별로 가공해서 정육점에 들어오지만 그때는 통으로 들어오면 발골사(식육처리가공업자)를 불러 작업을 하던 때였죠.”

여자의 몸으로 통돼지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옮겨야 되니 허리와 어깨, 고관절과 무릎까지 통증을 달고 살았다. 치열하게 살았는데 가장 힘든 것은 경제적 기복이 너무나 심하다는 것이었다. 잘 될 때 기준으로 준비했다가 가격이 폭락하거나 2010년 구제역처럼 갑자기 수요가 줄거나 하는 등 격차가 심했다.

30대 중반 그는 더 늦기 전에 한의사가 되는 꿈을 이뤄보고 싶었으나, 남편은 일언지하에 안 된다고 했다. “당시 형편상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으니까 금방 수긍했어요.”

그 후로도 경제 사정에 따라 좋을 때도 있었지만 안 좋을 때는 아르바이트를 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러는 동안 몸이 점점 더 나빠져 한의원, 정형외과를 다니며 많은 시간과 돈을 쓰던 그는 동생의 권유로 단월드 창동센터에서 브레인명상을 시작했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몸이 좋아지는 게 금방 느껴지니 얼굴도 밝아졌죠. 6개월 후에는 몸도, 마음도 다이어트를 하게 되었죠.”

재작년 마스터힐러 과정을 마친 이분순 씨가 자신이 좋아하는 브레인명상 체조를 선보였다. [사진=김경아 기자]
재작년 마스터힐러 과정을 마친 이분순 씨가 자신이 좋아하는 브레인명상 체조를 선보였다. [사진=김경아 기자]

그는 심성교육과 PBM교육을 받았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가게와 집을 오가기만 하던 제 삶이 즐거워졌어요. 특히 PBM교육 때 밝게 빛나는 태양이 제 안에 있다는 걸 안 건 정말 큰 기쁨이었어요.

교육에서 뇌교육 5단계 중 제 자신과 감정을 분리하여 감정을 지우는 뇌정화하기 단계를 경험했어요. 하나씩 하나씩 지우다보니 나중에는 텅 빈 느낌이 들더군요. 오랫동안 감정과 함께 얽혀있던 기억들도 감정을 먼저 분리시키니 뇌가 중요한 기억이 아니라고 판단했나 봅니다. 그 기억들도 없어지더군요.”

남편도 얼굴이 좋아지는 아내를 따라 곧바로 브레인명상을 했다. “심성교육, PBM교육에 이어 추천을 받고 국학원 민족혼 교육을 갔다 오더니 입이 귀에 걸려서 오더군요. 저도 예전부터 태극기만 보면 뭔가 뭉클 하곤 했는데 남편도 한민족의 정체성과 긍지를 체험하는 교육이 좋았나봅니다.”

남편은 그보다 먼저 마스터힐러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이분순 씨는 “남편과는 사실 성격이 잘 맞지 않은 편이었어요. 심지어 수건 짜는 방향도 달랐을 정도였죠.(하하) 그런데 남편이 브레인명상을 시작하고 힐러 교육을 받을 때까지 1년 6개월간 서로가 얼마나 잘 맞고 편안했는지 몰라요. 변화하는 남편을 보면서 저도 하고 싶었지만 그땐 못했죠.”라고 했다.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작은 정육점 사정은 더욱 어려워졌고 몇 년 동안 브레인명상을 하지 못했다. 그 사이 정육점을 접고 남편과 함께 장애인활동지원사로 활동했다. “남편이 먼저 시작했고 뒤이어 저도 했어요. 예전 같으면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게 힘들었을 텐데 왠지 브레인명상을 한 후로 두려움이 없어서 시작할 수 있었죠.”

지구사랑 인간사랑을 실천하는 지구시민강사로 맹활약 중인 이분순 씨. [사진=김경아 기자]
지구사랑 인간사랑을 실천하는 지구시민강사로 맹활약 중인 이분순 씨. [사진=김경아 기자]

그가 맡은 젊은 장애인은 전신마비로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통상 욕창이 생기지 않게 몸을 돌려주거나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한 범위에서 돕는다. 그는 단월드 센터에서 배운 브레인명상 체조, 활공법 등을 적용했다. 발까지 뻣뻣해진 젊은이의 다리를 정성껏 주무르고 두드리고 흔들어 주다보니 한 달 후에는 발을 조금씩 움직일 정도까지 풀렸다.

이분순 씨의 노고에 보호자들은 감사해했다. 한 중학생 아이를 맡았을 때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 침대에 엎드려있는 아이가 함박웃음을 보이자, 아이 어머니는 “우리 아이가 엄마보다 선생님을 더 따르고 기다리네요.”라고 했다. 그러나 때로는 보호자들의 말과 행동에 상처받기도 했다.

몇 년 지난 후 이분순 씨는 마스터힐러 교육을 꼭 가고 싶어졌다. “30대 때 꿈은 접었지만 마스터힐러 교육은 정말 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남편에게 ‘그냥 이렇게 지내면 몸이 안 좋아 금방 죽을 것 같다. 힐러 교육을 받으면 당신하고도 좋아질 것 같다.’고 했어요. 브레인명상을 하지 않던 수년 간 예전처럼 서로 성격이 맞지 않는다고 반목하고 지낸 시간이 있었어요. 사실 남편이 교육받을 당시 행복하게 변화했던 모습을 아니까 이번엔 제가 변화해서 남편을 바꿔보리라는 마음도 있었어요.”

남편은 정말 하고 싶은지 몇 번을 확인하더니 그를 지원하겠다고 했다. “여유로운 상황이 전혀 아니었는데 남편은 본인이 힐러 과정을 거치면서 좋았던 걸 제게도 해주어야겠다고 크게 결심한 것 같았어요. 교육받을 여건도 마련해주고 편하게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죠. 교육 후 조금씩 변화해가는 제 모습을 응원해주는 남편과의 관계도 좋아졌고 이제 많이 소통하고 대화합니다. 최근에는 바빠서 잘 챙겨주지 못했는데 미안하죠. 앞으로도 서로서로 격려하며 성장할 겁니다.”

환갑에 마스터힐러 과정을 마친 그는 장애인활동지원사 활동과 함께 지구시민 강사로 맹활약을 하고 있다. 건강과 관련한 유통사업에도 참여했는데 하나하나 본인과 가족이 체험하고 자신이 있을 때 비로소 전한다.

지난 해 단월드 창동센터 회원들과 주민에게 셀프힐링법을 전하는 BHP봉사단으로도 활약해 도봉구민 1만 명에게 BHP건강법을 전한 주인공들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이분순 씨는
이분순 씨는 "지구시민 강사뿐 아니라 국학기공 강사로 많은 사람들 앞에 서고 싶다. 브레인명상으로 건강과 함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에게 새로운 꿈은 무엇인가? 이분순 씨는 “제가 브레인명상을 하던 초창기 국학기공 강사 자격을 취득하고 새벽공원과 주민센터에서 사람들에게 건강법을 전하며 힘차게 구령을 외쳤을 때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았어요. 현재 지구시민 강사로도 열심히 활약하겠지만 국학기공 강사로도 다시 많은 사람들 앞에 서고 싶습니다. 브레인명상으로 건강과 함께 삶을 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라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