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경계없는 삶이란 어디까지 가능한 걸까요? 세계의 전통 문화 속에 내려오는 풍습을 통해 서로를 위하며 더불어 함께하는 미래문화의 가능성을 살펴봅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세상은 크게 바뀌었다. 코로나19가 종식되어도 코로나19 이전의 세상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다. 인류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야 한다. 이전 방식으로는 인간과 지구가 더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 인간과 지구가 지속가능할까? 그 길을 유럽인이 미국에 이주하기 이전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삶에서 찾을 수 있다.

세계적인 동물학자이며 동물문학자이자 박물학자이며 화가인 어니스트 톰슨 시튼(1860~1946)과 줄리아 M. 시튼이 쓴 《인디언 : 영혼의 노래》(정영서 옮김, 개정판, 책과 삶, 2022)는 ‘인디언’이 그들의 위대함이 훼손되지 않았던 시기에 이룩했던 가르침의 가치를 담았다. 어니스트 톰슨 시튼은 그 가르침을 ‘인간다움의 복음’이라고 불렀다. ‘인디언’이라는 호칭이 잘못된 것이지만 여기서는 책의 내용대로 ‘인디언’으로 표기한다.

어니스트 톰슨 시튼은  인디언의 가르침을 ‘인간다움의 복음’이라고 표현한다. [사진 정유철 기자]
어니스트 톰슨 시튼은 인디언의 가르침을 ‘인간다움의 복음’이라고 표현한다. [사진 정유철 기자]

어니스트가 주목한 것은 성공의 척도이다. 백인은 "얼마나 많은 부를 가지고 있는가?"를 성공의 척도로 삼는다. 그러나 인디언은 "동족에게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었는가?”를 성공의 기준으로 삼는다. 1870년 초 수우족과 함께 지낸 톰 뉴콤브라는 산악가이드가 말한 인디언의 삶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 아픈 사람, 나이든 사람, 그리고 과부나 고아를 항상 가장 먼저 보호하고 돌보왔습니다. 그들은 캠프를 옮길 때면 항상 과부의 천막을 가장 먼저 옮기고 또 가장 먼저 세워 주었습니다. 사냥이 끝나고 나면 큼직한 고깃덩어리는 그것을 가장 필요로 하는 집의 문 앞에 놓여졌습니다. 백인인 나조차 그들은 형제처럼 대해 주었습니다." 동족의 범위가 인종을 넘어서 확대된 것이다.

톰 뉴콤브라는 “인디언들보다 더 기독교적인 정신의 본질에 충실한 교회 조직을 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인디언들은 ‘위대한 영’을 숭배했지만,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종교적 관점 때문에 다투지 않았다. ‘위대한 영’에 대한 상대의 관점을 존중하고 대신에 자신의 관점도 존중해주기를 바랐다. 선지자들은 “다른 사람이 신성하게 여기는 것을 존중하라. 다른 사람에게 너의 종교적 관점을 강요하지 마라”고 가르쳤다. 종교로 인한 갈등과 분쟁이 심각한 오늘날, 이 가르침은 여전히 유효하다.

인디언들은 “많은 재산을 탐내지 말라”는 가르침을 받는다. 자신의 부족 중에 궁핍한 사람이 있는데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는 것은 죄이며 창피한 일이다. 전쟁이나 교역을 통해 또는 위대한 영이 축복을 내려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이 필요한 이상의 부를 갖게 되면 그는 사람들을 초대해 감사의 잔치를 열어야 한다. 그리고 남는 재물은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나눠 가져야 한다. 특히 과부나 고아, 의지처가 없는 사람들을 챙겨야 한다.

인디언들은 태양춤을 추며 이렇게 기도한다.

"위대한 영이시여, 우리 아버지시여,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소서. 저와 제 가족과 우리 동족이 아버지의 길을 따르고 그 속에서 우리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하소서. 세상을 평화롭게 하소서. 태양과 좋은 여름 날씨를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그리하여 짐승들이 먹을 풀과 인간이 먹을 양식이 풍성해질 것을 믿습니다." 전 세계 모든 인류가 이런 내용의 기도를 한다면 세상은 지금과는 매우 다를 것이다.

인디언의 생활에서 매일 하는 아침 기도가 중요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아침 햇살에 감사하라. 살아 있음과 건강함에 감사하라. 먹을 음식이 있음에 감사하고 삶의 기쁨에 감사하라. 가끔 감사할 것이 없을 때는 자신에게 잘못이 있음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쉬어라.”

