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단체 철학극장은 11월에 연극 <노란 달 : 레일라와 리의 이야기(Yellow Moon: The Ballad of Leila and Lee)>를 씨어터쿰 무대에 올린다.

<노란 달: 레일라와 리의 발라드>는 스코틀랜드 출신 작가 데이비드 그레이그의 2006년 초연작으로, 당시 타임지의 ‘올해의 새로운 연극 중 하나’로 선정되며 극찬받았다. 2007년 에딘버러 국제 페스티벌에서 영국 TMA 아동청소년부문 베스트 연극상을 수상했다. 스코틀랜드와 영국을 비롯, 미국, 아일랜드, 독일, 네덜란드, 호주 등 세계적으로 공연된다. 국내에서는 2013년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공연하였다.

"노란 달: 레일라와 리의 발라드" 포스터 [포스터 철학극장]

스코틀랜드의 시골, 허름한 아파트에서 알코올 중독에 우울증을 앓는 엄마, 엄마의 폭력적인 남자친구 빌리와 함께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리 매클린든은 동네 최고의 골칫거리이다. 도둑질하거나 마약을 팔아 푼돈을 챙기는 친구들. 리의 주위에는 온통 인생의 낙오자들 뿐이다. 그런 리를 버티게 하는 것은 집을 떠난 아빠가 남긴 엽서 한 장이다.

한편 동네의 마트에서 연예 잡지를 보며 유명인들의 삶에 빠져드는 레일라 술래이만은 학교 최고의 모범생이다. 레일라는 자신이 세상의 주인공인 화려한 삶을 꿈꾸지만 틀에 갇힌 현실은 그런 상상에 비해 전혀 살아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결국 연예 잡지를 본 후 레일라는 화장실에서 면도칼로 팔을 그어 자해하면서 자신이 진짜로 살아 있음을 아슬아슬하게 느낀다.

어느 금요일 밤, 예기치 않은 살인 사건에 휘말린 레일라와 리가 도망치듯 여행을 떠난다. 그들은 결코 살인에 연루될 의도가 없었지만 이제 그들은 숨을 곳이 필요하다.

이 텍스트에서 발화 주체는 1인칭과 3인칭을 오가고, 사건에 대한 서술은 현재 시제로도 과거 시제로도 이루어진다. 이렇게 주인공과 관찰자를 오가는 와중에 등장하는 과거완료 시제는 발화자의 정체와 위치에 특별히 주목하게 만든다. 지나가 버린, 하지만 이루어지지 않은 시간에 대한 희망과 욕망에 관련된 과거완료 시제를 사용함으로써 '레일라와 리의 이야기'는 그저 레일라와 리가 만나서 벌어진 일을 이야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레일라와 리가 겪었고 느꼈으며 희망했던 것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작가 데이비드 그레이그의 작품 세계에서는 문화, 사회, 정치, 지역적으로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그래서 현실에서는 서로 만날 수 없는 인물들이 서로 만난다. 그것은 서로를 향한 갈망, 다른 세계에 대한 판타지와 그를 향한 여정으로 그려지면서 폭발적으로 극을 이끌어나가는 동력이 된다. 그에게 “구멍 뚫린 연극(holed theatre)”이라는 표현이 따라붙는 이유이다.

철학극장의 <노란 달: 레일라와 리의 이야기>는 포스트-드라마의 시대에 새로운 드라마의 형식을 탐구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희곡이라기보다는 마치 소설처럼 쓰인 이 독특한 형식의 텍스트에서는 누구의 것일지 모르는 목소리가 인물들의 대화와 그들이 겪는 사건들을 실어 나르고 있다. 한편으로 사뭇 다가가기 어려운 해체적인 형식으로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목소리에는 우리가 모두 겪었거나 또 겪고 있는 보편적인 경험이 스며 있어서, 그것을 듣고 읽으면 우리가 서 있는 자리와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 걸어왔던 삶의 경로를 반추하고 회상하게 만든다.

2013년 국립극단의 <노란 달>과 다른 점은 원작이 가지고 있는 함의를 남김없이 이끌어내는 연출 고해종이 새롭게 번역했다. 여기에 인칭과 시제라는 문법적 요소를 화자가 누구인지, 또 어디에 서서 어느 방향을 보고 말하는지 질문하도록 이어 나가는 탄탄한 연출이 어우러진다.

국립극단이 “빈 무대를 통해 관객이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했다”면 철학극장은 “관객에게 상상력을 강요하지 않고 진짜 경험하고 상상하도록 이끄는 감각적인 무대”를 구성한다.

철학극장의 공연은 서술자의 발화 이면에 살아 숨쉬는 행간을 감각적인 무대 위로 소환한다. <노란 달: 레일라와 리의 이야기>의 소설적인 스타일은 사건을 객관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주관적으로 체험하도록 유도한다. 긴장 속에 팽팽해지고, 흥분과 설렘으로 파르르 떨리며, 확신이 없어 기우뚱거리다가, 급격히 쏠리는 마음들.

배우로는 <부부의 세계>로 유명한 심은우가 이번 무대를 통해 복귀한다. 유치하고 어리석었던 슬픈 홍역을 다시 앓으면서, 그 아픔을 끌어안고 그 시차를 넘어 더욱 성숙해진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아버지가 된 박신운의 연기를 볼 수 있다. 연극계의 히트작 <고곤의 선물>에서부터 사회적인 메시지를 강하게 담고 있던 <말뫼의 눈물>까지, 여러 연극 무대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박신운은 이제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아버지가 된 지금, 청춘의 시간을 돌아본다면 어떤 연기를 보여줄 수 있을까?

<생활풍경>, <공주들>, <파란나라> 등을 통해 도발적이고도 눅진한 연기를 보여주었던 권주영과, 신예 안진효가 <노란 달: 레일라와 리의 이야기>에서 호흡을 맞춘다.

우리는 소망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고 방황한다. 부서지는 환상. 그리고 아직 채 어른이 되지 못한, 그래서 어쩌면 우리 자신들일지도 모르는 모든 어린/어른들의 성장통을 <노란 달 : 레일라와 리의 이야기(Yellow Moon: The Ballad of Leila and Lee)>를 통해 공유하는 기회이다. 

창작단체 철학극장은 연극 <노란 달 : 레일라와 리의 이야기(Yellow Moon: The Ballad of Leila and Lee)>를 11월 29일부터 12월 4일까지 씨어터쿰(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 253-7)에서 공연한다. 공연시간은 평일 오후 8시, 토요일 오후 3시/ 7시, 일요일 오후 4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