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을 친다. 선조들께서 한민족의 가르침을 잇기 위한 시간과 공간, 나라의 흥망성쇠, 세대를 불구하고 관통하는 필사적인 정성이 나의 가슴을 친다.

나당 연합군 점령군에 의하여 한민족의 시원으로부터 이어져 온 이전까지의 모든 역사가 완전히 멸실(滅失)된다.

▲ 발해 5경과 다물 [제공=국학원]

그로부터 30년이 흘러 서기 698년, 모든 고초를 겪고 대조영(大祚榮)은 아버지 대중상(大仲象)이 세운 후고구려를 이어받아 ‘대진국(발해)’을 건국한다. 곧바로 아우 대야발에 역사 복원을 명하니 사라진 역사와 함께 인류 최고의 가치인 <천부경(天符經)>과 <삼일신고(三一𥛠誥)>가 13년 만에 복원된다. 대조영은 기쁜 나머지 ‘어제찬’을 써서 직접 기리고, 대야발은 머리글을 쓰고, 개국 공신인 문적원감(현 교육부 장관급) 임아상은 해설을 한다.

발해의 3대 무황제(武皇帝, 대무예)는 발해를 강성하게 하였다. 이어 4대 문황제(文皇帝, 대흠무)가 즉위하여 다음 해에 태학을 세우고 <천부경>과 <삼일신고>를 가르치니 발해는 문무가 함께 눈부시게 발전한다.

대흠무는 전 인류를 살릴 진리인 <삼일신고>를 전란의 불길과 말발굽에 다시는 파괴되지 않도록 위하여 태백산 깊은 산 속에 석실(石室)을 짓고 그 속에 넣어 세상과 격리하여 영원히 보존하려고 밀봉하였다.

그 석실의 이름이 ‘근본에 보답한다는 마음’으로 만든 ‘보본단(報本壇)’이다. 그 거룩하고 귀한 삼일신고를 안전하게 후세에 전하려는 문 황제의 간절한 마음을 손수 적은 글이 '봉하여 저장한다'는 ‘봉장기(奉藏記)’이다. 지금으로부터 1,374년 전의 일이다. 이토록 절절하게 이어온 우리의 홍익철학이다. 그저 감사하고 감사할 뿐이다.

◎ 삼일신고 봉장기 (三一𥛠誥 奉藏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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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신고’( 三一𥛠誥)는 본시 돌과 나무의 두 책이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서 전하기를 돌로 된 책은 부여의 나라 곳간에 간직되었고, 나무로 된 책은 위씨조선에 전하였다가 둘 다 아울러 전란에 잃었다 하며, 이 책은 바로 고구려에서 번역하여 전한 것이요, 우리 할아버지 고(高) 황제( 대조영)께서 읽으시고 예찬하신 것이니라.

소자( 대흠무)가 이 ‘신고’를 받들어 온 뒤로 항상 잘못될까 두려워하며 또 옛날 돌과 나무에 적은 두 책이 세상 풍파에 없어진 것을 생각하여, 이에 영보각(靈寶閣)에 두었던 임금이 지은 예찬을 붙인 진귀한 책을 받들어 태백산 보본단(報本壇) 돌집 속에 옮겨 간직하노니 이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

대흥(大興)1 3년 3월 15일에 간직하노라.
 

국학원장(代), 전국민족단체연합회 대표회장 원암 장영주


1 대흥, 발해 4세 문 황제의 연호, 대흥 3년, 서기 74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