인디언에게 이 대지에 태어난 인간의 가장 중요한 의무는 완전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 의무는 인간이 되기 위해 필요한 모든 부분과 능력을 발전시키는 것이고, 그 과정을 최대한 이성적으로 즐기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인간다움이란 육체적 방법, 정신적 방법, 영적 방법, 그리고 봉사라는 방법을 통해 이룰 수 있다.

인디언 선지자들은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완벽하게 하라”고 가르친다. “삶 속의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고 자신의 힘과 아름다움을 기뻐하라. 살아 있음을 기뻐하라. 오래 살아 자신의 동족에게 봉사하도록 애써라. 죽음의 순간에 부를 고귀한 죽음의 노래를 준비하라.”

인디언은 누구도 자신의 땅을 소유하지 않는다. 땅은 부족에 속하는 것이고 다른 부족이 빼앗아 가지 못하도록 지켜야 한다. 개인을 자신의 집을 지을 만큼 그리고 그가 경작할 농토만큼의 땅만 소유한다. 그 사람이 경작이나 점유를 그만두게 되면 땅은 다시 부족에게 귀속되고 다른 사람에게 할당된다. 

옛 인디언들은 그들의 자원을 낭비하지 않았다. 허기를 채울 수 있는 양만큼만 열매를 따고 식용 식물의 가지나 덤불을 손상시키는 일이 없도록 최대한 조심했다. 그들은 자신이나 자신의 부족에게 필요한 만큼만 사냥을 했으며 사냥물의 모든 부위를 먹었다. 불을 피울 때는 필요한 양만큼만 연료를 쓰고 그 자리를 떠날 때는 조심스럽게 불을 껐다. 평온에서 봄이나 가을에 불을 피우는 것이 허용된다. 그러나 숲에서는 시기를 막론하고 불을 피우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숲에서 불이 나는 것은 그 속에 사는 생명들에게 엄청나고 지속적인 재앙이며 인간이나 짐승이나 그 피해를 회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영역 내에서 사냥감을 찾아냈다 해도, 그는 자신이 필요하고 쓸 수 있는 만큼만 자신의 힘으로 취할 수 있다. 죽이고 낭비하는 사악한 즐거움을 위해 사냥을 하지는 않는다. 

모든 아이는 집과 음식과 양육과 교육의 권리를 가졌다. 만일 아이에게 친족이 없으면 부족이 그 아이를 맡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인디언 사회에 사생아는 없었다. 아이의 부모가 결혼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아이가 사회적 지위나 법적 권리를 뺏기는 경우는 없었다. 모든 아이는 적자였다. 결혼하지 않은 여자가 아이를 낳더라도 아이에게 집을 제공하고 양부가 되어줄 사람이 항상 있었다.

인디언 여성들은 유럽에서 여성들이 참정권을 갖기 이전부터 투표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부족의 모든 일에 발언권을 가지고 있었고 추장이 될 수도 있었다. 대부분의 부족에서 아내는 집과 자녀 그리고 집에 있는 모든 것들의 소유자였다. 남편은 말과 가축, 곡물과 자신의 손으로 생산하거나 획득한 것을 가질 수 있었다.

필요하다면 언제든 전쟁을 벌일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평화를 유지하는 기본 요소에 대한 인디언의 인식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다. 그들은 모든 진정한 평화는 정의와 건전한 상식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또한 평화란 모든 사람이 관습법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 권위를 강제할 힘이 있을 때에만 지속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들은 평화를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 또는 전쟁 사이의 휴지기 같이 소극적 의미로 생각하지 않았다.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서구인은 그렇게 생각한다. 인디언에게 평화는 인간의 삶과 별개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따로 부르는 별도의 명칭도 없었다.

인디언의 삶을 깊이 연구한 백인들은 인디언들이 백인들의 문명보다 우월한 문명을 만들었다고 인정한다. 그들은 인디언들에 대한 다음과 같은 찬사를 바친다.

“인디언들은 삶과 종교의 자유를 누리는 가운데 용감하고 청결하며 친절하고 경건하면서 신실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온화하되 비굴하지 않았고 탐욕스럽지 않았으며 위엄이 있고 용감하고 정직한, 한마디로 고결한 영혼의 소유자들이었다. 그들의 육체는 지금까지 존재했던 인간들 중 가장 발달된 것이었다.”

《인디언 : 영혼의 노래》의 저자 어니스트 톰슨 시튼은 "어떤 논리를 적용해도 우리의 제도는 한 사람의 백만장자와 백만 명의 거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며 "백인의 문명은 실패작"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이 책에서 제시한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메시지, 인간다움의 계율"을 통해 우리가 좀 더 나은, 좀 더 고귀한 생각할 기회를 갖기를 바랐다.