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경극 중 5개의 칼을 찬 연개소문 [자료제공=국학원]

중국인이 자랑하는 경극(京劇)에는 칼을 다섯 개나 차고 다니며 끝까지 주인공을 겁박하는 무서운 인물이 등장한다. 그 인물은 바로 고구려의 연개소문(淵蓋蘇文, 603~668년)이다. 연개소문은 중국인에게는 이처럼 무서운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고구려의 일반 남자들은 누구나 몸에 칼 다섯 자루와 숫돌까지 차고 다녔다. 그러므로 연개소문이 다섯 자루의 칼을 차고 위압감과 공포감을 주었다는 것은 그에게 혼이 난 당 태종 이세민과 사대주의자들의 왜곡된 시각일 뿐이다. 연개소문은 단지 보통 고구려 남자들처럼 행동했을 뿐이다.

연개소문은 아홉 살에 조의선인(皁衣先人)에 뽑혔다. 몸가짐이 웅장하고 훌륭하였고, 의기가 장하고 호탕했다. 늘 병사들과 함께 섶(땔나무)에 나란히 누워 자고, 손수 표주박으로 물을 떠 마셨다. 무리 속에 섞여 있어도 자신이 최선을 다하고, 일이 혼란하게 얽혀 있어도 미세한 것까지 분별해 내었다. 항상 자기 겨레를 음해하는 자를 소인이라 여기고, 당나라 사람을 능히 대적하는 자를 영웅으로 여겼다.

그러나 사대주의자인 고려의 김부식은 연개소문을 두고 ‘임금을 죽인 역적이며 고구려의 멸망을 초래한 장본인’으로 묘사했다. 반면 신채호 선생은 연개소문을 ‘위대한 혁명가’로, 박은식 선생은 ‘독립 자주의 정신과 대외경쟁의 담략을 지닌 우리 역사상 일인자’로 평가했다.

연개소문은 유교의 사대주의에 빠진 조선시대까지는 왕을 시해하고 나라를 망친 인물로 평가받았으나, 민족의 자주성이 요구되던 20세기부터는 자주적인 혁명가로 재인식된 것이다.

이처럼 연개소문에 대한 평가는 국내외에서도 크게 다르다. 연개소문의 호는 금해(金海)이고 그가 저술한 병법서가 <금해병법>이다. 대막리지 연개소문은 모든 법을 공정 무사한 대도로 집행하였다.

이로써 자신을 성취하여 자신의 주인이 되는 성기자유(成己自由)하고, 만물의 이치를 깨쳐 차별이 없는 개물평등(開物平等)한 고구려를 만들었다. 또한 세 마을에 전(佺)을 두고 조의선인들에게 계율을 지키게 한 최고의 선도인(仙道人)이었다.

국학원장(代), 전국민족단체연합회 대표회장 원암 장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