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하듯 살지 않고 의미 있게 사는 법을 배웠다”
“소비하듯 살지 않고 의미 있게 사는 법을 배웠다”
  • 강나리 기자
  • heonjukk@naver.com
  • 승인 2020.07.14 07: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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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우성철강 대표 신승한 씨의 위기극복 터닝포인트

탄탄한 중견기업을 성공적으로 경영하던 신승한 대표(우성철강 주식회사)에게 2008년 하반기는 어둠의 터널이었다. 그해 상반기까지 중국은 SOC분야를 확장하면서 한국과 일본에서 철강을 무한대로 흡수하는 공룡과 같았다. 그러나 하반기 중국 정부가 나서서 경기억제정책을 펴면서 가격은 폭락하고 재고를 처리할 방법이 없었다.

기업을 경영하는 신승한 씨는
기업을 경영하는 신승한 씨는 "브레인명상을 통해 경영 위기를 극복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고 했다. [사진=김경아 기자]

신승한 씨에게 사업은 삶의 중심이었는데 위기 앞에 방황하고 두려움과 불안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을 만큼 힘겨웠어요. 하지만 가족은 물론 형제들이 경영하는 회사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죠.”라고 했다.

새벽 2~3시까지 술을 마시고 잠깐 잠이 들면 5~6시에는 깨어나 TV를 켜고 의미 없는 시간을 보냈다. 7시 경 다시 잠들면 회사에 출근할 시간이 다 되어 허겁지겁 서둘렀다. 컨디션은 엉망이고 더욱더 길이 보이지 않자 자신이 술에 의존하고 있다는 게 뚜렷하게 느껴졌다. ‘이대로는 큰일 나겠다. 명상을 해보면 마음의 안정이라도 찾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알아보았다.

“알고 보니 제 동생도 CPA(공인회계사) 시험을 준비하면서 브레인명상을 했고, 제가 평소 신뢰하고 존경하는 사촌형도 단월드 평생회원이라며 제게 진심으로 권했어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대이센터를 찾아갔죠.”

브레인명상으로 2008년 최대 위기를 넘기고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찾은 신승한 대표(우성철강). [사진=김경아 기자]
브레인명상으로 2008년 최대 위기를 넘기고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찾은 신승한 대표(우성철강). [사진=김경아 기자]

당시 원장은 그에게 일대일 명상지도를 해주었다. “제가 간 시간에 다른 회원들이 없는 게 이상할 만도 한데 그걸 신경 쓸 여유조차 없었죠. 원장님은 제가 올 수 있는 시간에 맞춰주었어요. 특별관리 비용도 받지 않고요. 돌이켜보면 제 상태를 보고 측은지심으로 살려야겠다고 하신 거죠.”

그는 매일 아랫배 단전을 힘차게 두드리며 ‘뇌파진동 명상’을 했다. “아이가 아닌데 머리를 ‘도리도리’ 흔드는 게 낯설어 거부감이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후회와 걱정, 두려움이 차츰 가라앉더군요. 계속 일어나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하고 자신을 믿는 연습을 하게 하셨죠. 또 항상 차갑던 배가 따뜻해지면서 변화가 오더군요. 명상이후 처음 느낀 건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다는 거였어요. 먹는 걸로도 채워지지 않던 허기가 사라지고 에너지가 충전된 거죠. 그리고 몸에 좋지 않은 음식에는 저절로 거부감이 들어 탄산음료도 끊게 되었죠. 몸이 정상으로 회복되면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하더군요.”

신승한 씨는
신승한 씨는 "뇌파진동 명상을 하면서 늘 사업이 최우선이었는데 제게 정말 중요한 건 가족과의 작은 행복이란 걸 알게 되었죠."라고 했다. [사진=김경아 기자]

한 달 반이 지날 무렵, 신승한 씨는 뇌파진동 명상을 하는 도중 새로운 경험을 했다. 명상 중 가족과 백사장에서 손에 손을 잡고 강강술래를 하는 모습이 뇌 속에 떠오른 순간 너무나 행복했다. “가슴 가득 환희심이 일었습니다. 늘 사업이 최우선인 줄 알았는데 제게 정말 중요한 건 가족과의 작은 행복이었어요. 그 순간 폭포수처럼 눈물이 쏟아지더군요. 그것이 저에게 정화작용을 일으켰습니다.”

