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마치고 직장에 취직하면 생명이 위협받는 사회.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 대한민국 사회 이야기이다. 얼마 전 ‘파리바게트’ 나 ‘파리크라상’으로 잘 알려진 SPC그룹의 계열사인 SPL의 경기도 평택시 소재 제빵공장에서 발생한 사망 사고가 이를 잘 보여준다. 제조업이 아닌 다른 곳에도 별반 다르지 않다.

방서현의 장편소설 《좀비시대》(리토피아, 2022)는 사회초년생들이 온몸으로 겪는 악몽같은 현실 세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신예 작가의 첫 장편소설, 그 외침이 묵직하다.

방서현 장편소설 "좀비시대" [사진 정유철 기자]
방서현 장편소설 "좀비시대" [사진 정유철 기자]

이십 대 젊은이 연우와 수아는 제도권 교육에서 대학 교육을 받아 교과서적인 지식을 많이 갖추었다. 대학에서 배운 대로 세상이 돌아가고 그들이 쌓은 지식이 사회생활에 도움이 될 것으로 확신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현실 세계에 부푼 꿈과 환상을 품은 채 학습지 회사에 발을 내디딘다.

하지만 현실 세계는 그들이 꿈꾼 세계와는 전혀 다르다. 그들에게 현실 속 사람들은 다른 세상의 사람들 같다. 교과서에 나오는 선하고 바른 사람들과는 거리가 멀다. 현실 속 사람들은 인간이 아닌 어느새 좀비가 되어 있다. 좀비가 되어 자신들과 똑같은 좀비가 될 것을 요구한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자본 창출을 위해 좀비 바이러스를 전염시키려 한다. 그래서 입사를 하면 빽센 신입 교육을 실시한다. 일종의 세뇌교육이다. 그런데 좀비가 되기를 거부한다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거나 제거된다.

작가는 학습지 방문교사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시대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물질만능주의 사상으로 사람들에게 더는 순수성을 찾아볼 수 없고, 양심 또한 사라지고 없다. 사람들은 모두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인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교묘하게 자신을 감추거나, 혹은 처음과는 다른 행동을 보인다. 어느 조직, 어느 집단이나 마지막에 드러나는 것은 결국 돈과 권력인 것이다.

원룸에서 고시원으로 밀려난 수아는 끝내 고시원 건물 위에서 투신한다. 사인은 우울증 치료 경력을 들어 개인 문제로 판명된다. 그와 함께 회사 내부에서는 수아의 부정업무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연우가 우연히 발견한 수아의 유에스비에서 진실을 알아낸다. 연우는 수아의 억울한 죽음에 항의하고 회사에 책임질 것을 요구하지만, 회사는 침묵을 강요한다. 그래도 침묵하지 않는 연우는 누군가에게 납치된다.

작가는 우리 시대가 인간성을 상실한 좀비시대임을 선언한다. 공동의 선 대신에 돈과 권력이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채 아니, 감염된 그 사실도 모른 채 살아가는 좀비시대. 이 사회에 희망이 있을까?

“좀비들은 마침내 차를 타고 달아난다. 그리고 차량을 도시 아무 데나 버린다. 트렁크에 든 연우와 함께.”

트렁크에 버려진 연우를 과연 구출될 수 있을까? 누가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까? 소설의 결말이 주는 아픔이 오래 남는다.

고명철 문학평론가(광운대 교수)는 방서현의 장편소설 《좀비시대》를 “학습지 시장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중간착취의 노동 억압에 대한 현장보고서”라고 했다.

“방서현의 장편소설 《좀비시대》는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 아래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새로운 고용구조 속에서 엄습하는 새로운 유형의 노동 착취에 따른 노동의 구조악과 행태악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것은 지난 시절노동문학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말 그대로 새로운 유형의 노동 억압으로 부각되고 있는데, 우리가 한층 유념해야 할 것은 이 새로운 유형의 노동 억압이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너무나 자연스레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최근 사회동계의 현안으로 급부상되고 있는 '간접고용’, ‘중간착취’, ‘삼각 고용'의 문제와 직결된다. 《좀비시대》는 우리 시대의 바로 이러한 노동의 적나라한 문제를 예각적으로 파헤치고 있는바, 비록 장편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작금 교육사업의 경제활동을 통한 학습지 시장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중간착취의 노동 억압에 대한 현장보고서라 해도 손색이 없겠다.”(고명철, “간접고용과 중간착취, 그 디스토피아와 좀비들의 묵시록”에서)

방서현 작가는 충남 논산에서 자라고 목원대학교 국어교육학과 및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오랫동안 글쓰기 수련과 깊은 사색을 해왔으며, 2022년 계간 리토피아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현재, 무지개와 같은 글을 쓰고자 고향 놀뫼에 둥지를 틀고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 《좀비시대》는 리토리아소설선 04로 발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