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관에 들어서는 순간 여성은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차별을 경험한다. 응급실에서 복통 치료를 받기까지 남성은 49분이 걸리지만, 여성은 65분을 기다려야 한다. 심장마비가 온 젊은 여성은 집으로 돌려보내질 확률이 7배나 더 높다. 여성은 여성에게 흔한 질병이라도 병을 진단받기까지 더 오래 기다리고, 때로는 이 기간이 수년을 넘어가기도 한다. 남성과 비교할 때 뇌종양에서 희귀한 유전 질병가지, 거의 모든 면에서 진단을 받기까지 더 오래 걸린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진료실에서 차별받는 의료현실, 은밀하고 뿌리 깊은 의료계의 성 편견과 무지―주로 미국 사례이지만―는 섬뜩하고 가슴 아프게 한다. 의사는 왜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

마야 뒤센베리 지음 "의사는 왜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 표지. [사진=한문화]
마야 뒤센베리 지음 "의사는 왜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 표지. [사진=한문화]

 2009년부터 낙태에 따라붙는 사회적 낙인, 강간 문화, 남성성, 경제 정의, 대중문화 등 페미니즘 관련 다양한 주제를 다루어 온 마야 뒤센베리(Maya Ducenbery) 페미니스팅닷텀 편집장이 의료계의 성 편견과 무지를 톺아보았다. 류머티즘 관절염 진단을 받고 미국 의료계를 경험하면서 상대적으로 무시되어온 여성 질병이 저자의 눈에 들어왔다. 저자는 의학이 여성과 남성의 잠재적 차이에 무심하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래서 논문 등 자료를 수집하고 수십명을 인터뷰하였다.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 《의사는 왜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김보은 이유림 옮김, 윤정원 감수, 한문화)이다. 이 책은 여성에 대해 특정 편견을 지닌 문화권에서 지닌 우리 모두와 보건의료종사자들이 어떻게 무의식적인 편견을 체화하는지에 관해 살펴본다. 읽어가는 동안 진료실에서 의사로부터 불신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건 생생한 인터뷰덕분이다. 의학용어가 많지만 쉽게 읽을 수 있는 것도 그 덕일다.

여성에 관한 성편견, 문제의 뿌리는 남성이 의료계를 지배하는 데 있다. 미국의 의학계는 백인, 남성, 부유층이 지배한다. 의학 교육 내부를 들여다보면 존재하는 게 냉혹한 젠더 불평등이다. “2014년 현재, 미국 의과대학은 정교수의 21%, 학과장의 15%, 학장의 16%미만이 여성이다.” 여성 의사는 남성 의사보다 급여가 적고 성차별, 성희롱을 겪는다. “2016년 ‘미국의학협회저널’에 실린 논문은 성공한 중견 임상과학자 1,000명 이상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조사에 응답한 여성들은 의과대학생의 거의 절반이 여성이었을 때 의학교육을 받았지만, 이들의 경험은 이전 세대 여성 의학 개척자들이 겪어야 했던 경험과 별다르지 않았다. 여성의 70%는 젠더 편향을 느꼈고 2/3는 직접 성차별을 받았다고 했다. 또 1/3은 성희롱을 당했다고 말했다.” 의료계에서 여성을 과소평가하는 것이 의료체계에서 젠더 편향의 근원이 되고 있다.

남성이 지배해온 의료체계에서는 여성 환자 진료의 질에 영향을 준다. 첫째는 지식의 간극- 보통 의사는 여성의 몸과 여성을 괴롭히는 건강 문제를 잘 모른다. 둘째, 신뢰의 간극이다. 여성이 자신의 증상을 설명하는 말을 의사가 믿지 않는다. 저자는 이 지식의 간극과 신뢰의 간극이 상호작용하면서 고치기 어려운 수준까지 고착되었다고 말한다. “의학은 여성의 몸이나 건강 문제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여성의 질병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여성의 질병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에 의학은 여성의 몸이나 건강 문제에 대해 잘 모른다.”

의사가 여성의 몸과 여성을 괴롭히는 건강 문제를 잘 모르는 이유는 그가 남성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임상연구에서 여성이 배제되었기때문이다. 대부분의 생의학 지식이 모두 남성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기반하고 있으며, 여성과 남성의 차이가 없다는 추정 아래 여성에게 적용해왔던 것이다. 생쥐 등 동물 실험한 연구 결과를 두고 인간에게 적용해서 얻는 결과인 것처럼 설명하는 뉴스가 연상된다. 여성이 연구 대상에서 배제되는 것은 연구자가 ‘관심 있는 주제’는 연구자 가신이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주제이기 마련이다. 50대, 남성 의사라면 유방암, 전립선암 중 어느 것을 연구할까? 그러면 여성을 연구 대상으로 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성, 젠더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한 소용이 없다. 이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남성과 여성 모두 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자. 남성은 남성에게 가장 효과적인 치료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여성은 여성에게 전혀 효과적이지 않거나 여성에게 더 심각하게 일어나는 부작용을 겪을 수도 있다.

"의사는 왜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 표지. 2009년부터 낙태에 따라붙는 사회적 낙인, 강간 문화, 남성성, 경제 정의, 대중문화 등 페미니즘 관련 다양한 주제를 다루어 온 마야 뒤센베리(Maya Ducenbery) 페미니스팅닷텀 편집장이 의료계의 성 편견과 무지를 톺아보았다. [사진=한문화]
"의사는 왜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 표지. 2009년부터 낙태에 따라붙는 사회적 낙인, 강간 문화, 남성성, 경제 정의, 대중문화 등 페미니즘 관련 다양한 주제를 다루어 온 마야 뒤센베리(Maya Ducenbery) 페미니스팅닷텀 편집장이 의료계의 성 편견과 무지를 톺아보았다. [사진=한문화]

 의사가 여성의 말을 믿지 않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는 질병의 정의와 관련이 있다. 의학은 현재의 기술로 관찰할 수 있고, 알려진 생리 기전으로 설명할 수 있는 질병만 ‘진짜’ 질병으로 정의했다. 그러면서 히스테리가 심인성 질병으로 몰리자 어떤 증상이든, 특히 여성에 발병하며 의학이 아직 관찰하거나 설명하지 못하는 증상은 잘 알려지지 않은 ‘무의식’ 탓으로 돌렸다. 의학이 지식의 한계에 도달할 때 아무렇게나 갖다 둘러낼 수 있는 이론이었다. 이는 객관적인 증거로 입증되기 전까지 여성의 주관적인 증상에 대한 보고를 의사가 계속 불신하게 했다. 이 책 곳곳에는 의사가 믿어주지 않고 잘못된 진료로 고통 받는 여성들의 아픔이 배어 있다.

“설명할 수 없는 모든 것을 심인성으로 돌려버리는 의료체계에서 지식의 격차 탓에 여성은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증상’을 더 많이 가지고 있으며, 이 때문에 여성은 계속해서 스트레스에 눌린 신체화 환자라는 고정관념에 갇히게 되며, 여성들의 증상은 남성들만큼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계속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무엇보다 인간의 질병을 이해하고 치유하려는 의학적 탐구가 계속 진행되어, 여성의 고통 역시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의학에 여성의 목소리를 반영하기를 희망한다. 

“여성이 아프다고 말할 때, 여성을 믿어라.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수많은 지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여성이 아프다고 말하면 믿어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