곧 바로 심성교육에 참가했고 그는 자신에게 끝까지 묻는 과정에서 자신이 늘 원하던 게 ‘자유’라는 답을 찾았다. 어릴 적 아버지 사업 때문에 자주 이사를 다녀야 했던 그는 오랜 친구를 사귀기 어려워 외로웠다. 그래서 친구들과 잘 지내는 법을 일찍 터득하고 사교적이 되었다. 하지만 자의식이 깨어난 고등학교 때부터 왜 사는지 삶의 목적에 대한 고민도 많고 세상에 대한 불만, 환경에 대한 원망들로 일기장을 채우며 자유를 갈망했다.

그는 대학에서 무역학을 전공했지만 강의실에서 배우는 지식들이 의미가 없었고 친구의 대학을 찾아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더 좋았다. “제가 직장생활을 하지 않고 곧바로 아버지 사업을 제가 하겠다고 나선 것도 조직사회에 얽매이기 싫어서일 겁니다.”

당시 건실한 철강회사를 경영하던 아버지가 건설업으로도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1996년 자회사인 건설회사가 부도가 나면서 연쇄적으로 철강회사까지 위태해졌다. 아버지는 회사를 정리하겠다고 했지만 둘째 아들인 신승한 씨가 나섰다.

그는 대학입학 후 매번 방학 때마다 아버지 회사에서 철강을 운반하고 선별하는 일을 도왔고, 군 입대 전 10개월 간 근무한 적도 있었다. “아버지가 30년 간 경영하면서 신뢰를 쌓아왔기 때문에 타 업체와의 경쟁 없이 꾸준히 수주를 해주는 회사도 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회사가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데 단 1%의 의심도 없었죠. 여러 위험한 상황도 있었는데 그걸 몰랐기 때문에 더 용감했던 겁니다.”

신승한 대표는 브레인명상을 통해 한계극복의 체험을 한 후 4년 전부터 수산전문 가공공장 (주)한얼물산을 창업해  2개 업체를 경영한다. [사진=본인 제공]
신승한 대표는 브레인명상을 통해 한계극복의 체험을 한 후 4년 전부터 수산전문 가공공장 (주)한얼물산을 창업해 2개 업체를 경영한다. [사진=본인 제공]

26살의 신승한 씨는 대리라는 직함으로 철강회사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회사에 와보니 아버지가 다른 사람에게 맡겨 놓은 동안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쓸데없는 비용지출도 많았고, 근무시간에도 한쪽에서 노름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방만하던 관리를 차근차근 체계를 잡아 정상화시키는데 전력을 다했다.

1년 반이 지났을 때 외환위기가 찾아왔다. 그러나 수출에 주력하던 철강회사에는 호재였다. 달러로 대금을 받는데 환율이 오르니 수익은 그만큼 큰 폭으로 증가했다. 그 덕에 우성철강도 여러 수혜를 받게 된 시기였다. “제가 회사에서 가장 오래 달았던 직함은 과장이었죠. '신 과장'이 아주 익숙했어요. 그 이후 저도 회사 내에서 계속 승진했고, 회사도 10여 년 간 승승장구 했습니다.”

스스로 성공을 일구어냈지만 자유롭지는 않았다. “자신만의 독선을 가진 채 환경에 대한 불만을 품고 살았죠. 부딪힘은 아예 피하거나 아니면 강하게 맞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았어요. 겉으로는 풍요로워 보이는데 실상 매일 거래처와의 술자리, 골프 약속 등 원하지 않는 자리에도 가야했죠. 제가 가진 것들을 잃을까봐 괜한 두려움과 불안함 때문에 억지로 끌려 다니기 일쑤였고 당당해지기보다 전전긍긍하던 삶이었습니다. 게다가 가족들에게 권위적이고 독선적이었어요.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이끌다 보니 감정조절이 안 되어 다투고 화를 참지 못해 상처를 주고 제 자신도 상처를 받는 일이 많았습니다.”

신승한 씨는 지구시민운동, 국학운동 등 NGO활동에 주력하고 포항국학기공협회장으로 활약 중이다. [사진=본인 제공]
신승한 씨는 지구시민운동, 국학운동 등 NGO활동에 주력하고 포항국학기공협회장으로 활약 중이다. [사진=본인 제공]

신승한 씨는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자유가 어떤 것인지 PBM(Power Brain Method: 파워브레인 메소드) 교육에서 실제로 경험했다. “뇌교육 5단계 중 뇌 통합하기 과정에서 ‘나는 용기있는 사람이다!’라고 외칠 때 제 스스로 그 말이 100% 인정되더군요. 한계나 장애는 뇌 속 정보일뿐 무엇이든 창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차오르니 무한한 자유 그 자체였죠. 너무나 가슴이 뜨거워서 가만히 있을 수 없을 정도였어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두근합니다.”

그는 회사에 있을 때보다 대이센터 지도자, 회원들과 지구시민운동, 국학운동 등 NGO활동과 BHP건강법 보급 등 봉사활동을 할 때가 더 좋았다. “회사에서 집중하는 시간을 꼼꼼히 따져보니 그렇게 길지 않았습니다. 쓸데없이 자리를 지키기보다 나와서 뇌교육 전문트레이너로 활동하는 게 더욱 보람 있고 가치 있다는 판단이 들었죠. 그래서 전화를 통해서도 충분히 관리할 수 있도록 전환했습니다.”

포항국학기공협회 회장인 신승한 대표는 지난해 상반기 구룡포중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성스포츠이자 브레인스포츠인 국학기공을 지도했다. “교감선생님이 정말 좋아하셨어요. 문화체험이 적은 농어촌지역인데다가 경제여건이 어렵고 한부모 가정, 조손가정이 많았죠. 학생들이 국학기공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게 되니 스스로 담배를 끊더라고 담당 선생님도 말씀하셨어요. 지금은 선생님이 열정적으로 직접 가르칩니다.”

신승한 씨는 지역 청소년에게 국학기공을 지도하고 인성강의를 하는 활동을 한다. [사진=본인 제공]
신승한 씨는 지역 청소년에게 국학기공을 지도하고 인성강의를 하는 활동을 한다. [사진=본인 제공]

얼마 전 그는 구룡포중‧고등학교에 인성교육 강의를 나갔다. “국학기공 동아리에서 만났던 아이들이 너무나 반갑더군요.” 그는 자신이 기업을 운영하는 지역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인재로 성장하도록 돕고자 하는 뜻이 있다.

그가 대외활동을 한다고 사업에 지장이 생기지 않았다. “브레인명상을 하면서 제가 한계를 넘을 수 있다는 걸 알고 4년 전부터 새롭게 수산전문 가공공장 (주)한얼물산을 창업해 두 업체의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사업상 관계도 개선되었다. 스스로 자신감과 신뢰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선택한 것에 대해 책임지는 당당한 행동으로 그는 포용하는 관계를 맺고 있다.

건강 면에서도 급성으로 온 목 디스크가 회복되어 지난 10여 년간 전혀 후유증 없이 뇌파진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족과의 관계가 좋아져 지금은 그가 가족 내 분위기 메이커로서 활약하고 있다. “브레인명상 초창기에는 제가 좋으니까 아내에게 ‘이 좋은 걸 왜 안하냐? 나와 같이 더 열심히 하자!’고 예전 습관대로 이끌었죠. 점차 수행이 깊어지니 소통하고 존중하게 되면서 아들과도 아내와도 마음이 통하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신승한 씨는
신승한 씨는 "많은 결정을 하고 책임을 지는 CEO라면 브레인명상을 꼭 했으면 한다."고 했다. [사진=김경아 기자]

신승한 대표는 “많은 결정을 하고 책임져야 하는 입장인 CEO라면 브레인명상을 꼭 했으면 합니다. 저는 뇌교육을 창시한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이승헌 총장님께서 하신 ‘자신 안에 답이 있고, 자신이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직접 체험했습니다. 갈등의 순간에 가장 현명하고 지혜로운 답이 자신 안에 있더군요. 그렇게 수많은 고비도 이겨낼 수 있었고 그런 경험이 쌓이니 자신감도 커졌습니다.”라고 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신승한 씨는 “저는 이승헌 총장님의 저서 ‘나는 120살까지 살기로 했다’에서 책 제목 자체가 가장 감명 깊습니다. 자신에 세운 비전이 너무나 소중해서 그것을 책임지기 위해 자연스러운 생명 최대치라는 120살까지 살겠다는 그분이 존경스럽습니다. 인생을 소비하듯 살지 않고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고자 합니다.”라고 소신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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